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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11(나헤라-산토도밍고)

2024년 8월 7일

by 소로


나헤라-산토도밍고데칼사다(20.8km)(2024.8.7.)





5시 반부터 그대로 곯아떨어져 아침까지 잤다. 11시간을 넘게 잔 것이다.


컨디션이 좋았다. 몸을 짓누르던 가방이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벼운 몸으로 출발.




같은 방을 썼던 스페인 여성분들이 앞에 보인다. 친구 사이라는 두 분이 함께 길을 걷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Ana와 Maria






캄캄한 길을 헤드랜턴으로 비추며 걷는 순례자들



주황빛으로 물드는 하늘.




적당한 곳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하몽과 치즈가 든 샌드위치가 짭짤하니 맛있었다.




열흘 만에 Martina를 만났다. 반가움을 나누고 발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물집이 완전히 호전되어 무사히 걷고 있다고 했다.


Laura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아름다운 사진을 보내줘서 고맙고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하루가 더 행복해졌다는 답장을 받았다.





다시 걷기 시작.




복숭아(아마도?) 나무에 열매가 가득 열려있었다. 손이 닿는 곳의 복숭아들을 땄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간식을 수확할 때 참 재밌다. 돈을 주고 사 먹는 것과 비할 수 없는 뿌듯함..?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호모사피엔스의 DNA가 행복해하는 듯하다.

파밍은 즐거워




구름들 덕분에 많이 덥지 않았다. 풍경이 아름다웠다. 자꾸만 멈춰서 사진을 찍게 됐다.


흔들리는 풀들과 샛노란 들판.



햇빛이 쨍쨍한 곳을 걸을 땐 덥다가도,




구름 아래로 들어가면 바로 시원해진다. 신비한 날씨..




팜플로나 이후로 종종 보게 되는 해바라기 밭.




언덕을 올라가며 더위에 지쳐 헥헥거리고 있을 때 푸드트럭에서 세워놓은 팻말이 보였다.

거의 다 왔으니 좀만 힘내자.




언덕 정상에 오르니 많은 순례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들판에 막 드러눕는 외국인들이 신기하다. 빈대나 감염병이 무섭지 않은가?




나도 잠시 벤치에 앉아 쉬며 수돗가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내 뒤로 도착한 중국인 여성분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의외라고 했다. 한국인들은 원래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지 않냐며.




프랑스인 Tristan을 만나 함께 걸었다. 족히 190cm는 되어 보이는 길쭉한 친구였다. 그의 영어는 억양이 강해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재차 물어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Tristan은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어 나처럼 개강 때문에 곧 돌아가 봐야 한다고 했다. 둘 다 비건 지향을 실천해 본 적도 있었다. 공통점 몇 가지를 가지고 대화를 꽤 나눴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해 마트를 들러야 했고 그는 다음 마을까지 갈 거라 작별 인사를 나눴다.









Albergue Cofradía del Santo(산토도밍고데칼사다 공립 알베르게)


숙박 13유로


https://maps.app.goo.gl/CbMpSVt1yRnmnxCj9




마트에서 식재료들을 샀다. 장을 봐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익숙해졌다.


숙소에 도착해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갔다. 같은 방에 M,K님 부부가 있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쉬고 있던 참이라고 했다. 인사를 나눈 뒤 샤워와 빨래를 했다. 빨랫대가 있는 뒷마당이 널찍하고 해가 잘 들어 좋았다.


공용공간의 식탁에 앉아 사 온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M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웃으며 카메라로 나를 보고 있었다. M님은 내게 카톡을 알려달라고 하더니 그때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위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장면이 멋져서 찍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색감도 구도도 정말 예뻤다. 추억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진을 남겨준 M님에게 정말 고맙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서 동네를 산책했다.




돌아와서는 남은 재료로 내일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참치 샌드위치.




딱 하나 들고 온 보조배터리의 커넥터가 부러져 버렸다. 순례길에서 핸드폰은 생명인데.. 보조배터리 없이 걸어야 할 내일을 조금 걱정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만!














살 것 같은 하루였다. 어제의 우울하고 예민한 기분에 원인된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감정에 매몰된 데에는 분명 내 체력의 영향이 컸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 채 직장 생활, 인간관계를 하는 동안 벌어지는 문제들에는 나의 탓도 있는 것이다. 돌아가서도 나의 체력을 가장 먼저 신경 쓰고 보살펴야겠다. 모든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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