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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Apr 15. 2023

선물에 담긴 것은

독일에서 만난 어떤 따뜻한 순간

무료한 수업 시간이었다.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은 거의 없어 보였다. 각자의 할 일을 하느라, 옆에 앉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교수님의 이야기엔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수업은 토요일 수업이었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점심시간도 없이 진행되는 수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두 차례나! 역시 유럽인가… 한국이라면 토요일 수업은 꿈도 못 꿨을 텐데 하며 친구들과 함께 투덜대며 등교했던 수업이었다.


그러나 짧은 쉬는 시간 직전, 교수님께서는 우리를 모두 집중시킬 만한 한 마디를 꺼내셨다.


‘여러분에게 줄 선물이 있어요’


이 말과 함께 교수님은 가방에서 수줍게 하리보 젤리를 꺼내셨다. 학생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I brought some more. Because I realized the last

time you were here, you sat here for 4 hours

without eating something”

(조금 더 챙겨 왔어요. 왜냐하면 지난 수업 시간, 여러분들이 여기 앉아 있을 때, 나는 여러분들이 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여기 앉아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교수님은 자신의 수업을 듣기 위해 주말에, 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위해 하리보 젤리를 가져오신 거다(다음 짧은 쉬는 시간 전엔 초콜릿을 주셨다)


나는 오묘한 뭉클함을 느꼈다. 단순한 고마움, 감사함을 넘어선 감정이었다.


수업에 오기 전 교수님은 아마 앞으로 4시간 동안 수업을 들을 학생들을 위해 하리보와 초콜릿을 사러 가게에 가셨을 거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들이 있는 간식 판매대에서 학생 수에 맞는 간식을,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을 찾고 고르셨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선택한 간식을 가방에 잘 넣고 수업에 오셨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수업을 듣진 않지만 꿋꿋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위해 간식을 주셨을 거다.


이 모든 과정 속엔 ‘학생들을 위한 마음’이 들어있다. 이 마음이 없이 이 모든 것들은 불가능하다. 내가 뭉클함을 느낀 건 아마 교수님의 이런 마음을 눈치챘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우리는 그 선물 자체에만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상대방은 나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노력했을 것이며, 딱 맞는 선물을 사기 위해 가게에 갔을 것이며, 그리고 고민 끝에 수줍은 선물을 골랐을 것이고 그 사람을 위해 선물을 포장하고 전달했을 것이다.


아마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느끼는 고마움은 이 과정에서 오는 고마움이 아닐까.


머나먼 유럽 땅, 독일에서 느낀 이 감정은 아직도 마음에 진하게 남는다. 이런 따뜻함 덕분에 나는 꽤 오랫동안 하리보 젤리를 보면 싱긋 웃음을 짓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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