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찢겨나간 자리에 세운 놀이터

텅 빈 아침을 맞이한 쉰 살의 당신에게

by 하노이별

1. 화요일 오전 10시, 알람이 사라진 눈부신 백지(白紙)

과거의 나에게 평일 오전 10시는 목을 조여오는 넥타이와 같았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결재 서류와 끝없는 회의, 그리고 이번 달 실적이라는 무거운 압박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시간. 내 이름 앞을 장식하던 '팀장'이라는 번듯한 직함은 나를 세상의 무시로부터 지켜주는 견고한 신전이자,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유일한 언어였다. 나는 그 알량한 타이틀을 내 진짜 피부라고 굳게 믿으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 가족과 아이의 시간마저 깎아 세상의 제단에 바쳐왔다.


그렇기에 그 견고했던 소속의 보호막이 무참히 찢겨 나가던 실직 초기, 이 텅 빈 평일 오전의 정적은 내게 견딜 수 없는 형벌이었다. 남들은 다들 꽉 찬 만원 전철에 몸을 싣고 각자의 '쓸모'를 증명하러 바쁘게 향하는데, 나만 세상의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불량품으로 튕겨 나간 듯한 끔찍한 단절감. 명함이라는 신전이 무너지자, 그 자리에는 스스로 설 힘조차 없어 덜덜 떠는 앙상한 쉰 살의 여자가 남아있었다. 나는 이 비루한 무능력을 견디지 못해, 아침마다 핏발 선 눈으로 구인 사이트를 뒤적이며 나를 다시 고용해 줄 또 다른 간판을 구걸하듯 찾아 헤맸다.


하지만 지금, 쫓기듯 헐떡이던 내 아침의 풍경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세상에서 버려졌다는 끔찍한 단절감과 숨 막히던 불안이 걷히고,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이 텅 빈 시간을 온전히 내 뜻대로 쓸 수 있다는 편안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무너진 명함의 빈자리에 비로소 나만의 자유롭고 짜릿한 해방감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해방감이 마법처럼 단숨에 찾아온 것은 아니다. 매일 밤 뼈아픈 수치심과 싸우며, 나를 짓누르던 '사회적 성공'이라는 낡은 우상을 니체의 망치로 사정없이 내리쳐 부숴야만 했다. 또한 진리의 수술대 위에서, '유능한 직장인'이라는 빛나는 타이틀이 영원불멸한 내 본질이 아님을 뼈저리게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해체의 시간을 거쳤다.


가만히 사유해 보면, 명함이란 그저 특정한 시기에 회사라는 공간과 월급, 그리고 나의 노동력이 임시로 만나 얽혀 만들어진 찰나의 인연일 뿐이었다. 입었다가 때가 되면 벗어야 할 남의 옷을 내 살점이라 착각했기에 그토록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조건이 다해 흩어진 것을 두고 내 존재가 폐기 처분되었다고 믿었던 그 지독한 무지와 종속성. 타인의 시선과 평판이라는 모래주머니를 기어이 다시 주워 담아 등에 지려 했던 낙타의 맹목적인 어리석음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바닥에 내려놓는 중이다.


알람이 울리지 않는 화요일 오전 10시. 이 시간은 더 이상 세상에서 도태된 실직자의 우울한 '잉여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의 간섭도, 억지로 증명해야 할 사회적 쓸모도 없는 완벽하게 눈부신 백지다. 타인의 시간표에 나를 욱여넣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대신, 오직 나의 숨결과 속도로 하루의 첫 문장을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절대적인 해방의 공간인 것이다.


거실 창문으로 쏟아지는 따스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는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의 밥그릇에 사료를 가득 채워준다. 사각사각, 경쾌하게 사료 씹는 소리가 거실의 따뜻하고 포근한 고요함을 기분 좋게 가른다. 나는 구인 사이트에 접속하는 대신,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쥐고 이 텅 빈 아침의 평온을 온몸으로 깊이 들이마신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명함 한 장 없는 한심한 백수일지 모르나, 알량한 소속감이 찢겨나간 이 눈부신 백지 위에 서 있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고 단단한 내 삶의 주권자다.


