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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마을 위빳사나 집중수행-2

2025년 1월 11일

by 소로


호두마을 위빳사나 명상 집중수행-둘째날(2025.1.11.)





호두마을에서는 아래 일과표대로 수행이 진행된다. 필수는 아니고 자율적으로 참석할 수 있다.







첫날이니 최대한 스케줄을 맞춰 해보기로 했다. 3시 30분 알람시계 소리에 기상했다.


샤워를 해야 하는데 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사무처에서 샤워가 가능한 장소를 두 군데 공지해 줬었다. 외투를 챙겨 입고 씻을 것, 바를 것, 수건을 가방에 챙겨 이동했다. 새벽부터 얕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말끔히 씻고 방에 돌아오니 4시가 넘었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법당으로 갔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앉아 좌선을 하고 계셨다.


스무 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다.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어른들이셨지만 나를 포함해 젊은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법당에 비치된 법회집을 한 권씩 나눠 받았다. 5시에 스님 두 분이 들어오시고 예불이 시작됐다. 법회집을 펴고 따라 읽었다. 20분 정도의 예불이 끝난 후엔 각자 좌선을 했다.





처음 해본 좌선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첫째, 골반이 유연하지 않은 나는 앉은 자세에서 통증과 저림이 심했다.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0분이었다. 그 이후엔 너무 아프고 저려서 호흡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둘째, 호흡이 너무 미세해서 관찰하기 어려웠다. 부푸는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부품", 내쉬는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꺼짐"으로 이름 붙이고 관찰해야 하는데, 내 호흡이 원체 얕고 복부근육을 많이 쓰지 않아 움직임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6시에 공양간의 종이 울리고 아침식사를 위해 이동했다. 아침에는 밥 대신 죽을 준다. 익힌 야채와 다양한 반찬, 삶은 계란과 과일까지 훌륭한 식사였다.





7시부터는 행선을 했다. 행선을 할 때 어려움은 아래와 같았다.


첫째, 좌선과 달리 눈을 뜨고 있기에 보이는 것들이 자꾸 의식된다. 창 밖의 풍경,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 등 말이다.


둘째, 아래쪽 허리에 통증이 있다. 평소와 달리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과정에서 허리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좌선보다는 덜 아파서 행선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하다 보니 "왼발-오른발"이 점차 "듬-놓음"에서 "듬-감-놓음"까지 세분화되었다. "왼발-오른발"을 할 때보다 자세히 나눠 관찰하니 집중도가 올라가는 듯 했다.





9시 30분쯤 법당을 나와 방에서 낮잠을 잤다. 블라인드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빛과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만이 고요했다. 꿀같이 달콤한 잠을 잤다.





11시가 되어 점심 공양을 했다. 저녁이 안 나온다고 생각하니 괜히 욕심을 부리게 됐다.

"탐욕, 탐욕, 탐욕."





식사를 마치고 오후 수행도 스케줄 대로 이어갔다. 3시 30분에 스님과의 단체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다. 신청자들과 둘러앉아 다 함께 스님께 질문하고 답변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좌선의 어려움에 대해 말씀드리고 답변을 들었다.


첫째, 통증은 모든 사람이 겪는다.(나이가 너무 많으셔서 몸이 뻣뻣하신가 보다고 농담을 하셔서 모두가 웃었다.) 다만 각자의 신체 구조나 경험 유무에 따라 통증 정도가 다를 수 있다. 관찰에 관찰을 거듭해도 참지 못할 정도로 아프면, 마찬가지로 움직임을 관찰하며 자세를 바꿔라. 그리고 좌선을 45분만 하고 행선을 15분 늘려서 하는 것도 괜찮다. 깎아드리겠다(ㅎㅎ).


둘째, 호흡이 미세할 때는 손을 배에 올리고 움직임을 느껴봐라. 또는 의지를 사용해서 조금 더 큰 호흡을 해도 된다. 그래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 "앉음-닿음"으로 바꿔서 수행해 보셔라.





5시에는 뚜쥬루에서 사 온 거북이빵과 쑥인절미크림빵을 먹었다. 전일도 그렇고 내 입에는 크림빵들이 맛있었다. 뚜쥬루는 크림을 정말 잘하는 것 같다.





간식을 먹고 저녁 수행을 하던 중 신기한 경험을 했다. 행선을 하다가 허리 통증이 심해져 뒤 쪽에 있는 의자로 갔다. 앉은 채로 "부품-꺼짐"을 관찰하는데 갑자기 몰입 상태로 빠져들었다. 호흡이 또렷하게 관찰됐다. 마치 "숨 쉬는 계란"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종잇장 같이 얇은 껍질을 경계로 외부의 자극들이 전부 인지되지만, 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망상 역시 떠오르기는 했어도 여태까지와 다르게 금방 사라졌다. 어떤 생각이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얼굴 근육이 완전히 이완되고 자연히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렇게 40분 정도 집중을 유지했다.

이 상태로 행선을 해보고 싶어 서서히 일어났다. 움직이면 몰입이 깨질 수도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리로 관심을 이동했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한 발 한 발에 집중했다. 1시간가량 행선을 이어갔다.





8시가 되어 스님들이 들어오셨다. 좌선하는 자리까지도 몰입을 이어갔으나, 앉고 나서 다시 시작되는 골반 통증에 집중이 깨졌다. 조금 일찍 나와 잘 준비를 했다.





아래는 마지막 날 나오기 전 찍은 사진들.

자기 전 일기를 쓰던 좌탁, 전기장판을 깔아놓은 매트.
소중한 간식 봉투.














통증 때문에 약간 현타가 왔다. '명상을 배우고 싶어 온 것이지, 고통받으러 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 이대로 참고 버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몰입이 되는 경험을 했다. 진전을 보이자 안 좋은 마음이 살짝 사그라들었다. 온종일 수행을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다르다. 내일도 최선을 다해 수행을 이어가며 나의 변화를 살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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