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다시 쓰는 건, 내 안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글을 다시 쓰는 건,
내 안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두려움과 망설임 끝에서 커서가 깜빡였다.
그 순간, 나는 조금씩 나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컵에 뜨거운 물을 붓자 연갈색 커피가 차오른다.
얼음 몇 조각이 다이빙하듯 뛰어들며 찰랑인다.
챙—쩌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늘도 컴퓨터 전원을 켠다.
‘오늘은 첫 단어라도 써봐야지.’
마음은 단단하지만 손가락은 머뭇거리며 주인의 눈치를 본다.
주인도 손가락에게 한 글자라도 써보길 채근한다.
묘한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싸움에서 진 손가락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판 위에 올라섰다.
긴장된 어깨와 구부러진 허리가 손가락을 응원한다.
천천히 자판을 누르자, 새하얀 화면에 까만 글자가 새겨진다. 하지만 망설임은 빠르게 그 글자를 지운다.
지워진 글자들은 허공을 맴돌다, 낙엽처럼 바스러져 사라진다. 썼다 지웠다를 수없이 반복하자 목이 탄다.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남은 얼음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글로 밥 벌어먹는 것도 아닌데, 한 문장 쓰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초조한 손가락은 책상을 두드리고, 컴퓨터는 열을 뿜으며 말을 건넨다.
“뭐든 적어봐. 뭐든 해봐.”
2년 전이었다.
블로그에 초등학생 수준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메시지도, ‘나’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하루를 기록하는 일기 같은 글이었다.
그러다 좋은 벗들을 만나 1년 넘게 함께 글을 썼다.
처음엔 3~4줄이던 글이 점차 길어졌고, 전하고 싶은 말도 생겼다. 제법 에세이 같은 글이었다. 신기했다.
가끔 “잘 썼다”는 말을 들으면 어깨가 하늘 높이 솟았다.
평범한 일상은 글쓰기의 소재로 가득했고,
하나씩 가져다 쓸 때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행복했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나는 울었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보세요.”
그날의 숙제는 내게 너무 어려웠다.
나에게 눈물은 참다못해 감정을 흘려보내는 마지막 통로였다.
그 문장으로 글을 쓰려면, 저 깊숙이 묻어둔 기억을 꺼내야 했다. 그 감정을 마주 봐야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장면은 나를 그 시간으로 데려갔다.
그때의 어린 내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여전히 그 아이 앞에서 멈춰 선다. 꾸역꾸역 몇 자 쓰다 멈추고, 다시 쓰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글은 느리게 완성되어 갔다.
그 후에도 자꾸 나를 드러내고 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글을 써야 했다. 보기 싫어 묻어둔 기억들, 마주하기 싫어 모른 척한 감정들이 자꾸 들쑤시고 끄집어 올라와 불편했다.
행여 지인이 내 글을 알아볼까, 숨겨둔 못난 모습이 들킬까 두려웠다.
그 마음은 글에 그대로 묻어났다.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 보이려 스스로 포장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걸까.
‘나’를 돌보기보다 ‘타인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진절머리가 났고, 결국 글쓰기를 잠시 쉬었다.
하지만 늘 그리웠다.
일상이 글로 만들어지는 순간이,
서로 공감하며 토닥이던 다정한 시간이,
묻어둔 기억이 글로 완성되던 후련함이.
까발리는 게 무서워 발만 담그고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내 안의 그림자를 마주 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찌그러지고 깨지고 상처 많은 모습도 다 ‘나’다.
그 흔적이 쌓여 단단한 내가 되어간다는 것도.
타닥타닥—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바삐 움직인다.
모니터에 검은 글자들이 쉴 새 없이 생겨난다.
컴퓨터는 조용해졌고, 그 뜨겁던 열기도 잦아들었다.
빠르게 올라가던 글자들이 잠시 멈췄다.
커서는 기다린다. 재촉 없이, 느긋하게 눈을 깜빡인다.
피식 웃음이 난다. 다시 경쾌한 타자 소리가 들린다.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잘 쓰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담담하게 써야지.
그러다 보면, 나의 그림자와도 조금은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