합리적인 꼰대

꼰대가 될 용기

by 이일일

"아으 꼰대 같아요."
"솔직히 너무 꼰대 같아요. 이사님"


"나, 원래 꼰대야."


저는 말도 예쁘게 할 줄 모르고 돌려할 줄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제가 하는 이야기는 상처가 될 만한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있었고,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도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에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나이스한 피드백을 주거나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대부분의 직원들과 소통은 꽤 원활했고 (몇 가지 고쳐야 하는 점들을 늘 들었지만)

저에게 많은 직원들이 마음을 감사하게도 열어주었습니다.

더불어서 개인적인 이야기나 남들에게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왜 그럴까?'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나이도 10살 전후로 차이가 나는 이 어린 친구들이 저에게는 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일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꼰대의 개념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우리 모두 언젠가는 반드시 꼰대가 되는 건 100%라고 생각했고

'그럼 어떤 꼰대가 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꼰대가 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거나 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 자체가 '꼰대'입니다.


저는 어떤 꼰대였을까요?




저는 대의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든 명분이 존재하고 정당성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과 소통을 하는 것도 정말 여러 가지 경우가 존재할 텐데

그중에서도 솔직히 소통을 많이 하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 상황이 좋지 않은 때입니다.


"이거 누가 그랬어?"
"이거 체크 안 했어?, 아니 미리 했으면 이런 일 없잖아."
"그러니까 누가 일정 이렇게 닥쳐서 하래?"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왜 너 마음대로 해."
"너는 사고 치고 나는 책임지러 다니고 똥 치우러 다니는 사람이냐?"


어떤 상황이든 나도 실수를 하고 직원들도 실수를 하고 항상 결과가 좋을 수는 없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동료들에게 이런, 저런 상처가 될 만한 말들을 참 많이도 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상처가 된 것은 제가 한 '말' 자체에 있지는 않더군요.


"이름을 불러주시지 않아서.."
"욕 좀 그만하셨으면.."
"저한테만 야라고 하시잖아요."


대부분 기본 소통의 방식과 관련된 부분이거나 제가 가진 잘못된 습관 같은 부분 때문이었지,

제가 이야기 한 내용이 기분 나빠서, 감정이 상하는 경우들이 아니었습니다.


* 아, 물론 욕도 하면 안 되고 이름도 불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잘못된 친근감의 표현이 더러 있다 보니..)


어쨌든 몇 가지 지키려고 했던 부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대부분 이렇게 좋지 않은 이야기를 강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리더 위치에 계신 분들은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말해야 상처받지 않을까'

'어떻게 이야기해야 알아들을까'

'어떻게 말해줘야 바뀔까'


등등 머릿속에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많은 고민을 가져옵니다.

또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당연히 고민은 깊어질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분명히 상처받을 텐데'
'이거 지난번에 한 번 이야기했던 거라 마음에 담아둘 텐데'
'오히려 말했다가 삐져서 말만 더 안 듣는 거 아닐까'


온갖 걱정과 불편한 감정들이 마음속과 머릿속을 휘저어 놓습니다.

이렇게 머릿속에서 조금은 브레이크가 걸리는 과정을 거치고 계신 중이라면 사실 굉장히 양호합니다.

이런 과정 없이 바로 '샤우팅'이 입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그것은 가히 재앙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상대방이 응당 욕을 먹어야 하는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샤우팅' 같은 류의 소통 방식은

회사 내에서 절대 환영받을 수 없는 방식입니다.


저도 소리도 질러보고 말로 때린다는 표현이 들 정도로 혼도 내봤는데

나중에는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약속을 한 적도 있습니다.

꽤 오래 마음속에 남으니까요. 상대방에게는.




어쨌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답은 생각보다 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 물론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모두가 좋은 상황인데 상대방이 기분 나쁜 소통을 한다면 그건 굉장히 이상하겠지요.


