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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Oct 11. 2021

소년 시절의 너: 네가 있었기에

하수구에서도 함께 별은 볼 수 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 폭력은 바로 여러분 곁에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그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에게 힘이 되길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주길 바랍니다




위 문구는 영화 오프닝 장면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감독은 영화의 기획 의도를 오프닝에서 명확하게 드러낸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다는 것. 그리고 학교폭력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한다는 것.


영화의 배경은 명문 고등학교이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한다. 삶의 목표는 오로지 좋은 대학교. 선생님들은 시험만 잘 치면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여자 주인공 '첸니엔' 또한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왜 옷을 덮어준 거니?


(...)

 샤오디에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을  같아서 덮어줬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건물에서 한 여학생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적 비관으로 인한 자살이라 생각했지만 그 여학생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학교폭력 때문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린 여학생의 시신을 구경할 때, 첸니엔은 그 시신 곁에 다가가 옷으로 얼굴을 덮어준다.






첸니엔의 이러한 행동이 아이들의 주목을 끌자 학교 내에서 아이들을 지독히도 괴롭히던 '웨이 라이' 무리들이 첸니엔에게도 접근한다. 첸니엔은 우등생이었기에 웨이 라이는 첸니엔과 함께 공부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첸니엔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꾸준히 피해자를 찾아다녔고 힘이 없는 피해자는 어떠한 방어막도 없이 계속해서 공격을 당해야 했다.

일단 시험을 봐야 했기에. 시험을 잘 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했기에.





남자 주인공 '베이'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 길거리 생활을 해온, 몸과 마음엔 항상 상처가 가득한 소년이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맞고 있는 베이를 첸니엔이 구해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웨이 라이 무리에게 심하게 학교폭력을 당한 첸니엔이 베이를 찾아온다. 그리고 베이에게 부탁한다. 자신을 지켜달라고. 그렇게 베이와 첸니엔의 거래와 연대가 시작된다.



첸니엔)  그래?

베이) 우리 같이 있는 거 누가 보면 안 돼


첸니엔) 난 상관없어

베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넌 계속 걸어. 네 바로 뒤에 내가 있을게.


첸니엔) 뒤에서 뭐 할 건데?

베이) 아무것도 안 해.







아파?

- 아픈 건 익숙해


언제부터?

- 13살 때부터

(...)

첸니엔, 나한테 아프냐고 물어본 건 네가 처음이야.




기댈 곳 없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여 삶을 견디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괜히 뭉클했다. 첸니엔에게 처음으로 진심 어린 걱정을 받아 본 베이, 자신을 지켜 줄 사람이 없었던 첸니엔이 베이로부터 보호받는 그 둘의 유대 관계는 곧 끊어질 것 같기에 더욱 아련하고 더욱 소중해 보였다.









첸니엔) 괴롭힘 당한 게 제 잘못인가요?

- 네가 겪은 일은 마음 아프지만

어른들을 믿고 말했어야 우리가 도와주지.


첸니엔) 누가 나를 도와줘요? 그때 촬영한 사람? 구경꾼? 그렇게 당한 건 내 탓이라고 손가락질한 사람?


- 그래서 혼자 해결한 거야? 웨이 라이한테 복수하고?


첸니엔) 다들 복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대입 시험 때문에 꾹 참고 견디는 거 그건 잘못인가요?

그게 이 세상 원리라면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고 싶으세요?



영화에는 '어른'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등장한다.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첸니엔에게 네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라 이야기한다. 또 오로지 시험 통과만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어른'이다. 과연 이들은 진정한 어른일까?



시험 끝나면 어른이 되겠죠.

엄마는 나이 들면 좋은 게 있대요.

잘 잊어버린다고.

결국 다 잊을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어른 되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 주네요.




개인적으로 진정한 어른은 이 영화엔 등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경찰과 선생님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첸니엔의 엄마도 첸니엔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하지만 베이와 첸니엔은 서로를 지켜줬다. 그리고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첸니엔의 주변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질 수 있는 관계들 - 엄마와 딸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등 - 이 꽤 많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진짜 사랑은 베이와 첸니엔의 관계 속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들의 사랑이 가장 날 것이었고 순수했고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베이의 세상에서 전부였던 첸니엔, 첸니엔의 세상에서 끝까지 그녀를 지켜주는 베이. 그동안 사랑받아 오지 못한 둘의 사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훌륭하다. 배우 '주동우'는 연약하고 외로운 소녀 첸니엔 역할을 맡았다. 그녀의 툭하면 눈물이 쏟아질 듯한 눈,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부러질 듯한 가냘픈 몸, 그 모든 것이 첸니엔 그 자체를 연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얼굴에 있는 미세한 주근깨마저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배우 '이양천새'는 베이 역할을 연기했는데 상처투성이인 몸, 얼굴과 대비되는 공허하고 슬픈, 외로운 그의 눈이 베이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남녀 주인공 두 명의 연기가 너무 생생하고 인물 그 자체인 듯 편안해서 몰입하기가 굉장히 쉬웠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첸니엔과 베이, 둘의 관계가 너무나 애틋해서. 그리고 너무나 응원해 주고 싶지만 곧 둘의 관계가 끊어질 것이라는 걸 알아서 많이 슬펐다.




