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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Jul 20. 2021

5.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고

언론의 개소리에 빼앗긴 인권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고-하인리히 뵐

언론의 개소리에 빼앗긴 인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서양문학사를 통해 알게 된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의 책임에도 무엇보다 책이 아주 얇아서 편하게 읽어 볼 요량으로 빌려왔다. 오르한 파묵의 책은 두꺼운 데다 2권씩 되니 읽는 게  약간은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 쉬엄쉬엄 읽으려 일부러 얇은 책을 고른 것이다.


이 책은 보통의 책과 다른 형태에 놀라게 되는 것 같다. 마치 무성영화 시절 '변사'가 화면을 보며 자신의 경험을 버무려 더 강조하거나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펼치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화자가 변사와 같은 역할을 해서 독자는 책에 몰입하기보다 좀 더 멀리서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보게 된다.


마지막에 작가의 글을 보니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이야기라고 책의 제목 밑에 첨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후기에서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데 소설보다 이야기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후기에서 벤야민의 입장에서 본 소설과 이야기의 차이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야기는 화자가 자신의 삶의 경험을 내용으로 삼고, 청자 역시 그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으로 가질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산업과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널리 보급된 소설은 더 이상 타인으로부터 조언을 구하지 못하는 고립된 작가가 골방에서 쓴 고독한 개인의 이야기로서 타인과 그 경험을 나누지도, 타인에게 조언을 해주지도 못한다고 벤야민은 설명한다. 


뵐이 이 작품을 소설이 아닌 이야기라고 하는 까닭은 아마도 그 내용이 담보하고 있는 현실성에 대한 강조에서 연유하며 이 작품이 세상사와 무관하게 생산된 텍스트가 아니라는 점, 어떤 현실적인 사태에 대해 독자들과 경험을 나누면서 그 진실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고자 쓰인 것이라는 점에서 이야기로 수용되기를 바라면서 이런 의도에 적합한 작품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뵐은 고립된 골방에서 소설을 쓰는 작가보다 어떤 현실적인 사태에 독자들과 경험을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맞다.


근거 1.

1970년대 초 바더 마인호프 그룹으로 불리는 학생 조직이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과격한 테러 행위를 통해  국민들을 불안하게 떨게 했던 때에 있었던 일이다. 소도시에서 은행 강도 사건으로 한 시민이 총상으로 죽자, 일간지인 <빌트> 지는 확인 절차 없이 이 사건을 바더 마인호프 그룹의 소행으로 단정 짓는 선정적인 기사를 썼다. 이에 뵐은 즉각 빌트지의 보도 방식을 비판했는데 이 사건으로 보수 시민들은 뵐을 갱들의 변호사라며 심한 비난을 퍼부었고 협박이 심해 뵐과 부인은 집 밖을 몇 주간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근거 2.

바더 마인호프 일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여 해직되었다 나중에 무혐의로 복직되었으나 상당한 명예 실추를 당했던 하노버 공대 심리학 교수 페터 브뤼크너라는 실존했던 사람이 이 작품의 모델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실제 팩트를 바탕으로 뵐은 언론의 폭력을 우리에게 제대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인생 모두 관찰자가 아닌 참여하는 지성인으로 그의 펜을 이용했던 것이다.


언론이 한 폭력은 바로 개소리의 폭력이다. 티빙에서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를 통해 [개소리에 대하여]를 김경일 교수의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개소리'의 폭력성과 이 책에서 말하는 언론의 폭력성은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이며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는 점에서 아주 비슷했다.


[개소리에 대하여]의 작가 해리 G. 프랭크퍼트는 개소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렸다. 강의 들었던 요점과 출판사 리뷰가 같아 출판사 리뷰를 가져왔다.


해리 G. 프랭크퍼트-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세계적으로 저명한 도덕철학자로 도덕철학과 정신 철학, 행동철학, 17세기 합리주의 등을 주제로 영향력 있는 논문을 다수 발표함.


