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기어이 춤을 추는 야성(野性)
1. 고요한 놀이터를 덮치는 불길, 육체라는 마지막 진흙탕
명함이 사라진 텅 빈 아침의 낯선 자유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쉴 새 없이 휘몰아치던 삶의 불안과 관계의 갈등들도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고, 텅 빈 거실에는 고양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만이 평화롭게 감돌았다. 낡은 소파에 기대앉아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이 잔잔하고 통제 가능한 궤도에 올랐다고 가만히 안도했다.
그러나 내가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 관념적 평온이 밑바닥부터 요동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음은 궤도에 올랐을지 몰라도, 내 몸은 아니었다. 고요히 책을 읽으며 평온을 음미하려 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줄기를 타고 끈적한 열기가 훅 치밀어 올랐다. 심장은 시도 때도 없이 원인 모를 불안으로 미친 듯이 쿵쿵거렸고, 뱃속에서부터 들끓기 시작한 불길은 순식간에 목덜미를 집어삼키며 얼굴을 시뻘겋게 달구었다. 밤마다 축축한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고, 아침이면 뻣뻣하게 굳어버린 관절들이 삐걱대며 비명을 질렀다. 내 의지로는 단 1도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린 낯선 몸뚱이와 매일같이 씨름해야 했다.
아무리 머리로 불교의 제법무아(諸法無我)를 되뇌고 니체의 망치로 낡은 에고를 부수었다고 자부한들, 호르몬이 날뛰고 뼈마디가 쑤시는 이 순도 100%의 물리적인 고통 앞에서는 그 위대한 철학의 언어들도 속절없이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단단하게 무장했다 여겼던 내 안의 보살은 툭하면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열기 속에서 자비로운 미소를 잃고 허둥거렸고, 세상의 우상을 부수겠다며 치켜들었던 초인의 망치는 시큰거리는 손목 탓에 번번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깨달음을 얻은 척, 외부의 우상들을 다 부수었다고 안도했던 나의 오만함에 가장 노골적인 진짜 현실이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결코 도망칠 수도, 껍데기처럼 벗어던질 수도 없는 '생물학적 몸뚱이'라는 가장 끈질기고 원초적인 진흙탕이 비릿한 입을 벌린 채 매일같이 나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2. 소멸을 향한 카운트다운, 죽음의 리허설과 종교의 기만
처음엔 이 불쾌한 열기와 통증이 그저 '여자로서의 젊음'이 끝났다는 신호인 줄 알았다. 거울 앞의 푸석해진 얼굴을 보며 느끼는 얕은 아쉬움이나 서글픔 정도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밤마다 원인 모를 열기에 시달리며 식은땀을 쏟을 때, 삐걱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무거운 몸을 일으킬 때, 나는 그 통증 너머에서 훨씬 더 거대하고 서늘한 그림자를 감지했다. 그것은 단순히 '늙어감'에 대한 우울이 아니었다. 반백 년을 쉼 없이 달려온 내 육체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생생한 경고음이었다.
새것으로 갈아치울 수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붕괴의 시작. 영원할 것만 같던 내 육체가 결국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남의 일처럼 가볍게 읽어 넘기던 책 속의 납작한 글귀들이 아니라 내 뼈와 살의 섬뜩한 감각으로 직접 만져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나는 훅 치밀어 오르는 이 열기가 왜 그토록 끔찍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젊음의 상실을 넘어선, 언젠가 이 위태로운 육신이 완전히 멈춰버릴 거라는, 소멸과 죽음이 내 귓가에 속삭이는 서늘하고도 잔혹한 진실 때문이었다.
