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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Apr 21. 2023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어

외로움도 저 바다에 날려버리겠어

아무리 울어도 울어지지 않는 날에, 조용히 파도가 말을 걸어오는 길에, 언제까지 머물 거냐는 누군가의 말은 '금방 돌아가겠다'고 대답해 보지만 나만 또 제자리에 서성이며 남아 있는데, 어느 새벽달이 지나가네. 난 오늘도 전하지 못한 말들이 있나, 파도에 소리쳐봐도 들리지 않으니, 그렇게 억지라도 웃어 보이는 건 내일이 있어서야.


발걸음엔 그림자가 잔뜩 배어있고 처음이 주는 떨림은

이젠 익숙해서, 그냥 아무 대답도 못한 채로 남아 있는데, 어느 새벽달이 지나가네. 난 오늘도 전하지 못한 말들이 있나, 파도에 소리쳐봐도 들리지 않으니, 그렇게 억지라도 웃어 보이는 건 내일이 있어서야.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어.

외로움도 저 바다에 날려 버리겠어.

아무리 도망쳐봐도 아침은 올 테니, 그렇게 너를 보며

웃어 보이는 건 등대가 빛나서야.



작사: 하현상




0.

이 곡은 하현상의 3번째 EP 'Calibrate'의 타이틀곡이다.

"Calibrate", 악기에 저장된 세팅 값을 초기화시키는 버튼의 이름이다. 3rd EP의 제목 "Calibrate"에서 느낄 수 있듯, 처음으로 돌아가는 마음을 담아 제작된 하현상의 세 번째 EP로서 아티스트가 전곡 작사, 작곡하여 음악적 깊이와 완성도를 더하였다.
- 하현상 Calibrate 앨범 소개 글 -

그리고 내가 '하현상'이라는 가수를 처음으로 알게 해 준,

나에겐 아주 뜻깊고 고마운 곡이기도 하다.



1.

아무리 울어도 울어지지 않는 날에

조용히 파도가 말을 걸어오는 길에


이 곡의 화자는 어두운 밤에 바닷가를 걸으며, 찰랑이는

파도를 보며 생각에 잠긴 듯하다.


'아무리 울어도 울어지지 않는 날'

마음속 깊은 곳에 뭔가 답답하고 슬픈 것이 있어 그걸 꺼내버리고 싶은데, 실컷 울어버리며 풀어버리고 싶은데 그게 어려운 날. 화자의 마음은 아마 이런 상황인 것 같다. 그리고 화자는 이런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밤의 바닷길을 걷는다.




2.

언제까지 머물 거냐는 누군가의 말은

금방 돌아가겠다고 대답해 보지만


사실 화자가 이런 서글픈 마음을 갖게 된 이유는 '누군가의 말들' 때문일 수도 있다. '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야'와 같은 말들.


혹은 이 '누군가'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라며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줄 때 내가 느끼는 열등감의 말들, 그로 인한 자책의 말들.


이런 타인의 말, 나의 말들을 들을 때면

'나 금방 제자리를 찾을 거야', '나 돌아갈 거야'라고 말하곤 하지만,


나만 또 제자리에 서성이며 남아 있는데


언제나 나만 그 자리에 있다.


더 이상 나아가지도, 성장하지도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의 감정들.




3.

어느 새벽달이 지나가네

난 오늘도 전하지 못한 말들이 있나

파도에 소리쳐봐도

들리지 않으니

그렇게 억지라도 웃어 보이는 건

내일이 있어서야.


그때 화자는 새벽하늘에 뜬 '달'을 본다.

화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파도에게 소리친다.


내가 하지 못한 말이 있냐고,

내가 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거냐고.


하지만 답은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그럼에도 우리는 억지로라도 '내일'을 살아간다.



4.

발걸음엔 그림자가 가득 배어 있고

처음이 주는 떨림은 이젠 익숙해서

그냥 아무 대답도 못한 채로 남아 있는데


어느 순간 기대와 설렘보단 걱정과 후회, 두려움만이 가득해진 일상들. 그런 일상 속엔 밝은 빛보다 짙은 그림자가 배어 있다.


그래서 가슴 떨려했던 첫 만남과 경험조차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무뎌져버린 것들로 남아 있다.


