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일사삼공삼 Jan 15. 2021

그래서 왜 간호학과를 갔어?

자신을 소개할 때는 주로 나이와 전공, 출신 학교, 덧붙여서 하는 일을 말하곤 한다. 사투리가 강하다면 고향까지 얼추 짐작할 수 있다. 몇 안 되는 단어로 된 이 짧은 대답으로 우리는 생각보다 상대에 대해 많은 걸 파악할 수 있다. 아, 당신, 대충 알겠다는 이 마음은 오만하기 그지없어서, 가끔은 상대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하는 의지를 꺾곤 한다. 그럴 때마다 던지는 질문이 있다.

소개가 끝나고 어색한 침묵이 흐를 즈음, 살포시 웃으며 그런데 왜 그 전공을 선택하셨어요? 하고 묻는다.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게 몇 개의 건조한 단어로 끝나버리지만, 왜 그 전공을 택했냐는 질문을 던지면 그 대답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심지어 생동감이 넘친다. 어떤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10대 때부터 품어 왔던 소중한 꿈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쑥스러운 목소리로 그냥 성적에 맞추어 지원했다 고백하기도 한다.

나아가 몇몇 사람들은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까지도 신나서 말해 준다. 혹은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이젠 얼마나 그 전공을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어색함을 털어내는 데 이만한 질문이 없다. 더 좋은 것은, 즐겁게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엔 상대방이 질문을 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나의 답변은 이렇게 시작한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간호학과에 가게 될 거라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수능을 치고 나서야 엄마가 ‘간호사는 취업이 잘 된다더라.’라면서 간호학과를 추천하셨지. 그 말을 담임선생님께 전하니 선생님도 한번 써 보라고 하시고. 그래서 썼는데 운 좋게 붙은 거야. 그런데 입학하고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덕분에 안 거지, 간호사는 3교대를 한다는 걸.”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아플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병원은 항상 돌아가는 상태여야 하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다 잠들어 있는 시간에 누군가는 깬 상태로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지. 그런데 그걸 나중에야 알았어.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합격 문자를 받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거야. 관심이 없었지. 막연히 생물학이 좋으니까, 생물학이 가장 꽃핀 영역인 의학이 실제로 활용되고 있는 병원에서 직접 보고 행할 수 있을 테니 재밌을 거라고만 생각했어.”

“많이 방황했어. 1학년을 마치고 1년간 휴학을 하기도 하고,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발버둥 치기도 하고.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직업을 추천해준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어. ‘취업이 잘 된다’라는 것도, 일이 힘들어서 일찍 그만두는 사람이 많으니 빈자리가 잘 생겨서 취업이 잘 된다는 거더라. 고생만 하고, 몸 상하고, 오래 일하지 못하는 직업이라 생각해서 더 싫었던 것 같아. 간호사가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면허를 따고, 병원에서 직접 일을 해 보니까 알았어.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사람을 좋아하고 이야기하기를 즐거워하는 내 성격과 간호사가 잘 맞더라. 오지랖을 떠는 게 다른 사람한테 도움이 된다는 것도 좋았어.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해주는 일이라 좋았다고 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사람이 나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는 것도.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해 주니까, 그래서 간호학과를 추천한 거라고 하셨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선한 행동을 하면서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면, 하고 생각하셨대.”

“일하면서 새로운 꿈도 꾸게 되었어.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결심한 것도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야.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환자분이나, 환자를 보러 매일 하루에 두 번씩 회진을 돌고도 밤 열한 시가 넘어서 환자가 안 좋다는 전화 한 통에 병원으로 달려오는 교수님 같은 사람들. 간호사로 일하면서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다시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나눈 첫 대화는 쉽게 잊히지만, 그 느낌은 의외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곤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이 그 사람을 다시 만날지, 만나지 않을지를 결정하곤 한다. 텍스트로 만나는 첫인상도 실제 첫인상과 비슷하면 좋을 텐데. 이리 와요. 같이 수다나 떨어요. 당신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어요.

작가의 이전글 참을 수 없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