"너의 이 생물학적 기계도 결국 고장 나고 멈출 것이다. 너는 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
갱년기는 내 생애 처음으로 육체를 통해 직접 통보받은 생생한 죽음의 리허설이었다. 영원할 것 같던 나의 존재가 결국 한 줌의 재로 돌아갈 것이라는, 피할 수 없는 유한성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 밤마다 이유 없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던 것은, 늙어감에 대한 서러움이기 이전에 근원적으로 내 존재가 영원히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캄캄한 그림자가 내 목을 조여왔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죽음에 대한 공포야말로 유한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도 쉽게 비껴갈 수 없는 가장 실존적인 절망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종교가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장사를 해올 수 있었던 가장 든든한 밑천이기도 하다. 그들은 소멸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절대자에게 맹목적으로 의지하고 엎드리면 '천국'이나 '극락'이라는 영원불멸의 삶을 보장해 주겠다며 달콤한 구원의 티켓을 팔아왔다.
내 존재가 영원히 지워진다는 끔찍한 진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시할 용기가 없기에, 사람들은 기꺼이 그 기만의 제단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현재를 바치며, 단 한 번도 입증된 적 없는 사후세계라는 허상, 그 '천국'이라는 값싼 위로를 구걸한다. 처음엔 그저 갱년기가 가져온 막연한 불안인 줄만 알고 열병 속에서 덜덜 떨었던 나 역시, 문득 서늘한 그림자가 덮쳐오는 불면의 밤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게 매달려 이 버거운 시간을 제발 치워달라고 구걸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곤 했다.
그러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자를 향해 제발 살려달라 읊조리던 입술이 문득 멈칫했다. 두렵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구원을 구걸한다면, 그토록 치열하게 부숴왔던 낡은 우상들을 내 손으로 다시 세우는 격이 아닌가. 그것은 평생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다 이제 겨우 쥐어본 내 삶의 주권을 또다시 반납하는 비겁한 도피였다. 나는 덜덜 떨리는 낡은 몸뚱이를 감싸 안으며, 죽음이라는 이 잔혹한 진실 앞에서도 더 이상 가짜 위안의 이불속에 숨지 않기로 이를 악물었다
3. 무너지는 육신을 껴안는 위대한 연민, 보살의 따뜻한 쓰다듬
천국이라는 환상으로 죽음의 공포를 덮어주던 종교의 포장지를 마저 찢어버리자, 내 앞에는 도망칠 곳 없는 비릿한 진실만이 민낯을 드러냈다. 구원을 구걸할 비겁한 도피처마저 제 손으로 끊어낸 캄캄한 심연 속에서, 내가 오롯이 끌어안고 있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이 가여운 육신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신에게 영원불멸의 영혼을 구걸하며 시선을 하늘로 돌리는 대신, 나는 이 두려움이 시작된 가장 비루한 현실을 향해 똑바로 시선을 내리꽂았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끝이라면 저 너머의 구원자에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이 공포의 진원지인 '내 늙어가고 고장 난 육체'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화해해야만 했다.
그동안 나는 소멸해 가는 이 몸뚱이를 얼마나 미워하고 윽박질러 왔던가. 젊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주름과 툭 튀어나온 뱃살을 수치스러워하며, 마치 내 영원을 배신한 고물 기계 취급을 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붕괴의 과정이 너무도 두려웠기에, 그 공포를 덮어버리려 내 몸을 향해 끝없는 원망과 혐오를 퍼부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낡고 삐걱거리는 몸뚱이는 내 영원을 망친 원흉이 아니었다. 오히려 50년이라는 무거운 세월의 무게를 나와 함께 맨몸으로 견뎌낸, 가장 처절하고 충직한 동지였다. 죽음의 공포에 질려 발버둥 치는 내 관념적인 영혼을 대신해, 현실의 진흙탕 속에서 묵묵히 닳아 없어지며 부서지고 있는 가여운 방패막이. 과연 이 몸이 나를 배신한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 두려워 허둥대는 내가 이 늙어가는 동지를 배신하고 모욕한 것일까.
그 서늘한 자각이 혐오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을 두드리자, 그 자리에 왈칵 뜨거운 미안함이 밀려왔다. 가짜 위로를 구걸하며 하늘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나는 비로소 내 안에서 진짜 구원의 길을 열기로 했다.
