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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Dec 06. 2023

주문하신 메뉴는 품절되었습니다

오늘도 집으로 출근합니다

한창 저녁 준비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둘째가 와서 "오늘 밥은 뭐예요? 볶음밥이 먹고 싶어요"라며 빼꼼 얼굴을 내밀어 싱크대 위를 살핀다. 오늘은 저녁 메뉴가 다 마무리돼서 볶음밥은 내일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상을 차려 내고 있는데 팔짱을 끼고 등지고 앉아 입을 삐죽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아빠도 누나도 맛있다며 같이 먹자는 말에 둘째는 "볶음밥~~~"을 외치며 후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마지막 반찬을 가지고 가던 나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다. "볶음밥이 아니라서 속상했구나 낼 해줄 테니 밥 먹자" 아이는 요지부동이다. 숟가락에 가득 계란찜을 떠서 아이 눈앞에 보여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찜은 개나리처럼 노오란 색이고 탱글탱글하다. 입맛을 다시며 한 입 베어 물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고 고소함만 남긴다. 아이는 최애 반찬인 계란찜으로 볶음밥의 아쉬움을 달랬다.


오늘 저녁은 볶음밥이다. 냉파 할 때 종종 했던 음식이니 냉장고에 있는 야채들을 챙겨본다. 캐롯여사와 양파 양, 햄 총각이 함께 하기로 했다.
캐롯 여사는 쭉 뻗은 다리,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다. 시그니처 컬러인 주황색 코트와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모습은 자신감이 넘친다.  또각또각 구두의 경쾌한 소리와 찰랑거리는 초록 머리카락은 캐롯 여사의 유쾌함을 닮았다. 여사는 반짝이는 눈을 가졌지만 늘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  볼 수 없다.  왜 예쁜 눈을 가리고 다니냐는 질문에 "더 이상 내 매력에 빠지면 곤란하니까~" 하며 손 키스를 날린다.
동글동글 귀여운 외모의 양파 양은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 마음의 문을 닫았기에 옆자리를 쉬이 내어 주지 않는다. 까도 까도 알 수 없는 속마음처럼 사랑받고 싶지만 아닌 척 매서운 눈빛을 쏘는 건 사춘기 아이들을 닮았다. 알싸한 매콤함에 눈물 콧물 쏙 빼는 진심을 보여줘야 달콤하고 투명한 마음을 볼 수 있다.
듬직한 체격의 햄 총각은 칠칠맞지 못해 늘 다녀간 흔적을 남긴다. 기름진 머리에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우습지만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사실 햄 총각은 양파 양을 좋아하고 있다. 양파 양과 함께 있으면 단짠단짠한 맛을 낼 수 있다며 쫓아다니지만 알싸함을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늘 마지막에 부드러워진 양파 양을 만나러 간다.

늘씬한 당근을 잘게 다지고, 동글동글 알싸한 양파도 종종 썰어 놓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은 넉넉하게 준비해 준다. 넓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볶는다. 눈 따가움을 견뎌낸 내게 미안했는지 이내 고소하고 달콤한 향을 선물로 준다. 이제 당근 차례. 당근이 들어가자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평소 양파 양의 패션 센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캐롯 여사는 자신의 코트를 선물해 준다. 투명한 속살이 부끄러웠던 양파 양은 얼른 코트를 입는다. 주황빛 옷을 입은 양파를 본 햄 총각이 참지 못하고 뜨거워진 팬으로 들어간다.  달궈질 대로 달궈져 말랑해진 양파 양에게 고백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천생연분인 양 둘은 찰싹 붙어 팬 안을 돌아다니고 그 뒤를 캐롯여사가 따라간다.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자 꼬맹이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온다. 하얀 밥 가득 떠 넣고 양손으로 신나게 비벼주자 밥알과 당근, 양파, 햄들이 춤을 춘다. 제각각의 움직임은 한데 어우러져 칼군무가 따로없다. 그 위로 노란 계란이 꽃비처럼 내린다. 몸이 노곤노곤한 당근, 양파, 햄은 뒤늦게 온 계란를 반갑게 맞이 한다. 하얀 밥 위에 알록 달록 색깔들이 식욕을 자극한다. 고소한 참기름 한 숟가락 두르고 깨를 뿌려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한다.


"볶음밥 나왔습니다!"

"엄마 너무 맛있어요~" 꼬맹이들은 볶음밥을 세 그릇씩 먹고 난 뒤 만족해하며 엄지 척을 해 줬다. 이 날 볶음밥은 밥알 한 톨도 남지 않고 품절되었다.
냉파용 요리였지만 즐거움과 맛을 준 볶음밥은 당분간 아이들의 최애 요리가 될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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