개소리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액면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말도 안 되는, 하지만 단순한 헛소리와 달리 화자의 교묘한 의도가 숨겨진 말이다. 이때 숨은 의도란 작정하고 진실을 틀리게 말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말이 맞든 틀리든 그 진릿값은 무시하고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그 말을 하겠다는 심산이다.


개소리와 거짓말은 어떻게 다를까? 개소리는 거짓말만큼 나쁘거나 위험하지는 않은 걸까? 저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 거짓말쟁이는 참인 것을 일부러 틀리게 말해야 하기 때문에 진실이 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최소한 진리를 존중하는 셈이다. 또한 거짓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을 들여 세심히 만들어내야 하지만, 개소리 쟁이는 그럴 필요가 없다. 개소리는 본질적으로 진리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내뱉은 말이 허위임이 밝혀진다 해도 개소리는 개소리일 뿐, 거짓말처럼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별생각 없이 함부로 말한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개소리는 이처럼 진리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생각 없는 무책임한 언행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 개소리는 심사숙고하며 말하는 참말도 거짓말도 아닌, 참과 거짓의 논리 자체를 부정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교활하고 파괴적인 언어행위다.


언론은 여론의 관심을 받아야 하고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해야만 한다. 언론인들의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바르게 생계를 유지하고 공정한 언론으로 가는 길은 힘든 것 같다.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좀 더 흥미로운 그런 이야기를 원하고 밋밋하거나 그저 그런 이야기는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언론은 점점 더 무리를 하게 되고 자극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책의 거대 언론인 <차이퉁>지가 선량한 시민인 '카타리나 블룸'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해버린 '괴텐' 과의 하루의 만남을 이용하여 언론의 제대로 된 개소리로 무참히 주인공을 망치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전부터 마녀사냥을 비롯하여 현재의 악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잘 모르면서 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동조하면서 누군가를 희생자로 삼아 무료함을 달래 왔다.


미투 운동으로 성인지성이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봐줄 만했던? 성적 희롱들이 현재에 와서는 눈감아 줄 필요가 없는 중대 범죄가 되어 버렸듯,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개소리에 대한 반성도 우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죄가 없는 이를 희생자로 만들지는 말아야 하니까.


언론의 갑질과 폭력에 모든 삶이 파탄 난 카타리나 블룸은 밤 12시에  '인터뷰'를 핑계로 집으로 온 <차이퉁>지의 기자 퇴트게스에게 총을 쏘았다.


퇴트게스 기자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만 하는 블룸의 어머니가 있는 병실에 무단으로 변장하여 잠입한 후, 강제 인터뷰를 한 뒤에 충격으로 죽은 엄마의 복수를 위해서, 그간 차이퉁지에서 지어낸 개소리에 대한 미안함도 없이 개소리를 해대는 그를 응징하기 위해서!!


'어이, 귀여운 블룸 양, 이제 우리 둘이 뭐하지?  왜 날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거지? 나의 귀여운 블룸 양, 우리 일단 섹스나 한탕하는 게 어떨까?'


언론의 힘을 믿고 양심도 없이 짓밟아 버린 블룸을 창녀를 대하듯 아주 쉽게 '섹스나 한탕하는 게 어떨까?'라니!!


'어디 한탕해보시지, 이판사판이니까'


블룸은 권총으로 그를 향해 총을 쏜다.


겉으로 드러난 살인이라는 폭력과 살인을 불러일으킨 언론의 개소리 폭력의 무게는 어떻게 재면 좋을지.


죄의 경중을 다루는 염라대왕은 어떤 판결을 내릴까?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부제인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이야기는 현재에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언론이 아니더라도 좀 더 힘이 있다는 이유로 또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아니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는 계속 개소리를 해댄다는 것이다.


그런 개소리를 거르는 지성이 필요하다. 휩쓸리면 지는 것이다. 그래야 개소리의 힘이 약해지고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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