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사랑 때문이잖아. 사랑받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 돈이 있어야 하는 것도 다정함을 오랫동안 잘게 나누어 하나씩 꺼내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잖아. 아주 오랫동안 다정할 수 있도록. 다 사랑받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다시 상기한다. 다정한 행동과 말, 꼭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어도 그런 것을 글로라도 읽어 접하면 마음이 두 동강이 나거나 반으로 풀썩 접힌다. 이전에 경험한 따스함에 대한 향수 때문에 아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 경험으로 지금까지 살아있지 싶은 안도감으로 끈끈하게 심장이 반쪽이 되나 싶기도 하다.
어제는 그래서 기분이 좋았나보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게 서툴고 실수 투성이인 나를 절대 기다려주지 않고 재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의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빛줄기처럼, 나를 감싸안는 귀여운 새소리가 들린다. 판단력이 흐려질 때조차도 망가진 두 손을 내려다보며 자신을 탓하는 한숨을 짓지만은 않아도 될 만큼이나 단단하게, 나를 으스러지게 껴안아주는 너른 품이 있다.
단단한 것은 사실은 가장 다정한 것이다. 다정한 것이 제일로 단단하다.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처럼 힘이 아래로 쭉쭉 빠질 때면, 그냥, 다정한 것들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떨군다. 그러고 있으면 세상사에 두들겨 맞는 와중에도 슬프지만은 않다. 널린 빨래처럼 축 처져있는 와중에도 우울하지만은 않다. 단단한 다정함이 나를 뻣뻣하대 지탱해주어서. 다정함은 마치 지도 같은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 와있는지, 내가 어디 부근을 헤매는 중인지조차 모를 만큼 바보가 되었을 때에조차도 희망을 놓지 않게 해주는 지도. 이 지도만 있으면 언젠가 내 위치를 알게 되었을 때, 나아갈 방향을 알게 되었을 때,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나갈 수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니 그저 다정함만은 잃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자괴감도 원망도 질투도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