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방학.
첫째 아이와 함께 증권사를 방문해서 계좌를 개설하고 왔다. 주로 거래하는 계좌가 있지만 공모주 청약 하려면 필요하기 때문에 미루다 일하러 가기 전에 끝내자 싶어 다녀왔다.
혹시 영업점 계좌 개설이 안 될까 불안한 마음이 가득 안고 증권사로 무거운 발걸음 옮겼다.
재작년 여름. 공모주가 뜨거웠던 시간이었다. 애들 계좌까지 만들어서 청약을 넣으면 몇 주 더 배정받을 수 있어 하루 날 잡고 증권사를 돌며 계좌를 만들었다. 증권사를 방문하면 창구 앞에 안내문이 붙어있었고 공모주 때문에 왔다고 하면 척척 해 주셨다. 계좌를 만들다 보면 나처럼 애들 계좌 개설 하려는 부모들과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볼 수 있었다. 방문한 사람들만 봐도 공모주 인기가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계좌개설 하는 날은 두 아이의 계좌를 만들고 대기시간도 있기에 다른 일은 할 수 없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고 싶었다.
오전에 한 군데를 다녀오고 A증권사를 갔는데 대기 인원이 꽤 있어서 번호표를 뽑고 차례가 되어 창구로 갔다.
짜증이 가득한 얼굴의 직원분을 마주 보고 앉아 애들 계좌 개설 하러 왔는데 준비한 서류들 외에 더 필요한 서류가 있는지 물었다. 추가 서류가 필요하다면 다음에 만드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직원분은 서류 관련 해서는 별 말이 없었다. 대신 영업점에서 만들면 거래수수료가 많이 나가니 은행에서 연계 계좌로 만들라고 하였다.
애들은 은행 계좌가 없기에 증권사에서 만들고 싶다고 하며 추가 서류가 필요한지 재차 물었다.
"은행가시면 알아서 다 만들어 드릴 거예요"
예쁜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지점 방침이었을지 몰라도 내 시간도 중요했기 때문에 증권사 영업점에서 만들고 싶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바로 앞에 B은행 있으니 거기서 만드시면 됩니다"
대놓고 안 만들어주겠다는 말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왜 안 만들어주는지 궁금했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나도 물러서지 않자 직원분은 미간을 찌푸리고 큰 눈을 가늘게 뜨며 한숨을 내 쉬었다.
"3개월간 핸드폰 요금 납부이력 또는 관리비 납부 내역 있어야 하는데 가지고 계세요?"
하! 깊은 빡침이 저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여러 번 물었고 처음부터 말해줬다면 실랑이할 필요 없이 다른 증권사로 갔을 것이다.
버린 시간이 아까워 화가 났는데 나보다 더 화가 난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대체 왜 화가 난 걸까.
상사한테 지적받았나? 월급이 안 들어왔나? 애인이랑 헤어져서? 몸이 안 좋아서? 계좌 개설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 같은 말을 반복해서? 뭐가 됐던 그녀의 짜증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눈싸움을 하던 중 우리 꼬맹이들이 생각났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지 못하고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이 아이들과 닮아있었다. 어른이었지만 아이 같은 그녀와 눈싸움을 끝내고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수많은 말들을 꾹꾹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상냥하게 말하기에는 날씨는 너무 더웠고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수수료가 8배 차이 나는데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두 해가 지나 그때와 다른 지점에 방문했는데 계좌개설이 수월하게 끝났다. 은행 방문을 안 해도 되고, 한 번에 업무처리를 다 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끝나 시간을 선물 받은 느낌이어서 감사했다.
영업점을 나서니 더운 여름에 만났던 그녀가 떠 오른다. 마음은 어린아이 같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자라지 못하고 심술을 부리니 괜찮은지 살펴봐야 한다고. 나에게도 괜찮은지 꼭 물어봐야 한다고. 그때의 그녀에게 짜증 나던 마음은 괜찮아졌는지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