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8일
오랜만에 쓰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날이 흐려서 덥지 않았다. 걷기에 최적의 날씨.
이틀 푹 잤더니 컨디션이 좋았다. 보호대도 차지 않고 걸었다.
비도 살짝 왔다. 날씨가 선선해서 기분이 좋았다.
점심을 먹으러 들른 바. 영화에 나올 것처럼 생겼다.
오늘은 벨로라도까지만 걸으려고 했는데, 컨디션과 날씨가 도와주니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무니시팔에서 잤더니 정신없고 요리하기도 어려웠다. 조금 더 가서 작은 마을에 있는 소박한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다. 그 알베르게는 구글 리뷰가 극과 극이었는데 자세한 후기는 아래서...
갑자기 정오부터 날씨가 화창해졌다. 더 걷기로 한 게 후회될 정도로 더웠다.
숙박+석식+조식 28유로
https://maps.app.goo.gl/yUfn5jsGgXP9Pdx18
숙소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예약 전 구글 리뷰를 찾아보았다. 혼란스러웠다. 최고의 숙소라는 후기와, 할머니에 대한 불만이 공존했다. 동선 상 다른 곳을 가기에도 여의치 않았고, 사진으로 봤을 때 숙소가 아늑하고 식사도 맛있어 보였다.
독일인 부부가 운영하는 숙소로, 할머니가 전반적인 관리를 하시고 할아버지는 주로 요리를 담당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독일인 아저씨 두 명과 한 방에 묵게 되었다. 이곳은 규칙이 엄청난 알베르게였다. 할머니는 쉴 틈 없이 지켜야 할 것들을 불러주었다. 침낭을 사용하지 말아라, 낮에 불 켜지 말아라, 물을 아껴 써라, 수건은 방에 널면 안 된다, 창문도 열지 말아라 등등... 할머니의 엄격한 표정과 높낮이 없는 말투, 수많은 규칙이 나를 긴장시켰다. 내가 만약 이 숙소에 혼자 묵었더라면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독일인들 역시 뻘쭘하게 선 채 혼나는 걸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 한 명은 영어를 했지만 한 명은 거의 하지 못해서 영잘알 아저씨가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었다. 둘 다 젠틀했다.
내려가 손빨래를 하려고 보니 빨래 바구니가 없었다. 바구니만 있었어도 빨래를 했을 텐데, 그냥 플렉스하기로 했다. 세탁기 3유로, 4500원. 할머니에게 세탁기를 돌리려고 한다고 말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으려고 하자 할머니가 또다시 엄격한 표정으로 "내 세탁기는 나만 만질 수 있다"고 했다.(;;) 땀에 젖은 빨래를 만지게 하기가 죄송스러워 내가 넣으려고 했던 건데. 머쓱해진 유교걸. 이제 보니 손빨래를 한답시고 지저분하게 만드는 게 싫어 일부러 빨래 바구니를 갖다 놓지 않은 것 같았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마을에 하나뿐인 바에 갔다. 간단한 점심 식사에 콜라를 마시고 있는데 E님이 등장했다. 이 마을에는 숙소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내가 묵는 곳, 다른 하나는 이 바에 딸린 숙소였다. E님은 이곳에 묵는다고 했다. 한참을 대화했다. 하다 보니 E님의 속 깊은 이야기까지 알게 되었다. 중간에 내가 맥주를 한 잔 샀다. E님은 내일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버스 시간표, 정류장을 다 알아봐놨다고 해서 나도 같이 가기로 했다. 부르고스가 큰 대도시라 들어가는 길이 도롯가여서 걷기 힘들고, 버스를 타는 경험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찍 도착해 체크인을 한 뒤 성당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쉴 생각에 신이 났다.
7시에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E님과는 내일 아침에 보자며 헤어졌다. 주인 할아버지는 아저씨들과 연신 독일어로 대화하다가 나를 위해 중간중간 영어로 해석을 해주었다. 독일인 네 명에 낀 한국인 하나... 그 상황이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조용히 있고 싶어 이 숙소를 선택했는데, 독일인 부부의 저녁은 두 시간짜리 코스였다. 식사가 끝나니 기가 쏙 빨렸다. 하지만 식사는 정말 맛있었다. 순례길에서 먹은 것 중 베스트였다. 직접 만든 디저트까지.. 예술이었다.