이젠 이런 생각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화자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다.



5.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어.

외로움도 저 바다에 날려버리겠어.


화려하지만 애처롭고 슬픈 기타 리프 브릿지가 끝나고 나오는, 곡의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에 나오는 가사.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어"


"정확히 뭔가 말하고 싶어서 딱 시작한 곡은 아니었거든요 그냥 그 상황을 노래를 해볼까 했는데, 새벽에 바닷가를 많이 걸었거든요. 그냥 그 새벽에 걸으면서 했던 생각들 계속 떠올려보면서 '아, 그래야겠다. 결국엔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다' 그런 결론으로 가는 곡이죠."
- 하현상 [Calibrate: 스물넷의 하현상] ep.1 中 -


결론은 '나'였다.


"그 누구도 내가 될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오던 날 바다에서 든 생각" - ‘등대‘ 곡 소개글 -


화자는 1절, 2절에 나오는 자신의 감정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나 스스로에게서 찾는다.


사실 너무나도 맞는 이야기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 그 누구도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지도, 나 자체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스스로와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 가며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것뿐이다.


하현상은 이것을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다'고 표현한다.


내 마음이 힘들고 작아 보이는 날엔 나를 자책하고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끼고 소중히 다뤄주고 돌봐주는 것, 그게 하현상이 새벽에 바닷가를 걸으며 내린 결론이며 청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메세지가 아닐까.


외로움도 저 바다에 날려버리겠어


그렇게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다'라는 결론을 내린 화자는 그제서야 자신의 걱정을 바다에 날려버리겠다고 다짐한다.



6.

아무리 도망쳐봐도 아침은 올 테니

그렇게 너를 보며 웃어 보이는 건 등대가 빛나서야


이 곡에서 '내일' 그리고 '아침'이라는 단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자가 그럼에도 살아가게 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밝은 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걱정을 바다에 날려버리겠다고 결심한 화자는 다시 한번 반드시 찾아오는 내일의 아침을 떠올린다.


아무리 도망쳐봐도 아침은 올 테니


그렇게 '파도에 소리쳐봐도 들리지 않는다'고 느꼈던 화자는 '아무리 도망쳐도 아침은 올'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고,


그렇게 너를 보며 웃어 보이는 건 등대가 빛나서야


'억지라도 웃어 보였던 화자'는 나를 힘들게 했던, 이제는 '너'가 된 '나'를 향해 웃어 보인다. '나를 좀 더 돌봐줄', 변하게 될 '나'인 '등대'의 빛과 함께.



7.

이 곡의 가사를 해석하기 위해 가사의 주인공을 계속해서

'화자'라 언급했다. 하지만 이 곡의 주인공은 우리 모두이다. 삶의 방향과 목표를 잡지 못해, 그리고 나 자신을 알지 못해 생기는 근본적인 외로움을 겪게 되는 우리, 청춘들의 이야기다.


이렇듯 하현상은 항상 이런 불안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여 곡을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언제나 불안과 아픔에 대한 슬픈 인정과 희망이 있다.


이 곡도 마찬가지다. 1절과 2절에는 끝없는 우울이 나열되어 있지만 곡의 끝엔 밝은 희망과 가능성의 메세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 그래서 하현상의 곡을 들을 때마다 '다른 사람도 모두 그렇구나' 하는 위로와 '잘될 거야, 열심히 해야지' 하는 희망을 얻게 된다.


하현상은 찬란함과 서글픔 사이의 경계, 행복과 슬픔의 경계를 노래할 줄 아는 가수다.


8.

또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하현상의 목소리.


하현상의 목소리에는 '쉼'이 있다. 억지로 끌고 가려하지 않는, 그냥 나오는 대로 부르는 음과 끝나는 대로 끝내는 여유와 느긋함이 있다. 꾸밈이 없다.


그래서 느긋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한껏 위로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애써 삶을 열심히,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앞으로도 나는 삶이 힘들 때마다 하현상의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게 될 것 같다.


세상에 정말 많은 가수가 있는데 이렇게 좋은 노래로 나를 정확하고 포근하게 위로해 주는 가수를 만난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나는 하현상과 그의 노래를 정말 소중히 다루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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