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2학년의 위험성
본과 2학년은 의과대학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치를 떠는 학년이다. 방대한 의학 이론의 거의 대부분을 한 해 동안 몰아서 배우고, 학생 간 성적 분포가 다양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내신이 크게 반영된다. 마치 대학 입시에 들어가는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1학기까지의 내신 성적이 본과 1, 2학년 내신 성적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지 않을까. 실습을 시작하면 성적 편차가 크지 않아서 변별력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 카더라다.
공부에 절여져서 사는 이 생활은 다양한 후유증을 남긴다. 마치 동굴에 들어가 사는 것 마냥 세상 돌아가는 일은 보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진다. 코앞에 들이닥치는 시험, 시험, 그리고 또 시험…시험이 얼마나 많냐구? 거의 매주 시험이 한 두 개씩 있다. 시험 한 개의 범위는 pdf로 40p-120p 정도 되는 파일이 대략 2-30개 정도 된다. 많은 양을 계속 외우다 보니 뇌에 용량이 부족한지 학기가 끝날 때쯤 되면 말이 잘 안 나온다. 문장이 잘 만들어지지 않고, 단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동기들끼리 대화할 때는 ‘어, 그, 저’, ‘뭐더라 그거 있잖아 그거 그…’가 기본값이 된다. 이걸로 대화가 된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시험 전날 공부를 하고 있자면, 내일 시험 끝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테다! 하는 작은 계획을 잔뜩 세우게 된다. 막상 시험을 치고 나면 기운이 다 빠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지지만. 전기장판을 켜 두고 한숨 푹 녹았다가 일어나고 나니 새벽이었다. 눈을 감고 모른 척하다 다시 잠들어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앗, 오늘 들어야 하는 수업이 있었지 참! 하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시험을 치고 난 다음 날, 심지어 주말인데도 공부를 하겠다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끔찍한 공부 후유증. 본과 2학년이 이렇게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