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4일, 15일, 16일, 17일
오늘은 톨레도로 넘어가는 날이다. 멋진 호텔에서 잘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아토차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30분 걸렸다.
https://maps.app.goo.gl/dr3GWcpDQxiFPHRV8
아토차역에 도착했다. omio로 미리 예약해둔 기차를 탔고, 11시 15분에 출발하여 12시쯤 톨레도에 떨어졌다.
톨레도는 과거 스페인의 수도로 옛스러운 유적들이 남아있는 도시이다. 크지 않은 도시라 꼬마기차를 타면 주요 장소들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다. 톨레도역에 내려 광장으로 이동해 소코트렌 표를 구매했다.
https://maps.app.goo.gl/qFxro7JkgAVhnSnw9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잠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소코트렌을 탔다. 팁이 있다면 탈 때 가장 오른쪽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 주요 장소들이 전부 우측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나눠주는 이어폰을 연결해서 한국어 가이드도 들을 수 있다. 날이 더웠는데 편하게 구경하며 바람을 맞으니 시원하고 좋았다.
소코트렌이 또 좋은 점은 뷰포인트에 10분 정도 내려준다는 것이다. 다 같이 내려서 톨레도의 경관을 구경했다. 황토색 건물들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이 멋있었다.
한 바퀴 돈 후 다시 광장에 내렸다. 호텔에서 먹을 점심, 저녁거리를 사러 마켓에 갔다. 오늘만큼은 와인을 넉넉히 마시고 싶었다. 점원들에게 가격이 적당한 화이트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한참을 속닥속닥하다가 하나를 꺼내주었다.
마켓부터 호텔까지는 걸어서 50분 정도 걸렸는데, 언덕 위에 있어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순례길까지 다녀와서 이 정도로 택시를 타고 싶지는 않다는 허세에,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애인과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다. 도착 10분 전부터는 인도가 없는 찻길이어서 불편하고 위험했다.
https://maps.app.goo.gl/sJnXHn11XCb2nds9A
땀으로 범벅이 되어 로비에 도착했다. 조금 이른 체크인이었지만 잠깐 기다리고 안내받을 수 있었다. 방은 너무너무 좋았다. 테라스가 있는 룸을 예약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빨래부터 했다. 해가 쨍쨍할 때 빨래를 해두어야 잘 마르기 때문이다. (순례길의 큰 교훈) 씻고 준비하고 라운지로 나갔다.
아.... 어찌나 좋던지. 웰컴 드링크로 받은 맥주를 한 잔 비우고 또 한 잔을 시켰다. 빈속에 맥주가 들어가니 취기가 금세 올라왔다.
슬슬 배가 고파져서 룸으로 올라가 장 봐온 식재료들을 꺼냈다. 어느새 점심 겸 저녁 식사가 되어있었다.
먹고 있는 와중에 벌들이 습격했다. 스페인에서는 햄이나 하몽류를 먹고 있으면 어디선가 벌들이 날아와 같이 먹는다.(;;) 순례길에서 Laura는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며 그대로 두었다. 한국이라면 분명 내쫓아버리거나 죽이기까지 하는데, 한낱 곤충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가 멋있었다.
하염없이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움직이는 구름을 따라가다가, 서쪽부터 물들어오는 일몰을 구경하다가, 어두워지는 하늘과 함께 하나둘씩 켜지는 톨레도의 불빛을 바라봤다.
와인을 마시며 재즈를 들었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좋았다. 이 멋진 광경을 하루만 즐길 수 있다니.. 2박을 할걸. 이 로맨틱한 곳을 다음에는 애인과 꼭 함께 오고야 말 것이다.
조식을 8시로 예약해두었다. 지금도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 호텔 공홈에 가입하여 아미고가 된 후 숙박을 예약하면 첫 회원 혜택으로 조식 바우처를 준다. 덕분에 무료로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종류는 다양했지만 다른 곳들에 비해 특출나게 맛있지는 않았다. 돈 주고 사 먹었다면 조금 아까울 뻔?
