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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Jan 28. 2022

나는 이제 '부러움'을 인정해보려 한다

너, 참 부럽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나에게 매우 가까운 감정이었지만 나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감정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떤 사람인가'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에 내가 나에 대해서 가장  번째로 깨달은 것은 바로 '질투심'이었다. 나는 질투가 많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남들보다 무조건 잘해야 했으며 경쟁에서  이겨야 했다. 하지만 이런 면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남들에게 나의 이런 면모를 드러낸다면 독한 아이라는 평가를 들을까  무서웠다. 하지만 나의 이런 성격 때문인지 어른들은 나를 ' 잘하는 아이', ' 부러지는 아이'라고 많이 평가하셨다.


하지만 세상 일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고, 나보다 훨씬 우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이런 좌절감을 처음으로 느꼈던 시기는 중학교 때였다.


나는 시골에 있는, 한 학년에 반이 2개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그곳의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했고 나의 악바리(?) 근성으로 공부를 잘한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우리 가족은 도시로 이사를 갔다. 따라서 나는 자연스럽게 도시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게 됐다.


그곳에서 나는 느꼈다.

'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공부를 엄청나게 잘하는 아이, 얼굴이 엄청 예쁜 아이, 엄청나게 재밌는 아이 등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이 그곳에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많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항상 잘한다, 잘한다 소리만 들어왔던 내가 그곳에 가니 내놓고 '나 이거 잘해!'라 이야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내 마음속은 좌절감과 열등감으로 가득 찼다.


혼란스러웠던 중학생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 오로지 '공부'만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시기였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시내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당시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중학교 3학년 때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보고 일정 점수를 넘어야 했다. 즉,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입학한 친구들은 공부 실력이 어느 정도 보장된 친구들이었다는 것이다.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겨우겨우 적응하여 또래 친구들의 수준을 겨우 따라잡았는데, 이젠 거기다가 정말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모인 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이상하고 신기한 경험을 했다.


당시 영어와 수학 과목은 분반 수업을 했다. 우수반은 A반, 중급반은 B반, 기초반은 C반이었다. 나는 대부분 B반에 속해 있는 학생이었다. 신기한 건 나는 B반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 했다. 분명 공부는 더 잘하고 싶은데 A반에는 가기 싫어했다. 그렇다고 C반으로 내려가고 싶지도 않았다. 한 번은 수학 B반에 있던 내가 A반으로 올라간 적이 있는데 그 시기에 수업을 듣는 내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 수업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냥 나는 B반이 가장 편했다. 너무 못 하지도, 너무 잘하지도 않는 그 딱 중간.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나는 왜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잘하고 싶지 않을까.

왜 항상 중위권에 머무르려 할까.

시간이 지난 지금, 그리고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난 지금,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A반에 있는 친구들에게 지기 싫었던 것 같다. 또 좌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B반에 있으면 언제나 그 친구들, 나와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만 있기에 굳이 그들을 견제하며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A반 친구들은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

B반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친구들.

C반 친구들은 (나를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

부끄럽지만 그때 당시 이건 내가 만든 나만의 질서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C반에 있던 친구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A반으로 올라가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어..? 쟤네는 나보다 공부를 더 못 하는 애들인데, 못해야 하는 애들인데 쟤네가 왜 나보다 더 공부를 잘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점수가 오르고 상급반으로 올라가는 게 당연한 건데,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화가 났다. 그 친구들이 미웠다. 나는 여전히 B반에 있었으니까.


그때부터 속으로 그 친구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떤 식으로 공부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지켜보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면 가서 방해하고 싶고 그랬다. (계속 말하려니 좀 많이 부끄럽다) 그렇게 그 친구들을 '의식'하면서 공부하느라 정말 '나'를 위한 공부를 하지 못 했고 그들을 '이기기' 위한 공부만 계속해서 하게 됐다.


결과는 성공적이지도 못 했다. 난 또다시 좌절감에 빠졌다. '난 왜 저 아이들보다 공부를 잘하지 못 할까', '난 왜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난 왜 저 친구들을 질투하고 있을까'.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들의 노력을 축하해주고 싶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가서 물어보고 싶어도 내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나의 생각들은 최근까지 이어져왔다.




어릴 때부터 느껴왔던 이 감정들은 모두 '부러움'에서 시작된 감정이다.


난 나보다 공부를 잘하고, 나보다 학교 생활을 잘하는 친구들을 매우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부러움을 애써 외면했다. 그 결과 나에겐 자괴감, 열등감, 질투만이 남았다.


이 감정들은 나를 성장시키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너 정말 부럽다'라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게 어려워서 애써 친구들의 약점을 찾기 시작했고 그들을 경쟁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들이지만 그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질투와 자책의 감정이 섞여 마음 편히 친구들을 대하기도 힘들었다.


나는 상대를 부러워하는 것을 '내가 너한테 졌어', '나는 패배자야'와 같은 잘못된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러움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젠 이런 삶이 힘들어졌다.


누군가를 시기하며 예의 주시하기도, 질투하기도, 자책하기도 이젠 싫다. 그래서 난 이제 '부러움'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보려 한다. 나를 성장시키는 하나의 동력으로 만들어보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부러움을 상대방에게 표현해보려 한다. 나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나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기꺼이 나의 부족한 면을 드러내고 도움을 받아보려 한다.


정말 감사한 건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나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속으로 질투하고 경계했을 때도 그들은 내 옆에 남아주었고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보낸다. 이런 부족한 내 옆에 남아 있어 줘서, 그런 나의 마음까지 다 감싸 안아줘서 고맙다고.


이제 나는 자연스럽게 부러움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또 기꺼이 도움을 주는 그런 여유롭고 둥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 다짐이 흔들릴 때도 있겠지만 잘못 들어간 길에서 '다시 돌아오는 법'을 알기에 꾸준히 나의 마음을 보살피고 다독이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나의 세계는 어떠한 모습일지, 어떠한 향기를 풍기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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