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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마을 위빳사나 집중수행-3

2025년 1월 12일, 13일

by 소로


호두마을 위빳사나 명상 집중수행-셋째날(2025.1.12.)




새벽 5시 스님들과 함께하는 예불은 가만히 1시간을 앉아 있어야 한다. 통증이 두려워 아침 예불을 빠졌다. 천천히 씻은 후 아침 공양을 했다.



우유?를 넣은 죽이 나왔는데 고소하고 맛있었다. 공양간 봉사자 한 분이 미얀마에서 오신 분 같았다. 우 소다나 사야도 스님의 가족이 아닐까, 그 나라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죽을 만들어 먹는걸까 잠시 망상에 빠졌다.







일요일은 다 함께 법당 청소를 하는 날이다. 식사를 마치고 행선을 하다가 10시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적막하던 법당에 활기가 돌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켰다. 겨울 공기가 맑고 상쾌했다.



나는 대걸레를 맡았다. 부처님 계신 곳부터 바닥을 쓸었다. 이렇게 청소하는 경험은 학교 졸업 이후 오랜만이었다. 수행자들 사이의 은은한 동료애도 느껴졌다.


정성스럽게 모든 것을 쓸고 닦는 어른들을 보았다. 신발장까지도 신발을 전부 내린 후 걸레로 닦고 계셨다. 이곳에서의 모든 과정에 진심을 다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우리는 "숏츠"의 세대다. 가볍고 빠르고 자극적이다. 진지하고 오래 걸리는 것들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떠나버린다. SNS에서도, 직장에서도 적당히 구색만 맞추는 것들의 연속이다. 진심은 쏙 빠진 채 껍데기만 그럴싸하다.


별것 아닌 법당 청소를 하면서도 평소 접하기 어려운 묵직한 마음과 정직한 성실함을 보았다. 나 또한 그렇게 매사에 정성과 진심을 다하는 어른이 되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청소를 마치고 잠시 수행을 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내려갔다. 간식으로 거북이빵을 주셨다. 끝나지 않는 뚜쥬루의 축복..







낮잠을 잤다. 이곳에서는 잠을 개운하게 잔다. 또 꿈이 아주 선명하다. 이틀간 내 꿈은 "죄책감"을 건드는 내용이었다. 내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대상들이 한 명씩 꿈에 나왔다. 일상에서도 항상 이런 꿈을 꾸고 있다는 거겠지. 생각보다도 이 감정이 마음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서 꿈이 더 발달(?)된 것인지, 그저 밖에서는 피곤과 자극에 절여있어 몰랐던 건지. 일상에서도 꿈이 이만큼 뚜렷하게 기억난다면 스스로를 들여다 보기에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행선 중에 잠시 몰입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어제보다 통증이 심해져 집중의 시간이 길지는 못했다. 스님께서는 통증이 있을 때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도 안되고, '사라졌으면 좋겠다.'도 안된다고 하셨다. 그저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고민 끝에 사무실로 향했다. 중도 퇴소가 가능한지 여쭤보자 된다고 답변해 주셨다. 수도 문제 때문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나는 오늘까지 자고 내일 오전에 나가겠다고 했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나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들뜸, 들뜸, 들뜸."을 되뇌며 법당으로 돌아갔다.







수행을 지속하는 동안 계속 퇴소 후에 대한 망상이 떠올랐다. 사실 이곳에서 제일 많이 한 생각은 뚜쥬루였다.(^^;;) 크림빵이 그렇게 맛있다면 케이크는 얼마나 맛있을까? 나가는 길에 들러서 무슨 빵을 사갈까? 애인이 어떤 빵을 좋아할까? 할인이 되는 8시까지 가려면 몇 시에 출발해야 할까? 등.. 입소 전 가볍게 생각하여 들렀던 건데, 예상치 못하게 큰 자극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나흘 내내 빵 생각을 하다니.