전날 걸어 올라오느라 죽을 뻔했던 기억 때문에 프론트에 미리 택시를 요청했다. 비용이 꽤 비쌌지만 역시 빠르고 편했다. 톨레도 기차역에 도착해 잠시 쉬다가 1시 35분 기차를 타고 금세 아토차 역에 도착했다.
https://maps.app.goo.gl/g2d84JhC7NhjZtZ1A
아토차 역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걸어서 7분 거리로 가까웠다. 내려서 바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리 알아보기로 미술관 안에 라커가 있다고 했다.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국제 교사증 덕분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짐을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레이나 소피아는 현대 미술 위주의 미술관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신진 작가들의 전시부터 관람했는데, 작품들이 세련되고 멋있었다.
가장 유명한 게르니카를 포함하여 다양한 피카소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피카소의 조각 작품을 나는 처음 보았는데, 회화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등의 그림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짐을 찾아 중정의 벤치에 앉았다. 어제 싸놓은 샌드위치를 꺼내어 늦은 점심으로 먹었다. 아담한 정원이었지만 예쁘게 조성되어 있었다. 중간중간에 조각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어 함께 구경할 수 있었다.
https://maps.app.goo.gl/5WqKhiqBAqZ5UoCs9
이틀 전 체크아웃 했던 그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한숨 잔 후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위해 나섰다.
https://maps.app.goo.gl/BfFCGLDe87tJAN6N8
마드리드에 왔으면 일단 츄로스를 먹어야제.. 한 그릇 가볍게 순삭하고 본격적인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한참 자다 나오는 바람에 늦게까지 여는 식당을 찾아야 했다. 스페인에 있는 3주 내내 먹어보지 못한 빠에야를 먹으러. 지하 자리로 안내받았는데 담당하시던 여자 직원분이 참 상냥했던 게 기억난다.
양이 2.5인분은 되는 것 같았다. 놀라운 점은 이 많은 걸 나 혼자 거의 해치웠다는 것이다. 남기기 싫을 정도로 맛있었다. 왜 이제서야 빠에야를 먹었는지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돌아간 광장. 마지막 날까지 날씨는 좋고 사람들은 유쾌했다. 아쉬웠지만 이제는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드리드를 정말 원 없이 즐겼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조식은 신청하지 않았다. 혹시 버스카드가 안될까 봐 환전도 조금 하고 아토차 기차역으로 걸어가 공항버스를 탔다.
탑승수속을 한 뒤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빵과 요거트를 사 먹었다.
옷과 침낭이 꽉 들어찬 기내용 배낭뿐이라 기념품을 하나도 사지 못했다. 면세에서 애인과 마실 와인을 한 병 샀다. 묵직한 맛으로 달라고 하자 3만 원 대 적절한 와인으로 잘 추천해 주셨다.
베드버그 사건 때 목베개를 버려버려서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면세점에서 2만 원짜리 목베개를 샀다. 열 몇 시간을 베개도 없이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베이징까지 11시간, 레이오버 7시간. 귀국행은 호텔 대신 에어차이나 라운지만 이용했다. 샤워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씻고 쉴 수 있어 좋았다. 라운지 내에 있는 큰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다시 1시간 반을 날아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 애인이 미리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주 사이에 꽤 까맣게 탔다며 신기해했다. 우리는 곧바로 마라샹궈를 먹으러 갔다. 오랜만에 내 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느낌이 정말 이상했다.
문명(?)으로 돌아와 보낸 일주일 간의 스페인 여행. 아름다운 작품들 사이에서 감상에 푹 빠져보기도 하고, 곳곳에서 음악이 연주되는 공원을 여유롭게 거닐기도 했다. 석양이 물드는 하늘 아래 낭만이 가득한 저녁을 보내기도, 멋진 옷을 사 입고 마드리드 뒷골목의 자유로움에 섞여보기도, 와인을 홀짝이며 중세 도시의 야경을 몇 시간이고 눈에 담아보기도 했다.
나의 첫 유럽 여행이자 처음으로 혼자 떠나온 해외여행! 모든 순간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색다른 추억이 되었다. 다녀온 지 벌써 일 년, 또다시 혼자만의 일탈을 계획하고 있는 나. 올겨울도 재미있고 행복한 경험들로 가득가득 채워 일기로 남겨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