2. 뒷산을 넘어 도서관으로 가는 길, 텅 빈 손에 쥔 집게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현관문을 나선다. 예전 같으면 갑옷처럼 빳빳하게 다려 입었을 정장 재킷과 또각거리는 구두 대신, 헐렁하고 편안한 셔츠에 고무줄 바지를 입고 밑창이 푹신한 운동화를 꿰어 신는다. 나의 목적지는 나를 평가하고 채점할 면접관이 있는 빌딩 숲이 아니라, 동네 뒷산을 가로지르면 나오는 작고 조용한 도서관이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나의 양손은 가볍지만 결코 비어있지 않다. 한 손에는 반납할 책과 소박한 도시락이 담긴 에코백을, 다른 한 손에는 긴 집게와 쓰레기 봉투를 쥐고 있다. 나는 타박타박 흙길을 걸으며 상쾌한 산바람을 깊이 들이마신다. 그리고 산책로 주변 풀숲에 버려진 빈 생수병이나 홍삼스틱 껍질, 빛바랜 과자 봉지들을 발견할 때마다 무심히 집게로 툭툭 주워 봉투에 담는다.


누군가에게 보고서를 제출할 필요도 없고, 연봉 협상을 위한 성과 지표로 기록되지도 않는 일. 이력서의 '사회 공헌' 란에 단 한 줄의 스펙으로도 남지 않을 지극히 사소하고 묵묵한 행위.


내가 이 산길의 쓰레기를 줍는 것은 실직자라는 초라함을 덮기 위해서나, "나는 비록 돈은 못 벌어도 사회에 쓸모 있는 선한 사람이야"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착한 자아'라는 또 다른 우상을 숭배하는 비루한 거래에 불과했을 것이다.


지금 집게를 쥔 나의 손끝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끈적한 자의식도, 내가 세상에 무언가를 베풀었다는 흔적을 남기려는 욕심도 전혀 묻어있지 않다. 고정된 '나'라는 아집이 부서지고 나와 남을 가르던 뾰족한 경계마저 허물어지자, 그 자리에는 넉넉한 마음이 차올랐다. 숲과 내가 온전히 하나로 공명하며 스며든 그 맑은 에너지가, 그저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산새 소리를 듣고 흙냄새를 맡으며, 내 발길이 닿는 이 숲이 조금 더 편안하게 숨 쉬기를 바라는 무심하고도 투명한 몸짓이다.


대가를 바라는 노동 시장에서 걸어 나와 텅 빈 마음으로 대가 없는 세계에 진입하자, 기적 같은 홀가분함이 밀려온다. 동네 뒷산을 넘는 나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산책로를 따라 툭, 툭, 무심히 울리는 집게 소리가 마치 내 삶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맑은 풍경 소리처럼 숲속에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3. 대가 없는 세계에서 춤추는 쉰 살의 어린아이

도서관의 낡은 나무 책상 구석에 자리를 잡고 에코백에서 조용히 노트북을 꺼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네모난 화면은 나의 '쓸모'를 쥐어짜 세상에 증명해야만 했던 치열하고도 비참한 전쟁터였다. 상사의 결재를 받기 위해 밤을 새워 기획서를 다듬고, 명함이 사라진 뒤에는 핏발 선 눈으로 구인 사이트를 새로고침하며 헐떡이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키보드 위에 얹은 나의 손가락은 더 이상 남에게 평가받기 위한 피로한 노동을 하지 않는다. 나는 하얀 빈 화면 위에 내 마음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솔직한 이야기들을 타닥타닥 적어 내려간다. 당장 통장에 단돈 만 원을 꽂아주지도 않고, 나를 번듯한 직함으로 꾸며주지도 않는 일.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그저 실직자의 한가로운 시간 낭비일 것이다.


