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by 봉봉


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내 이름은 영미였다.



꽃부리 영 자에 아름다울 미를 써서 영미.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촌스러웠고, 예쁘지 않아서 싫었다.

'이름 좀 예쁘게 지어주지'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동생 이름도 중성적인 느낌이 나는 걸 보니 단순히 예쁘게 지으려는 의도보다는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 한 거 같았다. 철학관에 돈을 주고 이름을 지었을 테니 당연히 좋은 이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이름은 돈 주고 지은 이름이 아니었다.


"동생 이름은 돈 주고 지었고 언니 이름은 그냥 지었네."


철학관 할아버지의 말에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왜 내 이름만 그런 거지? 진짜 나 주워온 자식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며 시무룩해졌다.


엄마의 화살은 곧장 아버지에게 향했다. 돈까지 들여 부탁했다던 내 이름이 어째서 '그냥 지은 이름'이 되었는지, 그 허망한 전말은 이랬다.

아버지 먼 친척분들 중 이름을 엄청 잘 짓는 어르신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자 부모님은 그분께 이름 짓기를 부탁하셨다. 직접 내려가지 못하고 시골에 사시는 큰아버지, 즉 아버지 형제 중 맏형에게 부탁하셨다. 이름 짓는 거니 돈도 챙겨 드린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 부탁은 그 어르신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큰어머니께서 밥 하신다고 아궁이 앞에 앉아 "이름을 뭐라 지을꼬? 영미라 할까? 꽃부리영에 아름다울 미 써서. 영미 좋네" 하고 지으셨다. 어르신이 아니라 큰어머니가 대충 지은 이름은 그대로 부모님께 전달되었고 내 이름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화가 나서 팔짝팔짝 뛰었다. 그리고 아버지께 화풀이하기 시작했다. 손윗동서들이 시킨 시집살이도 한몫했으리라


그 길로 철학관에 가서 이름을 다시 지어 달라했다. 철학관 할아버지는 내게 원하는 이름을 생각해 오라고 했다.
두근거렸다. 원하는 이름이라니! 꿈꿔오던 예쁜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엄마는 화냈지만, 나는 큰어머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찌나 설레던지. '뭐라고 할까?' 세빈, 유빈, 세아, 세린, 은비, 은아 등 생각나는 대로 종이에 적어봤다. 적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다시 철학관 가는 날, 예쁜 이름들이 적힌 종이를 꼭 쥐고 엄마를 따라갔다. 발걸음은 가볍고 나는 신났다. 세상 모든 사물들이 예쁘게 바뀔 내 이름을 부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물색없이 즐거워하는 날 보고 엄마는 한 소리 했지만 상관없었다. 곧 '영미'라는 이름을 벗고 새 이름을 받을 거니까. 새 이름이 주는 설렘에 취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철학관에 도착해서 가지고 온 종이를 살며시 드렸다. 할아버지는 종이를 유심히 보시고 방긋 웃으셨다. 긍정의 의미인 줄 알았지만,


"열심히 적어왔는데 이 이름들은 너랑 안 맞아서 안 되겠다."


하시며 작명한 것을 보여주셨다. '영미'와 별 다를 바 없는 이름이었다. 남자 이름 같기도 하고 예쁘지도 않은 이름에 실망했다. 아까 까지 부러워하던 사물들이 날 비웃으며 수군거리는 거 같았다. 마음에 안 든다고 버텨봤지만,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바로 개명신청을 했고 '영미'와는 작별했다.

그러고 나서 이름을 지을 일은 없을 줄 알았더니, 온라인 세상에서 쓸 이름이 필요했다.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이름으로 지을 수 있었기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무슨 이름으로 할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멋진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블로그 개설 후 이름을 첫째 아이 태명을 가져다 썼다. 그때는 블로그를 거의 하지 않을 때라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나고 블로그에 글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00 맘' 또는 '00 엄마'라는 이름은 쓰기 싫었다. 그냥 '나'이고 싶었다.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특별한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교 때 몇 명 친구들이 부르던 별명에서 따와서 '봉봉'이 되었다. 흔하지만 예쁘고 싶어 앞에 '달콤'도 붙였다.
'달콤 봉봉' 파란 하늘 따뜻한 햇살아래 막대사탕 입에 물고 즐겁게 웃는 모습이 생각난다. '봉' 할 때 입 모양이 동그랗게 되면서 발음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에는 정이 안 갔지만 계속 부르다 보니 정이 생겼다. 자꾸자꾸 부르고 싶은 이름이 되었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와 꽁꽁 숨기고 싶은 방어 기제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그 모순적인 틈새에서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익명적인 '달콤 봉봉'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달콤 봉봉'으로 글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답게 실제 '나'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사진은 당연히 안 올렸고, 직업, 나이, 사는 곳 등을 굳이 적지 않았다. 주변인들이 몰랐으면 했고, '달콤 봉봉'이라는 이름 뒤에 숨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니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더라.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글쓰기 선생님은 더 드러내라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주저한다.


그래서 어린이집 연재 글도 그만뒀다.

내 직업과 직장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을 적는 게 부담스러웠다. 글 속의 나는 늘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는 '성자'였지만, 현실의 나는 퇴근길이면 녹초가 되어 짜증을 삼키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 1mm의 가식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혔다.


글 속의 '나'와 현실의 '나'의 모습 차이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두려웠고 글을 쓸 때마다 불편했다. 그래서 연재를 멈췄다. 내 경험담이지만 트집 잡히기 싫어서, 욕먹기 싫어서, 잘 포장해 보려는 노력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못난 모습은 꼭꼭 숨겨두고, 예쁜 모습만 보여주려는 애쓰는 '달콤 봉봉'은 현실의 '나'에게 발목 잡혔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여전히 '나'를 보여주는 행위에 대해 불안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드러내고 난 뒤 찾아오는 해방감과 시원함도 알고 있다. 얼마나 드러낼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글 속의 '나'와 현실의 '나'의 간극을 좁히고 싶으니 시도해봐겠다.


이제는 예쁜 이름보다, 정직한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다." 혹은 "영미도, 봉봉도 아닌

'진짜 나'를 향한 1mm의 전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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