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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Jul 27. 2021

6.좁은문, 전원교향곡,배덕자를 읽고

거대한 골리앗과 싸웠던 갈등하는 작은 다윗의 이야기

거대한 골리앗과 싸웠던 갈등하는 작은 다윗의 이야기

좁은문, 전원교향곡, 배덕자를 읽고-앙드레 지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6




앙드레 지드의 문체는 참 마음에 들었다. 지적이면서 간결하고, 무척이나 맑은 영혼의 소유자란 느낌이 들어 읽는 내내 기분 좋게 글을 읽었는데  다 읽고 더 읽을 지면이 없어서 아쉬운 적은 앙드레 지드가 처음인 것 같다.


앙드레 지드의 일생을 찾아서 보니 좁은문, 전원교향곡, 배덕자에 그의 자전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서 더 흥미로웠다.


그의 일생을 보니 남자로서는 쓰레기란 인상이 들었고 작가로서는 거대한 기독교라는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순수하나 작은 다윗의 인상이 들었다.



남자로서는?  부인에게 제대로 쓰레기인 지드


13세부터 좋아한 외사촌 누이인 마들렌에게 21세 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구애하여 5년 후인 26세 때 마들렌과 결혼을 한다. 그런데, 결혼 전부터 지드는 동성애적 취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들렌과 결혼을 한 뒤, 마들렌처럼 순결한 여자는 성적인 욕망이 없을 것이라 단정하여 부부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소년들과 쾌락에 빠지거나 리셀베르그의 부인과의 사이에서 카트린이란 딸을 낳고, 집안에서 잘 아는 목사의 16세의 아들인 마르크와 연애를 하는 등 부인으로서는 참지 못할 일을 수시로 한다.


마들렌이라는 여성을 자신이 만든 순결한 여자로 만들어 놓고 남자인 자신의 욕망만 채우는 인생을 살면서 마들렌의 욕망이나 자아는 왜 홀대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드가 69세 때 아내 마들렌이 사망하여 큰 충격을 받을 정도이고 지드의 작품의 뮤즈라고 할 만큼 부인인 마들렌은  [배덕자]에서는  마르슬린으로, [좁은문]에서는 알리사로 나오고 있다. 지드의 문학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줄만큼 사랑했다고 하는데 너무나 이율배반적인 그의 삶을 지켜본 그의 아내 마들렌이 겪었을 여자로서의 상처에  가슴에 아팠다.


프랑스의 지성이자, 현대인의 무신론적 휴머니즘의 선도자, 인간 사회의 인도자로 인정받으면서 여자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부인에게는 그 누구보다 가장 상처를 준 나쁜 남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16세의 마르크와 영국으로 잠시 피신할 동안, 부인인 마들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어 분노와 충격으로 지드가 보낸 모든 편지를 태워버렸을 때, 지드는 마들렌의 마음을 위로해주기보다는 자신이 썼던 편지가 사라졌다는  점을 더 괴로워했다고  한다.


지드는 마들렌을 인간인 사람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의 관념적이며 작품 속 이미지로 포장하여 허구적인 헛사랑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작가로서는? 거대한 골리앗과 싸웠던 갈등하는 작은 다윗


[좁은문], [배덕자], [전원교향곡]은 성경적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얼핏 보면 기독교적인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으나, 결국엔 기독교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입장에서 작품을 썼다고 한다.


거대한 기독교에 대항하여 개인 작가로서 맞서는 모습이 거대한 골리앗과 싸우는 갈등을 하는 작은 다윗의 모습과 비슷하다. 



근거 1. 좁은문에서의 기독교 비판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제롬은 방학 때마다 두 살 위인 알리사와 한 살 아래의 줄리엣이 사는 외사촌이 있는 삼촌 집에서 함께 지냈다. 제롬은 정숙한 알리사에게 사랑을 느끼고 알리사도 제롬을 사랑하게 된다. 바람기 많은 알리사의 어머니가  가정을 버리고 젊은 장교와 집을 나가자 알리사의  신앙은 더 깊어진다.


알리사:    네 곁에서 나는 인간으로서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행복을 느껴. 하지만 내 말을  믿어 줘, 우리는 행복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야.

제롬:       인간의 영혼이 행복보다 더 바라는 것이 무엇이지?

알리사:    성스러움…….


알리사는 그녀 스스로 인간적인 사랑의 욕망을 버리고자 사랑하는 제롬을 뒤로하고 청교도적인 금욕주의자로 살기 위해 성경에서 말하는  '좁은 문'을  선택한 후, 결국 죽음에 이른다.


