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이었는진 몰라도
덮여버린 걸 볼 순 없지
시간이 새롭게 쌓이면
우린 점점 희미해질 거야
문없는집 - EXIT
이 가사가 이렇게 또 위로가 된다(문없는집 - Exit). 나 사람한테 나쁜짓 못하는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나쁜짓 못하나보다. 아니, 애초에 나쁜짓도 아니었잖아. 그냥 거절일 뿐인데. 거절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나. 칼같긴 했지만, 그래도 못할 말을 하거나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그저 누군가의 입맛에 맞았던 나를 그 틀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틀 밖으로 제거 작업을 하는 일이 나한테는 뼈를 깎는 고통으로 느껴졌다. 생각보다 이 아픔이 오래 간다. 나를 좋아해주는 모습이 굉장히 열광적이고 열정적이었기 때문이겠지. 그런 사람에게 내 차가운 메세지가 얼마나 깊이 아리고 상처였을지 마음 쓰여하는 나는, 내가 아는 나보다 훨씬 더 거절도 못하고 줏대도 없는 게 분명하다. 줏대 없다는 말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어서 정말 이 말 듣는 거 싫어하고, 나 자신에게 이 말 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이번만큼은 생각보다 내가 강단있게 앞에서 행동해놓고 뒤에서 눈치를 여운처럼 오래도록 간직하는 성격이란 걸 깨달았다. 싫어요, 안 돼요. 그 말하는 거 정말 어렵구나. 한때 인생을 바쳐 존경했던 사람이 해준 말이 기억난다. 늘 내 want를 먼저 생각하라고. 생존하려면... 가끔 이런 식으로 어떤 말들은 아주 오랜시간을 나와 함께한다. 신기한 일이지. 고작 말일 뿐인데 오래 자취를 남긴다는 게. 그래서. 어쨌든. 내 삶을 존중하려면 난 나의 욕구를 더 명확하게 알고 그에 집중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니, 그러자. 싫어요, 안 돼요, 그러지 마세요. 말 한 건 나쁜 게 아니잖아. 눈이 내릴 때까지는 흩날리는 작은 눈송이들을 보며 포근하고 기분 좋았을지 몰라도, 쌓이고 뭉친 커다란 눈뭉치가 무섭게 다가올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럴 수 있다는 거, 그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아.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무서울 수 있지. 압도될 수 있지. 거절할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나에게 말해준다.
어떤 날들이었는진 몰라도
지나간 날 다시 부를 순 없지
뻔히 들여다보이는 날이라도
모든 기대를 지워낼 순 없어
마음 무겁지 않게
별다를 것 없는 날씨 탓이나 해보고
구름 걷히면 웃고
언젠가는 지금을 어루만질 수 있게 될 거야
문없는집 - EXIT
싫으면 싫은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건데. 그게 왜 싫은 거예요? 좋아했잖아요. 그게 왜 안 되는 거예요? 된다는 신호가 있었잖아요. 이런 주장들이 다 억지고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결국 다시 text를 둘러싼 con/text를 움직일 방향을 조작하는 문제(issue)로 넘어온다. 그건 사과예요. 이건 의자예요. 내 선언은 과연 상황을 정의할 힘을 가지는가. 내 힘을 믿어주는 사람과 맺는 관계는 나에게 건강하다.
내가 가진 "정의할 힘"을 부정하는 사람에게. 더는 미안함을 느끼지 말 것.
그럴 수 있지: 나에게 말해줘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 상황에 걸맞는 이름을 붙일 "정의할 힘"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