닫힌 아이의 방문 너머 그 캄캄한 고통을 묵묵히 기다려주고, 어머니의 낡은 상처를 연민으로 껴안았던 그 웅장한 보살의 자비심. 이제 나는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타자(他者)이자 죽음의 최전선에 홀로 선 '나 자신의 육체'를 향해 온전히 베풀기로 한다.
종교가 영원불멸의 영혼을 약속하며 장사를 할 때, 불교의 제법무아(諸法無我)는 영원한 '나'가 없음을, 내 몸조차 인연에 따라 모였다 흩어지는 찰나의 풍경임을 명징하게 일러주었다.
곰곰히 곱씹어 보니, 내가 그토록 억울하고 두려웠던 이유는 이 몸뚱이가 끝까지 '내 것'이어야 한다는 지독한 착각 때문이었다.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진리 앞에 고정된 '나'도, 영원한 '나의 것'도 없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다 안다고 자만했지만, 정작 무너지는 육신 앞에서는 그 지혜를 까맣게 잊은 채 철저히 무지했다. 인연 따라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유한한 껍데기를, 나는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늙지도 않은 채 영원히 내 곁에 두어야 할 완벽한 소유물로 여겼다. 찰나의 풍경을 영원한 내 것이라 우기며 붙잡으려 했던 그 오만한 어리석음이 나를 스스로 지옥에 가두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면 어떨까. 그저 잠시 내게 빌려진 것이고, 때가 되면 자연의 순리대로 부서지고 흩어질 조각들이라면 말이다.
이 낡은 생물학적 기계가 처음부터 영원한 나의 소유물이 아니었음을 온전히 인정하며,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가늘고 길게, 그리고 아주 고르게 호흡을 골라 쉬며 이 서늘한 지혜를 펄펄 끓는 내 몸속으로 천천히 흡수시켰다. 그러자 비로소 꽉 쥐고 있던 마음의 주먹에 탁, 하고 힘이 풀렸다.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며 늙어가는 육체를 향해 쏟아내던 억울함, 그리고 이 소유물을 영영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던 죽음의 공포가 그 깊은 숨결을 타고 팽팽한 긴장을 잃은 채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독한 집착이 맑은 숨을 타고 빠져나간 텅 빈자리에, 비로소 다른 감정이 스며들 틈이 생겼다. 그것은 50년의 거친 세상을 맨몸으로 버텨내느라, 내 무거운 영혼을 짊어지고 다니느라 닳고 찢긴 이 불쌍한 육신을 향한 한없는 연민과 감사함이었다.
"가족들 밥그릇 챙기며 세상에 쓸모를 증명하느라, 늘 배에 잔뜩 힘을 주고 긴장하며 사느라 참으로 고단했지. 내 영혼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관절의 진액이 다 빠지도록 애써주어서 정말 고맙다."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와 삐걱거리는 어깨, 그리고 튜브처럼 두툼해진 뱃살을 내 손으로 가만히 쓸어내린다. 저 너머의 절대자에게 매달려 육체의 쇠락을 억지로 외면하려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이 두렵고 외로운 붕괴의 과정을, 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눈감지 않고 가장 다정한 동반자로서 따뜻하게 지켜주겠다는 숭고한 화해의 의식이다.
내 낡아가는 육신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한없이 가엾게 여기는 이 보살의 깊은 수용. 무너지는 내 몸을 원망 없이 온전히 품어내는 이 지극한 연민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도 따뜻한 내 삶의 진짜 구원이었다.