과거 직장에서의 글을 쓴다는 것에는 늘 정해진 목적이 있었다. 상사의 입맛에 맞춰 결재를 받아내고, 실적이라는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피 말리는 생존 도구였다. 돈을 벌기 위해 쥐어짜던 기획서나 보고서에는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 내 목소리를 철저히 지우고 타인의 요구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며 에너지를 갉아먹는, 숨 막히는 고된 노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다르다. 타인의 평가와 경제적 보상이 사라진 빈자리에 비로소 '진짜 나'가 들어설 틈이 생겼다. 잘 팔리기 위해 화려하게 포장하거나, 억지로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압박이 걷히자 내 마음 깊은 곳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 자유가 찾아왔다.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이 행위야말로, 나를 가장 펄떡이게 살려두는 경이로운 창조의 시간이다. 세상의 잣대를 내려놓고 오직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나의 글쓰기는 비로소 억지스러운 '노동'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를 위한 순수한 '유희'가 된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너는 '낙타'에서, 세상의 낡은 우상을 부수며 반항하는 '사자'를 거쳐, 마침내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유희하는 '어린아이'로 진화한다고 말했다. 명함이라는 무거운 껍데기가 찢겨나간 이 눈부신 폐허 위에서, 나는 마침내 그 쉰 살의 어린아이가 되었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내일의 목적을 위해 오늘을 다그치지 않고, 그저 놀이 그 자체에 흠뻑 빠져 스스로 굴러가는 맑은 수레바퀴. 도서관에서 내 영혼을 위한 에세이를 쓰고, 일주일에 한 번은 복지관에 나가 독거노인들의 굳은 손에 따뜻한 도시락을 쥐여 드리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물감 얼룩진 앞치마를 두르고, 붓끝을 따라 맑은 수채화 물감들이 도화지 위를 마음껏 유영하게 둔다. 이 모든 대가 없는 행위들은 '성공한 직장인'이라는 질긴 모래주머니를 벗어던진 내가, 내 삶의 온전한 주권자로서 짓는 가장 사치스럽고 우아한 놀이다.


4. 콜로세움을 무너뜨린 자리에 세운 찬란한 놀이터

오랫동안 나는 명함이라는 알량한 티켓이 있어야만 세상이라는 거대한 놀이공원에 입장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소속을 증명하는 번듯한 직함과 매달 통장에 찍히는 연봉만이 내가 이 사회에서 숨 쉬고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이자 입장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 티켓이 무참히 찢겨나가던 날, 나는 굳게 닫힌 놀이공원 철창 밖에 홀로 버려진 아이처럼 지독한 수치심과 공포에 떨며 엉엉 울었던 것이다.


하지만 텅 빈 마음으로 대가 없는 맑은 유희의 세계에 앉은 지금. 나는 비로소 그동안 나를 가두고 있던 투명한 감옥의 진짜 정체를 깨닫는다.


내가 그토록 입장하고 싶어 안달했던 그곳은 즐거운 놀이공원이 아니라, 끊임없이 남들과 성과를 비교당하고 타인의 승인을 구걸해야만 살아남는 끔찍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이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야 한다는 압박, 실패자로 보이면 안 된다는 허영심이 빚어낸 노예도덕의 굴레. 나는 내 삶의 운전대를 타인에게 통째로 넘겨둔 채, 그들이 지시하는 목적지만을 향해 숨차게 달려가며 채찍질을 견디는 피 흘리는 충실한 검투사였을 뿐이다.


노트북 화면에서 잠시 눈을 떼고 도서관의 고요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신다. 나를 보호해 준다고 믿었던 명함과 타이틀이라는 낡은 껍데기가 불타버린 이 텅 빈 폐허는, 역설적으로 내가 내 손으로 직접 규칙을 만들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무한하고 경이로운 무대이자 나만의 놀이터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내밀어야만 안심이 되는 종이 쪼가리 하나 쥐지 않았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않는다. 세상의 잣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어지자, 나를 칭칭 감고 있던 타인의 시선이라는 질긴 밧줄이 스르르 풀려나갔다.


