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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Jul 06. 2021

1.내 이름은 빨강을 읽고

소설로 그려낸 세밀 화가들의 그림과 고뇌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터키의 최초 노벨상 수상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1.52

소설로 그려낸 세밀 화가들의 그림과 고뇌

21.6.24         


독서모임에서 인도 영화 ‘세 얼간이’를 보고 난 후, 원 작가인 체탄 바갓의 책을 빌리러 갔다가 동양의 다른 나라 작가 책도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터키의 노벨상 수상자라고 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녀석이 [내 이름은 빨강] 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독특했던 점은 학교에서  1인칭,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배우고 그런 책에 익숙했다가 챕터마다 시점이 달라지는 점이었다. 그래서 쭉 읽다 보면 지금 시점이 누구지? 하며 챕터 제목을 다시 보며 확인하며 보게 된다.     


 챕터 제목처럼 금화도, 죽음도, 사람도 모두 화자가 되어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세 얼간이’의 체탄 바갓처럼 사건 위주가 아닌 묘사 중심이라 지루한 면도 있다. 그런데, 자꾸 읽다 보면 줄거리보다 묘사에 빠져 지루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계속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묘사를 읽으며 머리에 그림을 그리면 눈앞에 그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무엇보다 최고의 장인으로서 세밀 화가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열망이 순수해서 그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 들게 된다.     


이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내 이름은 빨강』은 오스만 제국 궁중 화가들이 술탄(이슬람 국가의 통치자)의 명령에 의해 제작될 책에 서양미술의 영향을 받은 세밀화(細密畵)를 그리는 도중 차례로 살해되는 이야기로 역사 추리소설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작품은 표면적으로 살인범의 정체를 찾아가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절세미인 셰큐레를 어릴 적부터 사랑해 온 카라, 그녀를 향한 끈질기고 맹목적인 연정을 품고 있는 시동생 하산, 그리고 자신의 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늘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아버지 에니시테 사이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된 러브스토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시대적, 정치적 변화 속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장인 정신을 구현하는 예술가들에 관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러브스토리보다 장인 정신을 가진 예술가들에게 나는 더 끌렸고, 그 여운이 많이 남았던 것 같다.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캐릭터는 화원장 오스만이었다. 거의 주인공에 가까워 비중이 높았던 절세미인 세큐레나 사건이 일어나게 만든 장본인인 세큐레의 아버지인 에니시테는 속물에 가까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는 카라의 순수한 사랑 때문에 카라도 매력적이긴 했지만, 화원장 오스만은 비중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관통하는 예술가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화원장 오스만이 술탄의 명령 아래, 3일간의 시간을 얻어 카라와 함께 술탄의 보물 창고에 들어가 화풍이 비슷한 살인자를 찾기 위한 장면이 나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오스만의 눈을 통해 함께 창고의 고귀한 예술품을 감상하게 된 것 같다.     


카라는 3일간의 시간을 통해, 살인자를 찾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을 염려해 초조한 반면, 화원장 오스만은 실제로 보는 거장들의 예술 작품에 빠져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그림 속에 빠져들며 지적, 예술적 희열을 맛보게 된다.     


살인자를 찾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보다 오스만에게는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그 거장들과 영혼의 교감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술탄의 보물창고에 온갖 진귀한 다양한 나라의 물건들을 전리품으로 취해 모아 두고는 그 가치를 경제적으로만 보고 예술적으로는 볼 줄 몰라 등한시한 술탄에게 이 창고는 먼지가 폴폴 나는 고물 창고에 불과했지만, 진정한 예술가인 오스만이 들어가니, 먼지 더미 속에 숨어 있던 오래된 예술품은 그 가치를 발휘해서  찬란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근엄했던 오스만이 고귀한 예술품 앞에서 순진한 아이처럼 그 작품의 가치와 매력에 대해, 카라와, 창고를 지키는 창고지기에게 수다스럽게 말하는 장면은 흐뭇함을 자아낸다. 3일의 시간이 아까워 잠도 자지 않고 쉬지도 않고 작품을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이자 스스로 자신의 거취를 정한 오스만의 결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가장 최고의 순간에 오스만은 존경하는 거장이 사용했던 바늘로 스스로 그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6세기 말, 이슬람 세밀화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밀려와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원근법의 화풍과  신의 눈으로 기억한 대로 그리는 이슬람 세밀 화가들의 문화적 종교적 충돌로 인한 갈등이 이 소설에서 관통하는 가장 큰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화원장 오스만은 스스로 눈을 찔러 그가 지키고자 했던 이슬람의 화풍을 마지막으로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오스만도 알고는 있었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변화의 물결을.     


그래서 그가 아꼈던 뛰어난 제자들이라 친근한 별명까지 지어준 엘레강스, 나비, 올리브, 황새 등의 세밀화가가 오스만을 등지고 서양의 화풍을 들여오려던 에니시테의 물질적 공세와 은밀한 술탄의 명령이라는 미끼에 넘어갔다는 것을.     


그래서 오스만은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대가의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준다.  또한, 제자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범인이 누군지도 밝혀낸다.          


‘ 내 이름은 빨강’에서 빨강은 살인, 죽음을 가리키면서, 이 시대에 가장 귀했던 색을 말한다.      

가장 존귀했지만,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파도에 ‘빨강’도 자리를 내주어야 했는데 그 자리를 내주는 과정에서 ‘빨강’은 쉽게 내려오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살인’을 당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문화의 충돌과 격변기에 겪었을 수많은 갈등과 고뇌를 이슬람의 세밀화가들을 대표선수로 내보내고, 실제 영화와 그림을 보듯이 세밀하게 그들을 묘사한 작가 오르한 파묵의 그 집념에 박수를 보낼만하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스탄불로 종교에 따라 이름이 바뀌면서 모든 종교의 흥망 성세를 지켜본 이스탄불은 동서양이 가장 처음 만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동서양의 문명 충돌을 누구보다 먼저, 더 거세게 겪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먼저 고뇌하고 결정하고 도전한 진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 21세기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빨강’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고 버려야 할까?     

그리고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해갈까?     


마지막으로 정말 지켜야만 하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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