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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an 28. 2024

봄을 닮은 네가 우리에게 왔다

첫째는 허니문 베이비였다. 신혼여행 후 매달 정확한 날짜에 찾아오던 그분이 오지 않아 이상함을 느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약국에 들러 테스트기를 샀고 임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신랑에게 전화로 이야기했다. 우리는 결혼했지만 따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님께서 신혼집 위치에 대장군이 들어섰고 삼살 방위라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강력하게 말씀하셨기에 우리도, 친정 부모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신랑 없는 임산부 생활을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뱃속 아이는 얌전했다. 입덧도 없었고, 소양증도 없었다. 일 많은 엄마가 새벽까지 무리해도 힘들다는 표현 한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배려가 무색하게 변해 가는 내 몸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산모님 몸무게 관리하셔야 해요. 나중에 살 빼기 정말 어렵습니다. 제 담당 산모님들 체중 관리도 제가 해요. 다음 검진일에는 여기 적힌 숫자보다 더 넘으시면 안 됩니다. 많이 걸으세요!!!!"
안 그래도 인생 최대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어 놀라운데, 선생님 말 들으니 찐 살이 다 안 빠질까 걱정 되었다.  

막달이 될수록 불러오는 배 때문에 누워도 편하지 않았다. 화장실도 자주 가고, 다리는 저리고 쥐가 자주 나서 푹 자지도 못했다. 튼살과 임신선도 보이고, 임신선을 따라  털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났다. 생명을 품은 몸은 본래 주인보다 새 생명을 키우는데 열중했고 그럴 수록 내 몸은 볼품 없어졌다.

 다리에 난 쥐 때문에 새벽에 깰 때면 시댁에서 쿨쿨 자고 있을 신랑이 떠올랐다. 나만 고생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밀려온다. 그럴 때마다 TV에서 보던 장면처럼 꼭 머리채를 잡으리라 다짐하며 다리를 주무르다 잠이 들었다.

첫애는 예정일보다 늦게 나온다는 말을 수 차례 들었는데 우리 아이가 그랬다. 출산 예정일이 다 되어 가는데 방 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선생님은 유도 분만을 하자며 날짜 잡으셨다. 좀 더 기다려 보고 싶다 했지만 단호하게 안된다고 이야기하셨다. 유도분만 해야 함을 알렸더니 "그날 낳으면 아이 사주가 안 좋다는데"라고 친정 엄마가 이야기하셨다.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못 들은 척했지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좋은 이야기는 넘길 수 있지만, 찝찝한 말은 쉽사리 넘기지 못했다. 흘러보내지 못한 말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갔고,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출산을 미룰까? 사주가 안 좋다는데.. 그래서 기다려보고 싶었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졌다.


한참 고민하다 결국 병원에 전화를 걸어 유도 분만 날짜를 하루 미뤘다. 선생님의 잔소리가 걱정됐지만, 안 좋다는 말이 귓가에 맴돌아 어쩔 수 없었다.
바뀐 날짜에 맞춰 오전 9시에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 들어갔는데 시베리아 벌판 같은 한기가 돌았다. 앞에 앉은 의사선생님 표정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산모님! 아이가 중요하지 사주가 중요합니까? 그날이 당직이라 유도 분만하면 아이 받아 줄라 했는데 마음대로 날짜 바꾸시면 어떡해요? 제왕절개도 아니고 유도 분만인데 날짜와 시간을 어떻게 맞춥니까? 분만실 없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전 오늘 당직도 아니란 말입니다."
그녀는 속사포로 화를 쏟아냈고, 나는 교무실에 불려온 아이처럼 혼나고 있었다.

'아니, 일부러 좋은 날 받아서 하는 사람도 있다 하던데.. 안 좋다는 날 피하고 싶은 게 잘못한 일인가?'

선생님 입장도 이해 되지만, 내 심정 헤아려 주지 않은 그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담당 선생님을 자극해 봤자 좋을 게 없으니.

'생각이 짧았다. 죄송하다'라는 말에 선생님 화가 좀 풀리는 거 같았다. 밖에 간호사분께 안내받아 분만실로 들어갔다.

분만 촉진제를 맞아도 달라질 게 없었다. 짐볼 가져다 주시면서 몸을 움직이라고 했다.

한참 움직여도 기미가 없어 병실 안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러자 아픔이 찾아왔다.  가진통이었다. 견딜만 했지만 오후 1시가 지나고, 3시가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강제로 양수를 터트렸다. 이전 아픔과는 비교도 안됐다. 아픈만큼 신랑 손을 세게 잡으니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무통주사를 맞은 뒤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계속 진통을 느끼고 내진도 했지만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 들었다.  그 와중에 호흡이 안된다며 산소 호흡기도 착용했다.


밤 9시가 되니 의료진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서둘러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늘 당직 아니라고 하셨는데' 마음의 소리가 들렸는지 "제 산모 아이는 제가 받아야죠" 하며 능숙하게 준비하신다. 분만실 불은 끄고 은은한 조명만 켜 뒀다. 잔잔한 음악을 틀더니 신랑 보고 나가 있으라고 한다.
'안돼!! 머리 잡아야 하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산모님 소리 내지 마시고 힘주세요"  이 악물고 힘을 준다. 더 줘야 한단다. 젖 먹던 힘까지 냈다.

모자란단다. 죽을 만큼 힘냈다.

안되겠는지 간호사분이 배를 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입에서 '꾸어어 아악' 하는 공룡 소리가 나왔다.

 "산모님 소리 내시면 안 돼요!" 나오는 소리를 어쩌란 말인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줄줄 흘러내린다.


 "마지막! 거의 다 왔어요! 한 번만 더!!"
마법같은 말에 홀려 힘을 냈다. 초반에는 아기와 변이 함께 나오는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남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 내가 살아야겠다. 숨을 참고 머리를 들어 배꼽을 보면서 힘을 줘 밀어냈다. 마지막이라는 그 말에 남은 힘을 쥐어짰다. 그 순간 아랫도리에서 뭔가가 쑥 빠지는 기분이었다.

"응애~"
휘영청 달 밝은 밤. 아이는 우렁찬 울음으로 세상에 신고식을 했다. "공주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분만실로 들어온 신랑은 떨리는 손으로 탯줄을 잘랐다. 아이가 세상과 연결된 순간이었다. 간호사분이 가슴에 아이를 올려주자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아프고 서러웠던 눈물은 감격의 눈물로 바꼈고 섭섭함과 후련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벌써 9년 전 일이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온 힘을 다해 만났는데 소중함을 잊고 매일 싸운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기도에 하나씩 추가가 된다. '공부도 잘했으면!'

'친구도 많았으면!!'

' 말도 잘 들었으면!!!'

'책도 자주 읽었으면!!!!'


다 널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내 욕심과 바람이었다. 어렵지만 욕심을 내려 놓는 연습이 필요하겠다.  작아서 걱정했던 아이가 건강하게 쑥쑥 자라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봄의 시작에 찾아온 봄을 닮은 아이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한다.

© ciopres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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