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숙제가 뭐라고

어른이 되어야 했던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by 봉봉

내가 뱉은 말들이 거실에 뾰족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방금 마신 물 위에도 떠 있고, 식탁 위 그릇에도, 그리고 잔뜩 움츠러든 아이의 어깨 위에도 내 말들은 가시처럼 걸터앉아 있었다. 방학 숙제가 뭐라고. 부족해도 괜찮은데.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뽀로로 노래처럼 방학 내내 놀기만 하면 얼마나 신날까. 하지만 현실의 엄마인 나는 그 모습을 마냥 지켜보지 못했다. 글자 하나라도 더 봤으면 하는 나와, 1분이라도 더 놀고 싶은 아이 사이에서 방학 내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졌다. 잠시만 삐끗해도 균형은 무너지고, 그 끝에는 싸움이 있었다.


일하는 엄마는 방학에도 아이를 세심하게 챙기기 어렵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시간을 아이에게 맡겼다. 시간을 정해 주면 아이는 거위처럼 입을 내밀고 책상에 앉아 투덜거렸다.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선택권을 줬다. 오후와 저녁으로 나눠 하든, 저녁에 몰아서 하든, 오후에 끝내고 저녁을 쉬든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내심 나눠하길 바랐지만, 아이는 저녁에 몰아서 하기를 선택했다.
영어 학원과 태권도를 다녀온 뒤 간식을 먹으며 TV를 실컷 보고, 둘째와 조금 놀다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한다. 그때부터 인고의 시간이 시작된다. 문제집은 하루 분량이 많지 않아 부지런히 하면 금방 끝난다. 하지만 일기와 독서록은 다르다. 글을 써야 한다는 것 자체를 아이는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 썼다며 내민 일기는 네 줄. 글에는 귀찮음과 쓰기 싫다는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내용도 어딘가 덜 끝난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다시 불러 조금 더 구체적으로 써 보자고 말했다. 독서록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 장면이 기억에 남았는지 적어보자고 하자 아이의 입이 다시 길게 나왔다. 그래도 아이는 제 방으로 들어가 꾸역꾸역 글을 써 내려갔다. 엉덩이를 토닥이며 “잘하고 있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도 아이가 쓴 독서록을 읽고 있었다. 다른 날보다 길게 적은 걸 보고 잠시 놀랐지만, 줄거리가 이어지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웠다. 책을 다시 펼쳐 읽어보니 내용을 알 수 있었다. 고민이 됐다. 그냥 둘 것인가, 아니면 다시 쓰게 할 것인가. 방학 숙제인데 그냥 넘어가면 숙제도 제대로 보지 않는 엄마가 되는 것 같았다. 줄거리를 엉성하게 적는 습관이 들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아이를 불러 노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책의 여러 부분을 옮겨 적다 보니 흐름이 끊기고,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으니 다시 써 보자고. 예상대로 아이 얼굴에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의자에 앉는 모습, 필통에서 연필과 지우개를 꺼내는 소리마다 짜증이 묻어났다. 그 짜증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옮겨 붙었다.

“더 놀고 싶은데…”

작게 흘러나온 그 한마디가 도화선이 됐다.
“한 번 할 때 제대로 했으면 두 번 안 해도 되잖아.
매일 적으라는 것도 아닌데 할 때마다 짜증 내면 어쩌라는 거야. 공부도 싫고 책 읽기도 글 쓰기도 싫으면 뭐 할 건데?
하루 종일 TV랑 유튜브만 볼 거야? 그래서 나중에 뭐 먹고살 거야!”

말이 쏟아지고 나서야 숨이 가빴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연필을 잡았다. 그렇게 퍼붓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나는 아이 방을 나와 컵에 물을 가득 따라 마셨다. 물을 들이켜도 마음은 조금도 개운해지지 않았다. 방 안은 조용했지만, 내 속은 계속 시끄러웠다.

방학 숙제가 뭐라고. 부족해도 괜찮은데.

널 위한 거라 말했지만 사실은 내 체면을 위한 것이었다.
네가 잘 되길 바란다 했지만, 내 만족을 위한 다그침이었다.
응원한다는 말은 말뿐이었다.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곱씹다 보니 아이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놀기를 좋아하지만 공부도 나름 성실히 하는 아이. 독서록 쓰기는 싫어해도 책 읽기는 좋아하는 아이. 웹툰 작가가 꿈이라며 종종 그림을 그리는 아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은 당연한 것처럼 지나치고, 못하는 것만 들춰내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내가 상처라 말하던, 늘 지적만 하던 내 엄마와 닮아 있었다. 씁쓸한 웃음이 났다.

다음 날 아침, 아이를 꼭 안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스스로 줄거리를 적어보려 한 노력을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길게 써 보려고 애쓴 게 정말 멋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솔직하게 덧붙였다.
“엄마도 칭찬을 많이 받아본 적이 없어서, 노력한 걸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려.
늦게 알아줘서 미안해. 앞으로 엄마가 더 노력할게.
사이좋게 지내보자.”

둘 중 하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날, 어른은 아이였다. 화를 내고 모진 말을 들어도 조용히 받아내던 아이는 나보다 훨씬 크고 깊었다.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래야 한다’는 무의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제는 내가 먼저 어른이 되어 아이를 품고 싶다. 품 안에 자식이라고 품고 있을 시간은 길지 않다. 그 안에 있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겠다. 뾰족한 말 대신, 온기 있는 말을 채워 넣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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