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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이티 Jun 19. 2024

대한민국에서 의사를 왜 그만둬?

'국룰 인생'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날들...

대한민국의 자식들이라면 부모의 기대 속에서 자란다. 나조차도 그랬다. 부모님은 내가 안정적이고 명망 있는 직업을 가지길 바라셨다. 다행히 나는 부모의 기대와 적성이 일치한 편이었다. 특히, 공부가 적성에 맞아서 어릴 때부터 영재반 교육을 받고, 인서울 의대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엄마들이 부러운 건 우리 엄마일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삶이 좋은 것이라고 선생님들과 부모님들, 특히 엄마들은 외쳤다. 의사가 되면 좋은 거라고. 그러면 행복해질 거라고...



 그런 내가 이 '국룰'에 반기를 든 사건은 뜬금없게도 '결혼'이었다. 5060년대생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의사 아들이면 엄마들 콧대가 높아진다. 그 엄마들이 이상해서? 아니다. 주변 엄마들이 미친 듯이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나라도 그런 환경에서 크면 우리 부모님들 세대처럼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손등에 칼 그어가며 공부한 것도 나고, 내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도 내가 맘먹은 것이고, 남은 인생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걸 왜 엄마를 부러워하는지... 여튼 이게 현실이다.



 부모님은 나를 인서울 의대에 보낸 노고에 대한 보상으로 내 여자친구는 아쉬우셨던 모양이다. 21살이 되고 대학에 진학한 나는 자유롭지만 책임감 있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여자친구의 미래 직업, 부모님들의 학력이 더 중요했던 듯하다. 젊은 세대로서 나는 그런 부모님이 너무 실망스러웠고 너무 원망스러웠다. 수년간을 싸우고, 회피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내 인생 자체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인생은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던 거 아닐까?'

'내가 원하는 여자랑 결혼할 수 있다는 것도 불가능한 욕심 아닐까?'



그래서, 교제반대, 결혼반대로부터 시작된 이 고민은 의사를 그만두게 되는 파급효과가 되었던듯하다.



물론 의사로서의 인생도 나름의 의미와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가슴속엔 다른 꿈이 있었다. 어릴 땐 이 '국룰'을 순순히 따랐다. 고등학생인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건 공부 말곤 한계가 있었으니까. 의대 들어가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해도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피곤함에 눈꼬리가 쳐진 전공의 선배들, 과로에 얼마나 오래 노출되었는지도 모르는 교수님들의 생기 없는 눈빛들, 그리고 하나같이 굳어있는 표정들...



'대체 왜... 뭘 위해 이 길을 가는 거지?'



 직장인들 모두 마찬가지이겠지만 의사들이 모인 여기엔 낙원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노력하고 도전했던 날들이 불행했던 건 아니었지만, 병원에 들어간 그 시간들은 한 해가 갈수록 내가 점점 지옥에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이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들은 돈 많이 벌지 않냐? 배가 불렀네"



그래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그 돈만 믿고 버텨야 하는 곳이라면, 미친 돈독 아닌가? 난 내 영혼이 갉아먹히는 느낌을 참으면서 돈 벌고 싶진 않았다. 물론, 의사란 일이 잘 맞는 사람들이 있고 거기서 꿈을 찾은 선생님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진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왜 하고 싶은 과가 없는 거지...'



나는 교수님들이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이 되고 싶진 않았다. 전공의 선생님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마 여기서부터 나는 눈치챘어야 하는지 모른다. 내 꿈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어도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세상에서 의미 있는 기여감을 느끼고 싶었다.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느낌 말이다. 어? 의사야 말로 그런 직업 아니냐고? 모르는 소리다. 현대 의학은 아주 세분화되어서 내가 이 환자가 아픈 것부터 나아서 나가는 것까지 다 보려면 교수님 급이 되지 않으면 다 총괄해서 관찰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사람을 살리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공장의 부품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닥터이티의 '부모님을 떠나는 여행' 저와 함께 가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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