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는 법부터 배워야 해

누림의 첫 단추

by 시소년

문득, 노력해 온 것에 비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 10년 쉴 새 없이 도전하고, 성장하고, 경험하며 뿌리를 다졌지만, 여전히 바람 앞 갈대 같은 모습에 연거푸 실망을 내비쳤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새벽은 어느새 굶주린 그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오만했다, 그 인고의 시간을 이해한다며 아이들을 돕는 놈이 마음을 갉아먹던 그때를 그리워하다니.

착각일 테다. 실은 굶주린 시절 배고파도 친구들과 사소한 웃음을 나누던 그 순수를 그리워한 거겠지. 첫사랑에 대한 애정이 그녀만이 아닌, 그때 덧없이 사랑하던 내 모습을 잊지 못해서인 것처럼. 분명 난 잔혹한 신길동 골방에서보다 배부르고, 따듯하고, 풍족하다. 오늘도 나를 위해 손을 모으는 분들이 있고, 아픔을 덜어주려 애쓰는 이들에 의해 살아냈다. 나 또한 조금이나마 이해한 지혜에 빗대어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이 틀 때쯤에, 그러니까 꼬리를 무는 새벽의 끝에는 “누리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라는 생각에 잠겼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축복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얻어내고 성취한단 말인가. 지금의 나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부유는 부패가 될 게다. 마치 정직한 우리 몸처럼, 내 안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것들은 전부 독이 된다. 자유롭게 글을 쓰고 느끼는 감정을 음악으로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꿈은 오늘날 일상이 됐다. 허나 입가의 주름은 웃는 상은 전혀 아니었다.

정말로, 누리는 법부터 배우자. 작은 것에 감사하고 모난 것에도 웃어보자. 100전 100패 하는 생각은 하지 말자. 예컨대 나의 불행을 누군가의 하이라이트와 비교해 보는 일 말이다.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누리는 법이란 걸. 분명한 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가지고 있는 것을 먼저 인식하고 활용하는 것이 ‘누림’의 첫 단추일 테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너와 내가 서로 지닌 것을 나누고, 진정으로 우리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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