4. 아모르 파티: 유한하기에 더욱 맹렬한, 짐승 같은 생의 긍정
무너져 내리는 몸을 원망 없이 끌어안으며 마음에 깊은 평온이 찾아오자, 신기하게도 그 고요해진 내면 한구석에서 전혀 다른 결의 에너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소멸의 공포를 다스린 보살의 다정한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 이번에는 남은 생을 향한 초인의 맹렬한 의지가 고개를 든 것이다. 언젠가 숨이 멎고 한 줌의 재로 돌아갈 거라는 이 냉혹한 진실은 더 이상 나를 허무의 늪으로 끌어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끝이 정해져 있다는 그 절대적인 유한성이야말로, 내게 남은 매 순간을 가장 치열하고 뜨겁게 타오르도록 부추기는 거대한 불쏘시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처음 낯선 열기에 휩싸여 몸의 붕괴를 마주했을 때, 내가 어떻게든 쇠락의 시계를 늦춰보려 발버둥 쳤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끝이 다가온다는 실존적 공포에 압도된 나머지, 남은 목숨의 길이에만 병적으로 매달렸던 것이다. 그것은 바닥을 드러내는 생명력에 대한 비루한 구걸이자, 끈질긴 생(生)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었다. 이 알량한 천착은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현재의 내 모습을 흉측하게 여기고 끊임없이 부정하게 만들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비겁하게 회피한 채, 하루라도 더 이 껍데기를 유지하며 억지로 연명하게 만드는 지독한 굴레였다.
하지만 단지 하루를 더 살기 위해 벌벌 떨며 웅크린 모습은 살아있어도 진짜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를 피하려다, 오히려 내게 남은 생생한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마저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뼈아픈 자각이 찾아왔다. 더 이상 도망칠 곳 없는 그 벼랑 끝에 내몰려서야, 나는 시선을 돌려 나를 옭아매던 그 낡은 족쇄를 끊어낼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벼랑 끝에서 움켜쥔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였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처음 듣는 이들에겐 그저 피할 수 없는 늙음과 죽음을 얌전하게 체념하고 받아들이라는 수동적인 위로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이 운명애는 결코 타협이나 포기가 아니다. 나를 덮쳐오는 육체의 붕괴, 피할 수 없는 소멸이라는 이 잔혹한 필연성조차 회피하지 않고 두 팔 벌려 맹렬하게 끌어안는 것. 나아가 그 끔찍한 운명마저 내 삶의 필연적인 조각으로 철저하게 사랑해 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하고도 압도적인 긍정이다.
이 거대한 운명의 사랑은 내 안의 비루한 생의 집착을 단숨에 산산조각 낸다. 진정한 생의 긍정은 죽지 않으려 뒷걸음질 치며 발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도 때도 없이 식은땀을 쏟아내는 이 흉측한 가죽데기를 입고서도 "그래,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이 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뼈마디가 부서지더라도 기꺼이 이 남은 불꽃을 껴안고 나만의 춤을 추겠다!"라고 선언하는 짐승 같은 야성이다.
이 강렬한 긍정을 마음에 품고 나니, 나를 옥죄던 육체의 증상들조차 전혀 다른 질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훅 치밀어 오르는 이 갱년기의 열기를 느낄 때마다, 나는 부채질을 하며 남의 눈치를 보는 대신 오히려 그 뜨거운 불길 속으로 온몸을 내던진다. 늙고 고장 나가는 이 몸뚱이는 내 생명력이 끝났다는 우울한 징표가 아니다. 오히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이 시한부 육체를 입었기에, "나는 소멸하기 전까지 여기에 이토록 펄펄 끓으며 살아있다!"라고 온몸으로 찬란하게 타오를 수 있는 것이다.
기꺼이 온몸으로 타오르기로 작정하자, 나를 옭아매던 세상의 체면과 시선도 함께 불타 없어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조심스럽게 걷던 우아한 스텝 따위는 집어치웠다. 삐걱거리는 관절과 출렁이는 뱃살을 숨기지 않고, 내 욕망이 이끄는 대로 거칠게 걷고 숨차게 헐떡이리라. 내 안에서 타오르는 이 불꽃을, 점잖게 늙어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억지로 끄지는 않겠다. 이것은 죽음을 피하려는 추한 미련이 아니라, 내게 남은 생을 마지막 재 한 줌까지 눈부시게 연소시켜 버리겠다는 절대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무한한 긍정이다.