상대방의 감정이 이야기할 수준의 상태가 아니라면 먼저 기다려줘야 한다.
먼저 들어야 한다. 듣고 객관성을 가지고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감정 빼고.
상대방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먼저 정리하고 나에게 이야기해본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고 이해가 된다면 그때 상대방에게 감정 없이 전달하거나 물어본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가 근본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먼저 생각하고 파악한다.
그 원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상대방과 먼저 나눈다.
상황이 복합적일 가능성이 높기에 한 번에 하나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리한다.
내가 상사의 입장이라면 상대방은 어차피 편안한 감정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농담 식 반 협박을 해서라도 필요한 이야기는 끌어내야 한다. 진심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하나라도 남아서는 안된다. 어떻게 가진 불편한 시간인데 이 자리에서 깔끔하게 끝내고 감정은 깨끗하게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
클리어하게 해결책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약속이라도 해서 준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해결책이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언제까지 해결책을 줄지 시간으로 이야기해 준다. 시간이 흘러가는 과정 속에서도 어떤 해결책이 고려되고 있는지 공유해 준다.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서로의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도록 이야기 나눈다.
공과 사를 명확히 구별하는 건 로봇이나 하는 것이다. 어차피 구별할 수 없으니 지금 불편한 감정에 대해서는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서운하다.', '속상하다', '아쉽다', '기분이 나쁘다' 등등
대부분의 상황에서 '솔직함'은 가장 강하고 클리어한 해결책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의 이야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변화를 줘야 한다.
해결책이 나왔고 서로 공유한 후 행동으로 옮겼다면 결과가 해결로 이어졌는지 꼭 확인한다.
잘못한 것은 확실하게 짚어줘야 하고, 별 것 아닌 것은 별 것 아니라고 명확하게, 심각하면 심각하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줘야 한다.
본인의 잘못이 크거나, 압박을 너무 느껴 헤어 나오고 있지 못하고 정신 못 차리고 있다면 그런다고 세상은 무너지지 않음을 이야기해 준다. 어차피 내일의 태양은 반드시 뜬다.


원칙으로 정할 수는 없지만 짧은 순간 참 많은 생각과 원칙을 떠올리면서 접근하고 소통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야기하면서 또 다른 원칙들이 떠오르게 되고 상대방에 맞춘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합리적인 꼰대'가 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실제로 '합리적인 꼰대'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꼰대라는 것은 보통 합리적이지 않게 불리는 말이니까요. 나쁜 말이죠. 사실.

그래서 더 집요하게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물고 늘어지지 않으면 합리적이라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상대방과 올바른 소통을 위해서는

저에게 무조건 필요한 능력이었습니다.


제 스스로 생각한 저의 포지션은 매니저, 팀장, 이사, 본부장, 그 어떤 것도 아닌

'합리적인 꼰대'였습니다.




직원,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끔찍한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생각의 차이뿐 아니라, 살아온 경험에서의 차이들이 소통에서 자주 오류를 발생시킵니다.

또 그 오류는 나중에 오해로까지 이어져 관계에도 문제가 생기게 하기 때문에 좀 심각한 문제입니다.


소통을 잘하는 것, 말을 잘하는 것 등등 서로 사람 간에 일을 하기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에서는

기본적으로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집요함'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그냥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에이 설마, 오해하지는 않았겠지.'
'에이 아니야 그렇게 이해했을 리가 없어.'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여지없이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오해를 만들며, 내가 극구 아니길 바랐던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물고 늘어져야 하고 다시 돌아보고 다시 이야기 나누고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귀찮습니다.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그렇게 소통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깊이를 느낌으로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됐을 때는 예전보다는 좀 더 소통하는 것이 수월해지고 편해집니다.


눈치 보지 않고 혼내고, 혼나고 깔끔하게 감정적으로는 화해하거나 받아들이고 끝내는 것이죠.

그런 관계가 되려면 앞선 어려운 과정들을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 불편하지만요.




요즘은 그런 이야기 많이 하더라고요.

"오해할까 봐 이야기하는 건데"라고 듣는 순간 "오해가 있을 법한 이야기구나."로 듣는다고.


저는 그럼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오해할까 봐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하면 분명히 오해를 해야 하는 이야기로 듣으신다더라고요."

"그런 오해가 진심으로 없으시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집요하게 더 원활한 소통 모두들 하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