여기서 지드는 실제 외사촌 누이이자 부인이 된 마들렌을 [좁은문]의 알리사에 투영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극단의 청교도적 금욕주의로 인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저버린 알리사를 비판하면서 더 나아가 알리사의 죽음을 낳게 한 기독교나 하나님까지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지드를 '악마 같은 사람'이라며 비판하며 [좁은문]을 금서 목록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좁은문]은 이러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오면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결국엔 지드에게 노벨 문학상도 안겨준다.


근거 2, 전원교향곡에서의 기독교 비판


목사인 ‘나’는 죽어 가는 노파가 있다는 외딴 오두막으로 갔다가 눈먼 고아 소녀 제르트뤼드를 데려온다. 짐승과도 같았던 아이는 목사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가르침으로 점점 성장해 간다. 아름다운 외모, 눈이 보이지 않기에 더욱 세상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에 목사는 이성적으로 제르트뤼드를 사랑하게 된다.  제르트뤼드 또한 자신을 돌보아 준 목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고 여겼으나 수술을 통해 앞을 보게 된 후, 사랑한 사람은 목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살하게 된다. 


아내와 아이가 있음에도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된 목사는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비도덕적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원초적인 욕망과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


가장 신성한 존재여야 할 목사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어린 소녀를 데려와 키우면서 부인과 자식이 있음에도 비도덕적인 사랑을 하면서 성자 인척 위선을 일삼는 기독교계를 비판한 것이다.



작품에서 작가의 모순


책을 읽고 나니, 작가의 삶이 투영된 작품 속에서 그의 모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유 1. [좁은문]에서의 알리사는 마들렌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었다.


실제 부인인 마들렌도 외사촌 누이이고 좁은문에서의 알리사도 외사촌 누이로 나와 겉으로 보면 알리사에 마들렌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맞다.  


그런데 알리사가 극단적 금욕주의자로 사랑하는 남자인 제롬을 끝내 거부한 점은 지드가 아내인 마들렌을 순결한 여자로 자기만의 착각에 빠져 결혼을 하고도 부부관계를 맺지 않은 점에서 진정한 알리사는 아내인 마들렌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 금욕주의자인 알리사를 통해 제롬이라는 인간의 사랑을 저버린 기독교를 비판했으나, 지드의 실제 삶 속에서 마들렌을 극단적 성녀로 만든 후, 마들렌이라는 현실적 아내인 인간의 사랑을 저버린 지드는 바로 그 알리사였던 것이다.




이유 2. [전원교향곡]에서의 목사의 모습은 작가 자신이었다.


[전원교향곡]에서 목사의 아내인 아멜리를 묘사할 때 실제 아내인 마들렌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는데, 실제로 목사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와 아이가 있음에도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된 목사는 자신의 비도덕적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원초적인 욕망과 진실을 은폐한다는 점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데, 작가인 지드도 작품의 목사처럼 아내인 마들렌이 있으면서도 미소년과 동성애,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는 등 그 자신의 욕망을 미화시키고 동성의 어린 애인을 아내에게 은폐한다는 점이 같다. 


작가로서의 자유나 자아의 해방이라는 미사여구로 자신의 행위를 미화해도 아내인 마들렌에게는 가식적이고 자기기만적인 행위로 보였고, 작가인 지드도 이런 문제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항상 갈등 상황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역자인 동성식도 

 “그의 삶은 매우 종교적인 동시에 무신론적이었으며, 기독교 신앙의 문제는 그의 삶에서 큰 갈등의 원천이었다”라고 평했다.


기존 종교와 도덕을 비판하기 위해 개인의 해방과 자유를 원했던 지드는 그의 사상에 뿌리내린 기독교 신앙과 기존의 도덕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기에 항상 그 경계선상에서 갈등을 하며 고뇌했던 것이다.


이유 3. [배덕자]에서 미셸은 작가 자신이었다.


법학교수인 최고의 엘리트인 아버지와 부유한 사업가 집안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드는 엄격한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지만 지드는 기성 교육과 도덕관에 혐오감을 유년기부터 느끼면서 청년기에는 생명의 해방을 노래한 자전적 소설인 [배덕자]를 발표하며 기독교와 기존 문명에서 탈출하여 자아를 해방시키려 했다고 한다.


[배덕자]의 주인공 미셸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아름다운 마르슬린과 의무감으로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받은 유산으로 알제리, 이탈리아 등을 여행한다. 여행 도중 폐병에 걸려 피를 토한 미셸은 휴양지에 머물며 마르슬린의 극진한 간호를 받는다. 


생명이 살아 있는 자연 속에서 점차 건강을 회복해 가던 미셸은, 순진하고 정숙한 아내 마르슬린과는 다른 어린 소년들의 생생한 활력, 건강한 몸과 아름다운 얼굴, 도덕과 배덕 사이를 넘나드는 그 자유분방함에 매혹된다.


