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대화
브런치는 참 이름도 잘 지었다. 어쩜 이렇게 입에 짝짝 붙는지. 오래 달군 설탕 같다. 요즘은 브런치 덕분에 재미가 솔솔 하다. 녹슨 어제의 시간도 수시로 방문해 온다. 반가운 손님들.
굳게 채워진 자물쇠를 여는 순간 무의식의 창고는 자기들까지 서열을 정하기 분주하다. 심하게 오염된 것들은 두세 번의 필트 링을 거치기도 하고 그나마 쓸만한 건 한 번의 세탁으로 걸 칠만 하다고 지네들끼리 속닥거린다.
[무의식의 대화 1] - 주인(의식)
무의식 1 : 마치 독한 마약 같아. 참아보려고 했는데 에이!! 안돼!!
무의식 2 : 너도 그래? 근대 우리를 부르는 게 브런치라고 했지?
무의식 3 : 바보들, 브런치를 이제 알았어?
무의식 1, 2 : 넌 벌써 알았니? (동시에 놀란 듯 물어본다)
무의식 3 : 당근이지. 나도 여러 번 갔었는데 못 들어오게 하더라고? 그래서 때려치웠지 뭐. 근데 생각이 계속 나긴 해 나도.
무의식 1 : 얼떨결에 처음 가본 집인데 말야, 근건 좀 이상하지 않아? 내 창고가 비워지고 있어.
무의식 2 : 뭐가 이상해. 가서 샅샅이 뒤져 도로 찾아오면 되지.
무의식 1 : 그러게, 그걸 안 해 봤지 뭐야.
무의식 3 : 뒤져봐 그럼. 너희들은 들어갈 수 있잖아. 나를 못 오게 한 잘난 님들!! 두고 보라지 나중에 후회할걸??
무의식들이 깔깔대며 웃는 대화 소리가 주인에게까지 들린다.
은밀히 숨겨둔 열쇠 꾸러미를 꺼낸다. 순간! 무의식이 의식의 편에 서서 흥정을 시작한다.
“제일 처음 이 차가운 암흑 속에 갇힌 것이 나이니 들어온 순서대로 나가는 게 맞지 뭘 그래?”
무의식 1의 말이다. 처박아 둔 주인을 향해 겁 없이 도전한다. 갈 곳이 있다는 게지. 묵은 먼지를 털기도 전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구력을 뽐내는 포즈가 장난 아니구나. 안쓰러운 주인도 저들의 반란에 가슴을 쓴다.
통제하는 이는 따로 있는데 저들끼리 정한 서열이 옳은 것처럼 행세한다. 흔들어 깨우기 전, 이들은 나름의 행복을 느끼며 얼마나 잘 살아왔던가. 빛 한줄기 없는 곳에서도 그곳의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집단을 이룬 채 의식의 아래에서 의식화되기를 수십 년 기다렸던 무리가 아닌가. 열린 문으로 빛의 체취를 확인해 버린 것이다. 제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어떠한 유능한 주인도 그들의 세계를 담아낼 수 없다. 삶에 영향을 미치는 내면의 힘을. 웅크린 채 언젠가는 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야망을 그 축축한 터전에서도 지켜왔음을 진정 주인은 모르리라.
무한 해제를 선언한 주인은, 아무런 규칙도 순서도 맥락도 없이 준비된 녀석을 차례로 줄 세울 참이다.
다른 일로 바쁠 때는 잠시 휴전을 하기로 한다. 지금은 주인이 장기 휴가 중이니 녀석들도 같이 휴가를 즐긴다면 꽤 괜찮은 여름휴가가 될 것 같아 소리 내어 본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창고가 비워지는 지경에 말이다.
[무의식들의 대화 2]
무의식 1 : 잠시 통화를 했는데 말야 글쎄, 좀 더 놀다 오겠다네?
무의식 2 : 그래? 놔둬 그럼, 너희 집은 덥잖아 서늘해지면 오겠지.
무의식 1 : 그러게나 말이야, 여름 나기는 그곳이 딱 좋지. 그럼 우리도 다시 갈까?
무의식 2 : 그러자.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무의식 1 : 그럼 그러자. 그럼 너 빨리 집에 가서 외출 준비하고 와.
무의식 1, 2는 외출 준비를 주인에게 알리고 남은 여름 나기를 위해 다시 브런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