산티아고에 와서 아빠에게 매일 사진과 카톡을 남겼다. 혼자 순례길을 떠난 딸에 대한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한 배려였다. 그런 게 그게 반복되다 보니 아빠는 내가 어쩌다 카톡을 남기지 못한 날에는, 오늘은 왜 카톡이 없냐며 연락을 해왔다. 나는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는 하지도 않았던 행동을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했던 거였는데, 호의로 시작된 행동에 어느새 강제성이 부여된 느낌이었다.
비슷한 상황을 애인과도 겪었던 적이 있다. 산티아고로 떠나기 전날이었다. 애인이 지방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것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도착 시간과 장소가 픽스되지 않고 계속 변경되는 것이 마뜩지 않았고, 뭔가를 먹고 출발하려고 배달을 기다리는 사이 애인의 일정이 또 한 번 당겨져 시간이 촉박해져버렸을 때 기분이 확 가라앉아버렸다. 여차저차 시간과 장소를 맞춰 애인을 픽업해 근처로 밥을 먹으러 갔다. 표정이 좋지 않았던 나에게 애인이 먼저 물어봤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데리러 가는 것에 대해 애인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했고, 애인은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냐며 우리는 조금 다퉜다.
아빠에게 드는 감정과 애인에게 느꼈던 감정이 닮아있었다. 배려라는 것은 남이 나에게 먼저 요구하는 순간 찝찝해진다. 그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어떤 요구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하냐, 그런 건 전혀 아니다. 애인이 처음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흔쾌히 응했던 것처럼 어떤 기준 안에서는 상대의 요구를 편하게 수용할 수 있다. 내가 불편해지는 지점은 나의 특정한 일정이나 계획이 상대의 요구로 인해 흔들리는 상황까지 갔을 때 같다.
나는 현실을 떠나 스스로에게만 집중하고자 산티아고에 갔다. 아빠에게서 연락을 재촉하는 카톡이 올 때마다 내가 두고 온 현실의 무게가 떠올랐다. 물론 아빠는 내가 산티아고에 온 이유를 전혀 몰랐다. 거기다 먼저 매일같이 카톡을 보내놨으니 연락이 늦어지는 날은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이 되었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빠의 감정, 아빠의 요구가 나의 계획을 흔드는 꼴이 되었다.
애인을 데리러 가던 날, 나는 다음 날 오전 산티아고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생전 처음 맞이할 이벤트를 앞두고 긴장되어 있었다. 불안은 곧 강박으로 이어지곤 한다. 모든 것이 차질 없이 이어지도록 머릿속에 그려두었는데 애인의 사정으로 자꾸만 나의 일정이 흔들렸다. 애인은 그 때마다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나를 걱정도 해주었는데, 이미 불안감이 건드려진 나는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런 부분에서 민감하다. 항상 나만의 그림을 그려놓는다. 타인을 위하여 얼마든지 내 그림의 디테일을 바꿀 수 있지만, 그들이 직접 내 그림에 손을 대는 순간 기분이 상한다. 특히 불안, 긴장 등의 부정적 감정 속에서는 더욱 예민해진다. 비슷한 문제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나만의 그림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빠에게 이번 여행의 목적과 나에게 가지는 의미를 미리 알렸다면 기분 상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애인에게는 내가 새로운 일을 앞둘 때 곧잘 긴장하며, 그럴 땐 무엇인가 이리저리 바뀌는 것을 불안해하기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들 수 있다고 알려주었으면 되었다. 감정의 원인에 대한 충분한 고찰 없이 "네가 당연한 줄 여긴다"고 이야기했으니 다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에 대해 또 하나 알아간다. 걷는 것은 오늘로써 끝이 났지만, 이어지는 스페인 여행에서도 나는 여러 가지를 경험했다. 긴 여행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적어 내려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