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과 초인이 만나는 시장(市場)의 한복판에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가만히 노트북을 덮습니다. 길고 치열했던 15편의 기록이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이 글의 첫 문장을 적어 내려가던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 작가인 저는 모니터 너머 글 속의 주인공을 '사방이 꽉 막힌 거실에서 삶의 진창에 빠져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에 벌벌 떠는 가여운 중년 여성'으로 설정하였습니다. 누구도 나를 대신 구원해 주지 않는다는 그 서늘하고도 막막한 진실 앞에서, 글 속의 화자는 길 잃은 어떤 타인으로 철저하게 객체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글이 진행되면 될수록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나약한 중년의 화자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요.
이 글들은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거창한 철학서가 아니라, 갱년기의 열병과 무너진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저 스스로에게 던졌던 처절한 생존기였습니다.
글을 써 내려가는 내내 저는 글 속의 그녀가 감추고 싶어 했던 가장 비릿하고 수치스러운 진흙탕을 맨손으로 파헤쳐야 했습니다. 숨기고 싶었던 찌질함, 억울함, 그리고 비겁했던 도피의 시간들까지 적나라하게 활자화하여 무대 위에 세우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아픈 상처들을 뼈아프게 직시하고 세상에 내어놓는 순간, 곪았던 아픔은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불쏘시개가 되어 차갑게 식어가던 제 영혼을 서서히 덥혀주었습니다. 글 속의 화자가 낡은 우상을 부수고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는 동안, 그것을 낱낱이 기록하는 글쓰기 자체가 작가인 제게는 낡은 에고를 부수는 '니체의 망치'였고, 흉터투성이인 내 모습을 온전히 껴안는 '보살의 자비'였던 셈입니다.
무엇보다 '하노이별'이라는 이름으로 이 부끄러운 고백들을 연재하는 동안, 저는 '결코 혼자 타는 수레는 없다'는 벅찬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화면 너머에서 각자의 질척이는 진흙탕을 묵묵히 견뎌내며 제 글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신 당신들 덕분에, 한 여자의 아주 개인적인 비극은 마침내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위대한 연대'로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나를 구원하려 시작했던 글쓰기가 당신에게 가닿아 작은 위로가 되었을 때, 저는 비로소 진정한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이제 치열했던 기록을 마친 저는 오랫동안 저를 가두었던 낡은 거실을 떠납니다. 텅 빈 방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드디어 15일간의 인도 순례길에 오를 참입니다.
라지기르(Rajgir)의 척박한 대지 위에서, 그리고 타지마할의 그 깊고도 아득한 고요 앞에서 저는 분명 또 다시 길을 잃고 땀 흘리며 비틀거릴 것입니다. 하지만 배낭을 멘 제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가볍습니다. 낯선 길 위에서 마주할 그 어떤 흔들림조차 이제는 눈부신 춤이 될 것임을, 이 글을 쓰는 동안 온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이 15편의 징글징글하고 뜨거운 기록을 이곳에 남겨둡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늪에서 갱년기의 열병이나 삶의 무게로 허우적대는 누군가에게, 이 서툴고 거친 기록이 작은 징검다리가 되기를 감히 바라봅니다.
저의 춤은 이제 인도의 붉은 흙먼지 속에서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니 노트북 화면을 닫는 지금 이 순간부터는, 부디 당신의 자리에서 당신만의 찬란한 춤을 시작하시기를 멀리서 맹렬하게 응원하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진흙탕을 걸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