'쉰 살의 실직자'라는 세상의 초라한 꼬리표는 이제 내게 부끄러운 낙인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정해놓은 당위와 기준에 맞춰 콜로세움의 비참한 꼭두각시로 서기를 거부하고, 그 잔혹한 싸움에서 이겨야만 받을 수 있는 관중석의 박수를 더 이상 구걸하지 않겠다는 통쾌한 선언이다. 이는 곧 이 눈부신 놀이터를 온전히 내 뜻대로 유희하겠다는 '주권자'의 가장 찬란한 훈장이기도 하다.


찢겨나간 명함의 폐허 위에서, 나는 이제 누구의 승인도 필요 없는 오직 나만의 춤을 춘다.


5. 실직한 당신에게 부치는 편지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비치는 도서관의 창밖을 내다보며, 나는 하얀 빈 화면 위에 가만히 편지 한 통을 적어 내려간다.


"어느 날 갑자기 명함이 사라지고 텅 빈 아침을 맞이한, 나와 같은 쉰 살의 당신에게.


20년 넘게 참 애쓰셨습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무엇보다 내 가족들 밥그릇 챙기며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우리, 참 고단하게도 달려왔지요.


내동댕이쳐지듯 회사 문을 나섰을 때, 제 심정이 딱 그랬습니다. 내 인생 전체가 오답 처리된 것 같은 억울함도 컸지만, 그보다 저를 벼랑 끝으로 몬 것은 지독한 현실의 공포였습니다. 당장 다음 달 생활비는 어쩌나, 아직 온전히 제 앞가림을 못 하는 자식의 등짝은 무슨 수로 품어주나, 코앞으로 다가온 노후는 또 어떻게 버텨내나…. 꼬리를 무는 막막함과 무거운 책임감이 밤마다 목을 조여왔지요. 남들 다 출근하는 아침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그 서늘한 정적 속에서, 저는 핏발 선 눈으로 구인 사이트를 뒤적이며 어떻게든 다시 돈을 벌고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바둥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텅 빈 시간을 피 말리며 견뎌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이토록 불안한 건 당장 통장에 찍힐 월급이 사라져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가족을 책임지는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타이틀을 벗었을 때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닐까 봐 두려워하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요.


우리가 잃어버린 건 내 존재의 전부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혹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억지로 입고 있던 낡고 무거운 껍데기 하나일 뿐입니다. 그 얄팍한 종이 쪼가리 하나 찢겨 나갔다고 해서, 징글징글한 세월을 맨몸으로 버텨낸 우리의 단단한 알맹이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당장 밥벌이의 막막함이 마법처럼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텅 빈 시간이 두렵다고, 불안감에 쫓겨 억지로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려 너무 헐떡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정해준 알람이 울리지 않는 이 아침은 도태된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으로 온전히 내 마음대로 칠해볼 수 있는 하얀 백지니까요.


당장 돈 안 되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도 보고, 목적 없이 무심히 숲길을 걸어도 봅시다. 내일 당장 파도에 무너질 줄 알면서도 낄낄거리며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처럼, 세상의 잣대는 잠시 치워두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의 텅 빈 홀가분함을 흠뻑 누려보면 어떨까요.


그 무거운 책임감을 등에 업고 사막 같은 세월을 여기까지 무사히 건너와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가장의 무게나 세상의 허락 같은 건 잠시 내려놓고, 우리가 직접 만든 이 낯설고도 눈부신 놀이터에서 마음껏 숨통을 틔워봅시다.


봄 햇살이 기분 좋게 내려앉은 도서관 창가에서,

당신과 같은 궤도를 돌고 있는 쉰 살의 동료가."


타닥타닥,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소리가 텅 빈 도서관의 공기를 경쾌하게 가른다.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의 두 손에는 쥐어진 명함 한 장 없었지만, 걸음을 내딛는 발끝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자유로웠다. 이력서의 빈칸은 더 이상 채워지지 않겠지만, 그 폐허 위에 세워진 나만의 놀이터에서 나의 눈부신 두 번째 삶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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