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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사삼공삼 Jan 03. 2021

참을 수 없는 것

자취 생활 6년 차, 지금까지는 이웃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없었다. 어쩌다 퇴근길이나 쉬는 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 얼굴을 마주치긴 하지만 도시 이웃이라면 무릇 어색한 표정과 눈빛으로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는 것이 예의 아니겠는가.       


지금 이 집에 살게 된 지 이제 딱 만 1년이 되었다. 새롭게 시작한 학업 때문에 처음으로 강원도에 오게 되었는데, 이 집, 만만치 않다.     


시작은 천장 얼룩이었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게 예사인 이 동네에서, 오래된 아파트 창문에 맺히는 물방울들은 아래로 굴러떨어지다 고드름이 되기도 하고, 아랫집 천장을 누렇게 물들이기도 했다. 도배가 깔끔히 완료된 상태로 들어간 집에, 용서할 수 없는 첫 번째 오점이 생긴 것이다.     


 이삿짐을 다 풀기도 전에 생긴 일이라, 공인중개사 아주머니께 해결을 부탁드렸다. 아주머니께서는 윗집에 올라가 한참을 이야기하시더니, 애가 셋이나 있는 집에, 살림이 빠듯해 당장 물이 새는 창틀을 공사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셨다. 그리고서는 본인이 해결하시겠다 하시더니 며칠 뒤 도배하시는 분과 함께 나타나셨다. 풀과 붓질의 향연이 한 차례 지나간 뒤  천장은 다시 말끔해졌고, 얼룩은 더 생기지 않았다.     


 윗집 아이 셋은 모두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강의실에 가는 시간과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이 오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날에는 아이들이 유치원 등교 버스에 타고 엄마가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집을 나서는 길에 신나게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아이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보자마자 가차 없이 아줌마라고 부르는 바람에 상처를 좀 받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날이 길어졌다. 유치원에서 발산해야 할 에너지를 집에서 모조리 뿜어내려는지, 밤 11시가 되도록 부엌 끝에서 안방 끝까지 달리기 혹은 구르기로 추측되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아이들 특유의 고음으로 꺅- 꺅- 하는 비명도 곁들여서. 오프라인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어서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했던 나는 소음을 피해 부엉이가 되어서 새벽에 공부해야 했다.     


 이쯤 되면 한마디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윗집에 올라가서, 문을 똑똑 두드리고, 누구세요? 하면 저, 아랫집인데요…. 그리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온갖 상황이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으. 싫어. 못해. 안 해. 도시 이웃의 예의를 지키겠어. 애들이 소리 좀 지를 수도 있는 거지. 성대가 작아서 고음이 잘 날 수밖에 없는 신체구조인 거지. 집안에서든 어디든 좀 달려야 근육 성장에 도움이 되겠지. 일찍 자기 싫어하고, 집에서 온갖 못된 장난을 치던 내 어린 시절에 대한 대가를 이제 치른다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스스로 얻은 마음속 평화에 뿌듯해질 무렵,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를 혼내는 목소리였다. 정확한 단어는 들리지 않았으나 억양과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아이가 처했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래, 애가 잘못했으면 혼낼 수도 있지… 가 통하지 않았다. 전혀.     


그저 귀찮았을 뿐인 아이들 소리와는 달리 부모들의 목소리는 아주 깊이 와 박혔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혼나고 있는 것처럼. 잘못한 게 없는데 혼나는 게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입은 울음소리를 뱉어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때가 떠올랐다.     


 아마 시험 기간이라 이미 쌓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 그랬겠지만, 한동안 이유 없이 혼나는 아이가 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게 층간소음이구나. 몇 데시벨 기준 이상이면 층간소음, 아니면 그냥 소리. 이런 게 아니라 그 어떤 소리든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것. 힘들게 하는 것. 마음에 찐득하게 오래 남는 것.     


 어느 날, 윗집 아이들의 어머니와 복도에서 눈을 마주쳤다. 어색한 인사와 더불어, 아이들이 많이 시끄럽지요,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아니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더 문제에요. 어른들 목소리를 못 참겠어요. 라고 말하려다 꿀꺽 삼키고, 어쩔 수 없죠. 하고 힘없이 웃었다. 아마 그분은 아이들이 만드는 소음에 해탈해버린 아랫집 여자를 보셨겠지. 실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과거로 돌아가 엄마에게 진탕 혼난 아이를 만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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