마르슬린의 임신과 유산으로 마르슬린의 건강이 악화되고 미셸도 마르슬린의 간호를 나름 정성껏 하나, 마음속에서는 삶의 활력과 건강하고 아름다운 남자, 비문화적인 것들에게 끌린다.


결국 마르슬린은 미셸이 그의 배덕을 쫓느라 자리를 비운 날 밤에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미셸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전하면서 마지막으로 절규한다.


"나를 여기서 데리고 나가 주게나. 나 스스로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내 의지 속 무엇인가가 부서졌어......"


[배덕자]는 작가인 지드의 첫 소설이자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 미셸의 고백을 따라 진행되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지드는 종교와 도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와 욕망을 따라 살았지만, 결국엔 마르슬린의 죽음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비판하고 있다.



[좁은문]과 [배덕자]는 작가인 지드가 밝혔듯 애초에 2부작으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따른 미셸의 대척점에는 극단적인 청교도적 금욕주의를 따른 알리사가 서 있다.


이 책([좁은문]을 지칭함)이 [배덕자]와 쌍둥이고, 두 주제가 경쟁적으로 나의 정신 속에서 자라고 있었으며, 한쪽의 과잉이 다른 쪽의 과잉 속에서 은밀한 허락을 발견하면서 둘 다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누구에게 설득할 것인가?   지드의 일기, 갈리마르, 365쪽


서로의 극단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데 지드 자신이 '둘 다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누구에게 설득할 것인가? '라고 묻고 있지만, 실제로는 둘 다 균형이 무너지고 작가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행복한 결말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인간의 인생에 정답이 없듯 지드 자신이 정답을 찾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는지.

그래서 갈등은 인간의 숙명이고 정답 없이 방황하고 고뇌하는 것도 인간의 숙명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드레 지드가 아내인 마들렌에게는 제대로 된 쓰레기 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의 인물들은 모두 매력적이라 세 작품 모두 한 번에 읽을 만큼 재미가 있었고, 지드의 모든 작품을 찾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덕자]의 미셸은 너무나 지적이면서 완벽주의자라서 나쁜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밉지가 않다. 아니, 아주 매력적이라 글을 읽는 내내 미셸을 흠모해서 나 자신이 자꾸만 그를 훔쳐보게 되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세 작품 중에서 미셸이란 인물이 가장 인상에 남고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마르슬린의 우아한 자태며 마음도 매력적이라 그녀에게도 마음이 간다.


[전원교향곡]의 목사인 주인공도 섬세하고 자상하며 순수했기에 순수한 영혼을 지닌 제르트뤼드에게 끌려버리게 된다. 어쩌면 그의 부인인 아멜리가 처녀 적 순수했던 그 모습을 잃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이가 들어서도 순수를 갈망했던 목사와 나이가 들면서 가난한 목사부인의 가난한 삶과  많은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순수를 잃고 현실적인 아낙네로 변했던 아멜리의 사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졌던 것이다.


[좁은문]의 제롬도 일편단심으로 알리사를 향한 사랑을 지켜나가는 순애보를 보여주는데 정말 순수한 영혼을 가졌다는 느낌이 든다. 순정만화에나 나올법한 인내심과 순애보로 알리사를 지켜보고 알리사 또한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여주지만, 인간적인 사랑보다 '성스러움'을 택해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신의 사랑을 구하는 수녀가 되어 죽어버린 것이다.


지드의 문체 모두 서정적이면서 아름다워서 나쁜 일탈을 하거나 못된 짓을 하는 장면도 아름답게 나온다.  미화시켜서 그랬다는 비판도 있지만 세 작품 모두 고고하고 맑은 분위기라 읽는 내내 낭만적이란 느낌이 들어 현실을 잊고 책에 푹 빠지기에 아주 좋았다.


갈등하고 고뇌하는 지드의 작품 속 인물들은 아주 생생하게 다가왔다. 고민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라 더 끌리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나라는 인간도 늘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하고, 별것 아닌 것에도 갈등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정답인 줄 알았는데 정답이 아니었고, 틀린 줄 알았는데 정답으로 알게 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릴 적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대학 졸업 후 무신론자처럼 종교 없이 살아오면서 종교와 무신론자 사이에서 갈등도 많이 했었다. 그러면서 아직 정답은 찾지 못했다.


지드의 소설을 통해 다시 나의 내면을 돌아보게 된 것 같다.  문학전집을 통해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나면서 결국엔 나 자신의 내면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결국 소설 읽기는 나 자신을 읽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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