다음으로 많이 든 망상은 나솔에 대한 것이었다. 출발 전 아침을 먹으며 이번 주 회차를 보고 왔다. 그 출연자들이 떠오르며 자꾸만 그들의 행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다음에 또 명상 센터를 오게 된다면 출발하는 당일 혹은 며칠 전부터 자극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







여기 계신 분들을 자연히 인지하며 의외였던 점이 있다. 명상을 많이 하신 분들은 스님처럼 온화하고 평화로운 얼굴을 지니고 계실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표정과 인상이 강하신 분들이 많았다.


이곳에 온 연유는 각기 다르겠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삶은 고통이라는 전제를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인생에서 한 번쯤은 그러한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리 없다. 결국엔 고통을 벗어나고자 명상을 배우는 것이니까.


삶의 굴곡이 큰 사람들이 고통의 시간들을 지나 이곳에 모였을 것이다. 그분들의 미동도 없는 수행을 보며 조기 퇴소에 들떠하는 나는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호두마을 위빳사나 명상 집중수행-넷째날(2025.1.13.)




아침 공양 후 퇴소 예정이었다. 곧 떠난다고 생각하니 식사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마지막 날이니 핸드폰을 가져와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런 거 치고는 많이 받았네..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 빠짐없이 닦았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이불 보, 베개 보를 모아 반납했다. 화장실과 샤워했던 곳도 깨끗하게 청소했다.

왔을 때 상태 그대로.



내가 묵었던 2층, 내려가는 길.


불이 켜져 있는 새벽의 법당.





눈이 쌓여있는 좁은 시골길이라 천천히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내려오는 길이 고즈넉해서 잠시 멈춰 사진을 찍었다.














또다시 뚜쥬루



https://naver.me/xExW9d99





뚜쥬루는 8시에 오픈을 하는데, 시간 맞춰 방문하면 전일 남은 빵들을 50% 할인해 준다. 주말에는 줄이 굉장히 길다고 한다. 퇴소한 날이 마침 월요일이라 대기가 별로 없었다.

너 대체 뭔데 나를 이렇게 만들어..





마침 어제가 애인과의 800일이었다. 케잌하우스 앞에 줄을 섰다. 할인 케이크는 세 개였고 두 개는 딸기생크림케이크, 하나는 티라미수였다. 나는 딸기생크림을 골랐다.

아침에 새로 나온 케이크들.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빵을 구매했다. 빵들은 애인 집 냉동고에 모셔두었는데, 아직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건 소금빵이었다.


케잌은 퇴근하고 온 애인과 맛있게 먹었다. 크림을 잘 못 먹는 애인이 저녁밥을 잔뜩 먹고도 4분의 1조각을 먹었다. 맛있게 잘 먹어주니 정말 뿌듯했다.

800일 축하해♥




















힘들어하는 내게 애인이 법륜스님의 영상을 보여준 후부터 나는 아주 분명하게 행복해졌다. 그때 일차적으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가족에 대한 집착. 돈과 능력이라는 물질적 조건에 대한 집착. 나이길 원하는 "상"에 대한 집착.


명상은 나를 두 번째로 변화시킬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로부터 생각과 감정을 분리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잊을만하면 부정적 감정에 압도되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내게 꼭 필요했던 실천적 기술이다.


하루 종일 뭔가를 틀어놓지 않으면 공허함을 느끼는 나. 타인이나 외부 요소에 민감하게 자극되어 필요 이상으로 마음을 쏟는 나. 내 마음은 항상 콩밭에 가있었다. 아예 내가 아닌 것, 혹은 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아닌 그저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는 의미 없는 것들에 머물렀다.


퇴소하고 돌아오는 길에 음악조차 틀지 못했다. 모든 자극들이 산만했고 정신을 흩트렸다. 이 느낌을 잊지 않고자 돌아오자마자 블로그에 일기를 쓴다. 재회한 애인은 내 눈이 맑아졌다며 놀라워했다. 3박 4일 동안 마음이 온전히 내 안에 머무르는 경험을 했다. 내면의 힘이 차오른 것을 느끼고 있다.


스님께서는 하루에 단 15분씩만 수행을 하라고 하셨다. 최선을 다해 실천해 볼 것이다. 명상이 앞으로 내 삶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줄지, 얼마나 나를 행복하고 충만하게 만들어 줄지. 벌써부터 기대감에 마음이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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