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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사삼공삼 Aug 11. 2023

마음만은 초등학생

2023.08.11

교 가는 길에 작은 동네 초등학교가 있다. 지난 학기엔 일주일에 한 번쯤 내 등교시간과 초등학교 아이들의 등교 시간이 겹쳤는데, 학교에 갈 때마다 초등학교 교문 앞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지켜봐주시는 분이 서 계신 걸 보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저런 분이 계셨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을린 얼굴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그 분은 고운 눈웃음을 지으며 길을 건너는 아이 한 명 한명에게 밝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안녕! 와, 애기들 부럽다, 하고 생각하며 현대인의 미덕을 발휘해 빠르게 지나치려는 순간, 아차차, 눈이 마주쳐 버렸다.


어떡하지, 땅을 봐야 하나, 하늘을 봐야 하나? 흰색인지 회색인지 모를 학교 담벼락을 봐야 하나? 당황한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그 분이 내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주셨다. 안녕하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초등학생처럼 보이지는 않을 텐데? 마스크를 써서 그런가? 아니 그래도 내 덩치가 초등학생 덩치는 아닌데? 요새 애들이 잘 커서 또 그렇지도 않은가? 머리속은 와글와글 시끌시끌, 하지만 유치원 때부터 열심히 다져온 인사 스킬이 날 구해주었다. 안녕하세요!


힘차게 외친 인삿말과 공손히 구부러진 내 허리. 좋아. 훌륭했어. 그대로 열심히 걸어 그 분을 지나쳤다. 조금 더 걸어가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는데, 마음이 신난 게 느껴졌다. 아니, 겨우 인사 하나일 뿐인데, 뭘 이렇게 좋아해?


그 다음부터 병원으로 실습하러 가는 날이 아니라 학교에 가는 날, 일주일에 딱 하루 있는 그 날이면 알게 모르게 오늘도 인사드려야지, 하고 벼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 학기 내내 월요일 아침마다 따끈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서, 있었는지도 모르게 없어진 짧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갔다. 그런데 학교 앞에 아무도 없는 거다. 작은 애기들도, 큰 애기들도, 그리고 인사를 나눠주시던 그 분도.


아, 나만 개강했구나. 초등학교는 아직 여름방학이구나. 부럽다! 진짜 부럽다!! 아, 그분도 안 오시겠구나. 찬바람이 좀 불 때가 되어야 애기들도 학교에 올 테고, 은근슬쩍 지나가며 인사를 나눠받을 수 있겠지. 기다릴 수밖에. 얼른 다시 뵐 수 있었음 좋겠다. 이젠 더 씩씩하게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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