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소아과가 없어졌다

by 봉봉

2년 전, 동네에 있던 소아과가 이전했다.
가까운 곳이었다면 따라가겠지만,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먼 도시였다.

이전 공지가 붙자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엄마들마다 한 마디씩 보탰다.

“선생님, 병원 옮기시면 저희는 어떡해요. 안 가시면 안 돼요?”

간절하게 붙잡아 봤지만 소용없었다. 병원 수익이 나지 않아 옮긴다는데, 더 할 말이 없었다.
소아과가 옮기자 그 밑에 있던 약국도 문을 닫았다.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잘 맞던 신발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소아과의 중요성은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주말 진료가 되고, 집에서 가깝고, 설명까지 꼼꼼한 소아과를 찾는 일은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만큼 어려웠다. 어떤 병원은 갈 때마다 항생제를 처방해서 꼭 필요하지 않으면 빼 달라고 말해야 했고, 증상 설명도 늘 짧았다.

하이에나처럼 소아과를 옮겨 다니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에게 추천을 받았다. 본인 손자도 아플 때마다 가는 곳이라며 집 밑에 있는 소아과를 알려주셨다.

‘이런 곳에 소아과가 있었어?’

4층짜리 건물 2층,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꽤 많았고, 진료 시간도 유난히 길었다. 이유는 진료실에 들어가자 알 수 있었다. 정말 꼼꼼하게 봐주셨다. 왜 아픈지, 집에서는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묻지 않아도 설명해 주셨고, 질문을 더 해도 성실하게 답해 주셨다.

‘만세! 드디어 정착할 병원을 찾았다.’

괜히 웃음이 나고 어깨가 들썩였다.

육아 도움을 받을 곳이 없던 나는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달려갔다. 집 근처 소아과는 그때마다 든든한 백이 되어 주었다. 평일에도 6시 반까지 진료를 보니 퇴근 후에 가도 충분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특히 따뜻했다. 둘째가 두 살 무렵, 진료실 의자에 혼자 올라가려고 낑낑거리던 적이 있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안으려 하자 선생님이 말했다.

“괜찮아요. 혼자 올라올 수 있게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아이를 응원하며 살짝만 도와주셨고, 결국 아이는 혼자 의자에 올라앉았다. 진료도 훨씬 편안하게 이어졌다. 귀 안을 보다가 귀지가 많으면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직접 제거한 뒤 살펴보셨다. 여러 소아과를 다녔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나중에는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 귀 간지러워요. 귀지 빼 주세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아이들뿐 아니라 남편과 나도 아프면 그 소아과를 찾았다. 선생님은 모르셨겠지만, 비공식 우리 집 주치의였다.
한여름, 목이 아파 찾아갔을 때였다. 선생님이 물었다.
“아아?”
“네?”
“에어컨 밑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드셨어요?”
“아뇨, 전 아맥 마셨어요.”
“아맥이 뭐예요?”
“아이스 맥심이요.”
내 대답에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주의사항과 처방전을 건네주셨다.

아이가 열이 날 때도, 감기가 오래갈 때도, 열경기로 응급실에 다녀왔을 때도, 뇌파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선생님은 늘 초보 엄마를 다독여 주셨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마스크가 일상이 되면서 병원을 덜 가게 되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환자가 줄어 병원을 옮긴다는 말이 너무 안타까웠다. 마트였다면 매일 가서 뭐라도 샀겠지만, 병원은 그럴 수 없으니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이렇게 눈만 높여놓고 어디로 가시느냐고.

2년 전, 우리 동네 소아과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 자리에 미용실이 들어섰지만 간판은 아직 남아 있다. 여전히 진료하는 줄 알고 찾아오는 부모와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만큼 이 동네에 소아과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출산율이 떨어지니 소아과가 줄어드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다. 먹이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대신, 병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되어야 하니까.
필요할 때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소아과가, 우리 동네에 다시 생기기를 바란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더는 헤매지 않아도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