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 놓고 비난할 수 있을 만큼 몸이 제 온도를 유지해 주는 남편이 고맙지만 오늘은 참 많이도 덥다.
오빠네가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방에서 오래도록 있어야 할 일이 걱정이다.
나의 주방 슬로건은 매끼 새롭게, 단정하게, 알뜰하게, 맛없게 이다
올케는 집 반찬을 가지고 온다. 우리 집 반찬은 밥을 삼킬 수가 없다는 게 이유다. 그 후로 손님이 오는 날은 나도 덩달아 짭짤하고 달달하고 새콤하면서도 묵직한 맛을 내기 위해 주방을 시끄럽게 한다. 맛있는 반찬 만들기는 오히려 쉽다. 그냥 듬뿍 이면 된다. 뭐든 양념을 듬뿍. 그리고 우리 입맛에 짜다고 느껴지면 맛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나만의 비법).
일단은 좀 짜야 하기에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집 간장을 보배처럼 사용한다.
맛이 밋밋하다가도 어머님 표 집 간장을 한 숟가락 넣고 나면 마술처럼 혀끝이 환해진다.
에어컨 없는 집인 줄 알면서 막내가 걱정되는 오빠는 한 끼 밥이라도 먹으며 동태를 살피고 간다. 또다시 불만이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작년에 에어컨을 설치하자고 그렇게 애원했건만 여지없이 깔아뭉개는 남편에게
“자고로 남자가 여자 말을 잘 들어야 집안이 편한 법인디...”
친정엄마가 자주 쓰는 말을 내 것처럼 갖다 쓴다. 남편도 조금 후회스러운 모양이다.
장마가 벌써 끝났는지 폭염이 며칠째다. 머리카락도 뜨거워 온다. 짧고 굵은 목덜미를 찌르는 머리카락이 짜증스러운 나는 대파를 묶어 놓은 노란 고무줄로 상투처럼 질끈 동여맨다.
우리 식탁은 환자식이라 맛이 있는 반찬에는 손이 안 간다. 비지땀으로 삶기 찌기를 몇 번 하다 보면 맛있을 수가 없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 식탁. 삶기와 찌기를 잘못하면 식감이 떨어져 재료 본연의 맛이 나질 않는다. 양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서 시간이 이르거나 늦어지면 특유의 제맛이 사라진다. 그래서 어렵다. 늘 집에서 밥을 먹는 오빠라면 나가서 먹자고 하겠으나 주말부부인 관계로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니 우리 집에서만큼은 집밥을 맛깔스럽게 해주고 싶었다.
오빠가 좋아하는 쇠고기 전골을 만들기 위해 육수를 만들고 신선한 버섯을 듬성듬성 찢어 놓는다. 돼지고기를 못 먹는 오빠는 배가 가슴보다 더 나왔는데도 쇠고기라면 가던 길도 멈출 정도이다. 주 메인과 특히 오빠가 좋아하는 창난젓을 나는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갓 지은 밥에 얹어 쓱쓱 비벼 먹으면 이열치열이라며 견딜 만도 할 것 같은데 오늘은 정말 화가 난다. 타는 여름이 등에서 해작질을 해대니 얼마나 신경질이 날까. 21세기에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불만이 점점 거세진다. 이사만 아니면 당장 에어컨을 설치하고 싶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불 옆에 기대선다. 오늘은 오빠를 위한 밥상이니 신경질은 스톱. 완성된 육수에 갖가지 채소와 버섯을 넣고 얇은 종이 짝 같은 쇠고기를 잠시 담궜다 꺼내 먹는 맛이란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일품이다. 왜냐면 육수가 짭짤하기 때문이다. 대신 남편은 먹지 않는다. 설탕을 듬뿍 넣은 멸치볶음도 맛이 기가 차다. 에어컨만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런 날들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재재작년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어떻게 견뎠을까.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을 더듬어도 어떤 마음들이 지나갔는지 알 길이 없다.
인간이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이 탓도 해본다. 그도 아닌 것이 그 이전의 것은 생생하지 않은가.
간사한 인간의 본성 탓인 게지.
아무리 인간의 본성이 간사하다지만,
그것조차도 우리의 모습이긴 하지만,
우리를 지켜준 원동력이 무엇인지는 잊고 싶지 않다. 그래서 불만이 주는 행복을 기록하고 싶다.
불만이 커진다는 건 불만의 요소들이 생긴다는 것이고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되찾아간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