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의 호흡을 확인하는 일이다. 엄지손가락을 코 밑에 밀어 넣고 가느다란 숨소리를 느껴야 하는 일은 고문과도 같다. 그는 나의 미세한 움직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동조차 없다. 아침햇살이 거실을 건너 주방 깊숙이 파고들면 파열음처럼 부서지는 힘없는 기침 소리가 비로소 나를 안심시킨다.
오늘도 살았구나!!!
벅찬 감사와 희열이 온몸을 휘감아 돈다. 방에서 식탁까지의 거리는 얼마쯤일까. 벽을 짚고 조금씩 서너 번 쉬어가며 내게로 오는 그를나는 기다린다.
고요히 마주 보며 기다리기만 한다.
멀고도 험한 이 길을 그는 어떻게 오려하는가. 세상은 멈추었고 우리는 멈춘 세상에서 힘겨운 자맥질을 한다.
폐암 2기 선고를 받았었다. 트렁크 3개를 들고 산으로 들어갔다. 살아야 하고 살려야 한다는 것 외는 아무것도 없었다.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런 일이냐고 원망하기가 무섭게 왜 너희는 안되냐고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당해야 할 일이구나. 에너지를 아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우리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시간의 저편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만신창이로 견뎌내는 그들의 무게 앞에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 또한 삶의 연장임을 깨달았다. 산에서 내려와 집을 얻고 치료를 시작했다.
바쁘게 살았으니 잠시 쉬었다 가렴. 바람의 속삭임 같았다. 어색한 여유가 사방에 늘어져 있었다. 주섬주섬 내 옷처럼 주워 입고 어색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뭉텅하게 빠지면 남편은 너스레를 떨었다.
“망기야 샴푸 필요 없겠지?”
그의 말이 창백한 공간을 떠돌다가 이내 하울링처럼 번져가기 시작했다. 아프구나. 그가 웃으면서 아파하고 있구나.
“그래? 오!! 다행이네. 뭐든 절약은 좋지? 자기야??”
우리의 대화는 항상 마음을 피해 다니는 일에 열중했다. 산나물을 캐느라 바빴고 각종 채소를 키우며 슬며시 시골 아낙의 흉내를 내기에 바빴다. 분주하기 위해 밭일이 없는 날은 시장을 다녔다. 내가 사다 준 빨간 모자도 좋아했고 긴 팔의 남방도 무척 맘에 들어했다. 그는 정오가 되기 전,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들숨 날숨의 호흡을 연습했다. 목젖이 칼칼해지도록 했다. 깊게 몰아치는 숨소리는 메아리처럼 내게 닿았고 나는 돌아서서도 그를 느꼈다.
나는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그를 사랑했다.
그러한 날들이 차곡히 쌓여 이제 제법 그를 향한 잔소리가 두꺼워진다. 몰라보게 건강이 회복된 증거이다. 바삭한 뼈마디에 살이 오르고 말랑거리는 살집이 손끝에 닿으면, 속으로 삼키느라 입술에 피가 고였던 그때를 이젠 말할 수 있다. 지난 5년이 우리의 남은 삶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런 그가 좋다. 고맙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그가 또 좋다. 이제 내가 말할 차례이다. 한 번도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았던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