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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an 30. 2024

엄마가 99명이라면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아니라 백설 공주와 일흔일곱 난쟁이 이야기이다. 첫 부분은 우리가 아는 그 백설 공주와 동일하다.

하지만 7명의 난쟁이 집이 아닌, 일흔일곱 난쟁이가 사는 집으로 숨어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목만 봐도 쉽지 않은 생활이 예상되지 않는가. 마음속으로 얼마나 공주를 말렸는지 모른다. 난쟁이 집에 간 백설공주도 쉽지 않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지만, 나쁜 마녀를 피해 갈 곳 없기에 난쟁이들과 한 집에서 살아가기 시작한다.

우선 이름을 외우는 것부터 난관이다. 또 빨래는 어마 무시하다. 수염도 다듬어줘야 하고 자기 전 동화책도 읽어 줘야 한다. 심지어 77명 각자 원하는 이야기책으로 말이다. 아침을 챙겨 줘야 하고 일하러 가는 난쟁이들의 도시락과 과일주스도 77개를 만들어줘야 한다.

공주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금방 저녁 준비를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난쟁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정말 아름다웠던 공주는 난쟁이들과 살면서 점점 늙어가기 시작한다.


시간이 갈수록 판이하게 달라지는 백설 공주의 모습이 재미있다고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꼭 내 모습 같아서. 특히 두 번째 그림이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 하고 7시가 되면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더 자고 싶다 하지만, 그럼 쫄쫄 굶고 가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짜증 가득한 똥강아지들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달래주고 서둘러 아침도 챙겨준다. 그리고 차 안에서 먹을 수 있도록 과일도 챙긴 뒤 등교 및 등원 준비를 돕는다.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가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뒷자리에 앉은 애들이 과일을 먹는 동안 운전을 한다. 첫째 아이 학교 내려주고 다시 어린이집으로 가서 둘째를 내려 준 뒤 직장으로 가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미 진이 빠진 상태지만 그래도 해야지.

퇴근시간이 되면 다시 집으로 출근을 한다. 태권도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픽업하고 저녁 준비 하면서 세탁기도 돌린다.

식사 마치고 신랑이 설거지 아이들 목욕 도와주면 나는 빨래 개고 널고 큰애 공부 봐 주고 씻고 나오면 9시 30분. 

그럼 취침하러 들어가서 아이들 재우다 같이 뻗어 잘 때도 있고 버틸 때도 있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눈꺼풀이 절로 감긴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어휴 몸이 2~3개 되면 참 좋겠다"였다.

내 몸이 2개. 아니 3개라면 얼마나 좋을까? 설거지랑 저녁 준비, 빨래도 시킬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거 같다. 그러자 상상 속에서 퐁퐁하고 내가 나타나 일을 하나씩 해 준다. 옆에 있던 애들도 하나씩 덧붙인다. "나랑 놀아주는 엄마도 있었으면 좋겠다" 또 엄마 2명이 나타나 아이들과 놀아주기 시작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엄마를 더 불러보기로 한다. 애들 목욕시켜주는 엄마. 청소하는 엄마. 등교시켜주는 엄마. 출근하는 엄마. 공부 봐주는 엄마 등 할 일을 계속 주자 엄마가 자꾸 나와 내 할 일들을 가지고 간다. 백설 공주처럼 점점 지치고 늙어가던 내가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다. 할 일이 줄이 들고 시간이 많아지니 미뤘던 강의도 듣고 산책도 하고 글쓰기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신이 나서 엄마들을 계속 부르다 보니 99명이 되었다. 좁은 집에 엄마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할 찰나 아이들이 소리쳤다.

"안돼! 엄마가 너무 많아지면 진짜 엄마가 누군지 모르잖아" 99명의 엄마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나를 보기 시작한다. 그중 몇 명은 불만을 토로하고, 몇 명은 자신이 진짜 엄마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외침과 엄마들의 아우성이 공간에 가득 찰 때쯤 신랑이 이야기한다.

"얘들아! 진짜 엄마를 찾는 방법은 간단해~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엄마야." 이 한마디에 99명의 엄마들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녀들이 하던 일은 고스란히 다시 내 일이 되었다. '아... 아쉽다'

동화 속 백설공주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난쟁이 집을 떠났고 마녀를 만난다. 그리고 스스로 독 사과 2개를 먹고 깊은 잠에 빠진다.


깨우지 말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잠든 그녀의 결단이 부러워 한참 웃었다.

엄마는 한 명만 있으면 된다는 아이들을 보니 새삼 많이 자란 게 보인다. 가끔씩 도와주는 집안일, 안마 서비스, 노래와 춤까지! 지칠 때마다 아이들이 주는 비타민 덕분에 쉽지 않지만 해내고 있다. 나 혼자 가족들 위해 일한다는 생각은 오만했다. 각자의 방법으로 배려하고 도와주어 이만큼 올 수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99명의 그녀들을 찾고 있었나 보다.

이제 99명의 엄마는 필요 없다. 함께 하면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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