특히 내가 눈물을 쏟았던 장면은 웨이 라이 무리에게 심하게 괴롭힘을 당해 머리카락이 잘린 첸니엔이 베이를 찾아가자, 베이가 그녀의 머리를 밀어주고 자신의 머리도 함께 미는 장면이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모든 일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진행되는데 첸니엔의 눈물, 베이의 슬픈 눈빛이 음악과 함께 잘 어우러져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또한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로 취조실 장면을 꼽을 수 있다. 첸니엔과 베이가 웨이 라이 사망사건의 범인으로 잡혀오는데 그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서로를 모르는 척해야 했다.




베이) 네가 대학 졸업할 때쯤 나도 석방될 거라고

- 첸니엔) 난 아무 데도 안 가


베이) 너만 잘 살 수 있다면 난 패자가 아닌 거야. 네가 먼저 세상에 나가면 내가 널 찾아갈게

- 첸니엔) 싫어


베이) 첸니엔, 어른이 된 후에 우리 다시 만나는 거야

잊지 마라. 너 나한테 갚을 거 있다





첸니엔)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한다고요?

그게 누군데요?


베이) 내가 첸니엔을 돕는다고요?

그래서 뭐가 생겨요?




서로를 모른다는 그들의 말과는 달리 관객의 머리에는 그동안 둘이 함께 쌓아 온 추억, 공감, 위로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가혹한 현실이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두 배우의 표정과 눈빛에서도 그 모든 감정들이 드러난다.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어른'들이 참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취조실 장면은 연출 또한 훌륭하다. '난 걔를 몰라요'라는 대사가 나오는 동시에 두 배우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서로를 모르는 척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행동을 강조함과 동시에, 말과는 달리 그들이 그동안 깊은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도 강조해 준다. 이 같은 섬세한 연출 또한 이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큰 역할을 했다.










한 달만 참아. 베이징으로 떠나면 돼.

첸니엔) 그때까지 못 버티면? '후 샤오디에'처럼 되라고?


걔는 너무 약했어. 애들한테 당한 걸 못 참은 거야

첸니엔) 걔만 약한 게 아니야.

너와 나도 마찬가지라고.



오프닝에서도 나왔다시피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을 다루는 영화다. 그러나 학교 폭력만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무자비한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성적 우선주의, 약자들의 연대, 학교 폭력을 다루는 사회 시스템의 한계 등을 함께 보여주며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학교 폭력 피해자들에게는 그들이 힘든 현실 속에 있음을 깊이 공감하며 학교 폭력은 피해자의 탓이 아니기에 힘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준다. 참 슬프고 가혹하지만 따뜻하고 속 깊은 영화를 오랜만에 만나 기분이 좋았다.





베이) 넌 뭐 하고 싶어?

- 첸니엔) 시험 잘 보고 좋은 대학 가기.

똑똑한 사람이 돼서 인생의 답도 찾고

가능하면 세상을 지키고 싶어.


베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 첸니엔) 노력해보려고.

베이) 이렇게 할까?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




'하수구 속에서도 별은 볼 수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베이와 첸니엔이 있는 곳은 하수구 같은 깊고 어두운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보았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학교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 학생들 또한 하늘이 보이지도 않는 깊숙한 하수구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런 하수구 속에서도 별은 볼 수 있지만 많은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훗날에는 넓은 들판에서 맘 편히 별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때까지 많은 '어른'들은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하늘을 올려다봐야 할 것이다.



+) 다시 보니 첸니엔 쪽에는 밝은 햇빛이 내리쬐고 있고 베이 쪽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베이에게 첸니엔은 빛 그 자체이고, 첸니엔에게 베이는 어두운 곳에 항상 그대로 있어주는 그림자같은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 연출인 듯하다





















gif 출처


https://hyxxnx.tistory.com/326?category=877977


https://moonsol.tistory.com/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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