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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 힐 링 Aug 20. 2021

산다는 것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을까?



  

 가끔 내게도 편지를 쓴다. 느슨한 일상 사이사이, 문득 전할 말이 생기면 설거지를 하다가도 물기 젖은 손을 대충 앞치마에 쓱쓱 문지르고 재빨리 핸드폰을 찾는다. 미룰라치면 모조리 까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기억의 오류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혼란으로 오해의 소지가 생길 때도 있다. 해명하기 난감한 경우에는 차라리 오해하도록 협조를 하는 편이다. 협조를 한다는 건 변명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구차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저절로 알게 된다.     


 급하게 폰으로 저장한 말을 정리하는 시간은 참 고맙고 편안하다. 톡이든 메일이든 편지지든 뭐가 됐던 어차피 답장이 없을 것이니 실컷 내 맘대로 지껄여도 된다. 욕을 해도 괜찮고 가끔 랑이 똥고집을 부릴 때에는 혼자 날궂이를 쳐도 된다. 그래서 나는 내게 편지를 쓰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특별히 새로운 서식처로 옮겨가야 하는 내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나 보다.    


 어쨌든, 이사를 하긴 하지만 살림이 간단해서 바쁜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뒤져보니 그사이 제법 불어있었다. 한가롭지 않을 것 같았다. 여름이 떠나니 한가함도 함께 떠나려나 보다. 그래 잘 보내주자. 그래야 다음에 다시 만날 때 반갑지 않을까.  

   

 그렇게 반가운 이별에 손 흔든 자리가 오늘따라 스산하기만 하다. 이런 날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항상 돌아갈 곳(울산)을 정해놓고 살았었다는 걸 정 붙이지 못한 살림살이에서 느껴서이다. 짊이 뭐 그리 많을까 싶었는데 꺼내고 보니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근데 버릴 건 또 하나도 없다. 헐~~~. 마침 박경리 선생님의 유고 시집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란 제목이 딱 내 눈높이에 맞닥뜨리고 보니 살림살이 욕심에 얼마나 민망했는지. 물론, 지금 필요한 살림살이들을 버리라는 말이 아닌 줄 알지만 어수선한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해두면 짊을 옮기시는 분들이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해서 꺼내 봤다. 아! 그런데 글쎄,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엉망이었다. 살림 솜씨 꽝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깡통일 줄 일이야. 에라 모르겠다. 있던 자리에 도로 집어넣었다. 욕 좀 먹고 머리 조아려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지 뭐 어쩌겠어. 설마 욕이 살 뚫고 들어 갈라고. 말라비틀어진 배짱을 그냥 부려본다.  


  




 오늘은 이삿짐 정리하는 걸로 하루를 온통 채우기로 작정했는데 갑자기 시간이 텅 비니 자꾸 눈길이 가는 곳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버릴 것만 남기며 살아질까'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책이랑 좀 친해져야 할 것 같아 제목에 반해서 사봤는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것도 없이 나를 사로잡은 첫 페이지다.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및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데    

그보다 생광스러운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청춘을 짧고 아름다운데 왜 보지 못하고 살았을까. 내 가슴은 과녁이 되었고 한꺼번에 쏟아지는 수십 발의 화살을 눈감고 받아들였다. 불발 없는 화살을 맞으며 뒤를 자주 돌아본다는 건 남은 날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신호겠지. 산다는 것에 대해 사실 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바쁘게 열심히만 살면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다. 지독한 착각에 홀로 억척을 부렸던 게지. 나는 정말 그랬을까. 상처 나면 밴드 하나 붙이는 걸로 치유가 되었을까. 홀로 삼키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했던 세월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얼마나 현명하고 똑똑한지 브런치의 글을 읽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감정에 대한 분명한 표현, 그 이상의 넉넉한 배려가 곳곳에 묻어있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으니 어느 것이 옳다 어느 것이 진리다 라고 구분할 수는 없으나 나름의 색깔로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나도 제대로 잘 살고 싶다. 누구를 먼저 줄 세울지 알 수 없는 인생이니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거냐고 물어 온다면 대답할 것이다. “세상의 중심축을 'I'에서 'YOU’로 옮겨놓는 것”이라고 말이다. 삶은 결국 자신의 선택이었지 누구를 위한 것은 애당초 없었다. 그러니 이제 희생이라 말하지 말자. 그런 선택을 했으므로 최소한 열심히는 살았고 누린 것도 많았으리라.        



 오늘은 참 마음이 아프면서 흐뭇한 날이기도 하다. 어쩌면 새로운 멋진 친구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쌉쌀하면서도 달 달한 대추차를 같이 마시고 싶은 친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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