5. '김여사'의 반란과 눈부신 자유
화장실 변기 위에 몰래 앉아 식은땀을 닦아내며, 죽음으로 한 걸음 다가선 내 몸뚱이를 억울해하던 어제의 나는 이제 없다. 나는 죽음의 공포 앞에 시들어가는 가여운 꽃으로 웅크리는 대신, 낡은 껍데기를 내 손으로 불태우며 거칠게 걸어가는 전사가 되기로 했다.
내 몸뚱이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이 난폭한 열기는, 더 이상 노화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낡고 견고한 고치 속에 갇혀 있던 내가, 온몸을 녹여 찬란한 날개를 달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필수불가결했던 변태(Metamorphosis)의 용광로였다.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타인을 위해 꾸며냈던 '예쁜 여자, 희생적인 엄마'라는 코르셋의 찌꺼기들은 흉측하게 일그러지며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잿더미 위에서, 나는 이제 누구의 평가에도 걸림 없는, 촌스럽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야생의 나비로 진화 중이다.
세상은 내게 "이제 호르몬도 말라가는 중년이니, 헛된 열정이나 욕망은 접어두고 나이에 맞게 무해하고 얌전한 늙은이로 늙어갈 준비나 하라"고 압박을 가한다. 이 나이에 내 몫의 욕망을 소리 내어 요구하면 '주책없는 아줌마'라는 싸늘한 멸칭이 날아오고, '나잇값'이란 엄숙한 잣대를 들이대며 투명 인간처럼 조용히 세상의 무대에서 내려오라는 폭력을 휘두른다.
하지만 나는 세상이 요구한 그 무해하고 점잖은 중년이 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늙은 여자가 제멋대로 군다며 '천박하고 유난스럽다'고 손가락질한들 어떠랴. 나는 그 모멸에 주눅 드는 대신, 기꺼이 세상에서 가장 거침없고 싸가지없는 '김여사'가 되기로 한다.
나의 이 거칠고 불온한 날갯짓은, 나를 유통기한이 끝나가는 소모품 취급하는 세상의 얄팍한 핀잔을 향한 가장 유쾌하고 오만한 조롱이다. 쓸모 있는 여자로 평가받기 위해 평생을 조이던 긴장감에서 풀려나 '아줌마'로 밀려났다는 것은, 도리어 그 누구의 평가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는 완벽한 자유의 입장권을 거머쥐고 비상한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기꺼이 주책을 떨리라. 나를 기척 없는 유령으로 주저앉히려는 세상의 케케묵은 훈계 앞에 한없이 뻔뻔해지리라. 삐걱거리는 관절을 이끌고서라도 기어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그 무엇에도 걸림 없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자유롭게 날아갈 것이다. 마르고 갈라진 입술로 기어이 내 생의 기쁨을 탐할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끔 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 서슬 퍼런 공포가 나를 잡아챈다 해도, 내 안에 서늘한 자비와 뜨거운 야성이 공존하는 한, 나는 나의 이 드세고 찬란한 비상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세상의 무해한 배경으로 조용히 늙어가기엔, 내게 허락된 남은 생이 이토록 뜨겁고 아깝지 않은가.
거실 낡은 소파에 홀로 앉아, 펄펄 끓는 몸의 열기를 안주 삼아 차가운 맥주 캔을 딴다. 꿀꺽꿀꺽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쌉싸름하고 차가운 탄산이 식은땀 밴 몸뚱이를 짜릿하게 깨우자, 뱃속에서부터 다시 한번 강렬하고도 경쾌한 불길이 타오른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 나는 낡은 껍데기를 박차고 일어선다. 그리고 눈앞의 허공을 향해 가장 뻔뻔하고 맹렬한 건배를 치켜든다.
"죽음 앞에서도 끝내 얽매임 없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나의 이 눈부신 야성을 위하여!"
이것이 길들여진 중년이기를 단호히 거부하며, 쉰 살의 내가 붕괴하는 육체 위에서 빼어 든 가장 적나라하고 날카로운 생의 반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