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던 전화벨 소리가 수행의 도량이 되기까지
1. 일상을 깨는 전화벨, 그리고 조건반사적 두려움
도마 위에서 경건하게 대파를 썰던 손길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찌개 소리와 배를 까고 누운 고양이의 낮잠이 만들어내던 거실의 아늑하고도 평온한 정적을 날카롭게 찢으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에 뜬 '엄마'라는 두 글자를 확인하는 순간, 쿵 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숨이 턱 막혀왔다.
머릿속으로는 니체의 초인과 보살의 자비를 그토록 치열하게 되뇌었건만, 내 몸은 머리의 깨달음보다 훨씬 빠르고 비참하게 반응했다. 바짝 타들어 가는 입술, 경직되는 위장,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어깨. 쉰 살의 나이를 먹고도, 그 수많은 철학의 언어들로 무장하고서도, 어머니의 호출 앞에서는 어김없이 눈치를 보며 굽실거리던 '착한 딸'의 지독한 조건반사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나는 서둘러 수화기를 집어 드는 대신, 요란하게 울려대는 전화기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내면의 가장 깊고 어두운 지하실로 조용히 시선을 던졌다. 낡은 우상을 망치로 부수어냈던 그 폐허의 밑바닥에는, 여전히 버림받을까 봐 덜덜 떨며 주저앉아 울고 있는 '다섯 살의 꼬마'가 웅크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재와, 생존의 벼랑 끝에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젊은 어머니의 서슬 퍼런 분노. 그 숨 막히는 공포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모든 욕망을 거세하고 어머니의 눈치만 살펴야 했던 가여운 내 안의 아이. 저토록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는 어머니의 전화벨 소리는, 그 아이에게 있어서 언제나 목을 조여 오는 가장 무서운 포식자의 발자국 소리였다.
2. 지하실의 아이를 끌어안는 초인의 위로
그동안 나는 캄캄한 지하실에 웅크린 그 아이를 매몰차게 다그치고 외면해 왔다. 친정어머니가 내 가정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고 전남편에게 상처를 입힐 때조차, 중간에서 단단한 방패가 되어주지 못한 내 비겁함의 기원이 바로 저 겁먹은 꼬마에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의 통제에 속수무책으로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내 과거를 수치스러워하며, 연약한 내면의 아이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했다.
하지만 전화벨이 울리는 거실에 서서 가만히 내려다본 그 지하실의 풍경은 달랐다. 서른 살에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새끼를 굶기지 않으려 시뻘건 기름때와 숨 막히는 열기가 엉겨 붙은 식당 주방과 칼바람이 살을 에던 새벽 도매시장의 시린 바닥으로 돈을 벌러 나갔다. 어머니가 그 험한 세상의 진흙탕 속에서 고군분투할 동안, 텅 빈 방 안에 홀로 방치된 다섯 살의 나는 어둠이 깔리면 문고리만 바라보며 덜덜 떨었다. 생존의 벼랑 끝에서 날이 서 있던 어머니의 지독한 불안과 독기는, 밤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어머니의 한숨을 타고 고스란히 그 작은 아이의 내면으로 스며들었다.
행여나 이 캄캄한 세상에 버림받을까 봐, 아이는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울고 싶어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어머니의 그 서슬 퍼런 무게에 짓눌려 자신의 모든 욕망과 떼를 쓰는 아이의 본능마저 철저히 속으로 삼켜내야만 했다.
낡은 우상을 부수고 초인의 맑은 긍정과 보살의 웅장한 자비심을 품고 지하실로 내려간 지금, 내 눈에 비친 그 아이는 결코 비겁자가 아니었다. 그 지독한 고립과 방치의 공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어이 생을 부여잡았던 가장 눈물겹고 위대한 생존자였다.
나는 50대의 단단해진 품으로 그 다섯 살의 핏덩이를 가만히, 그리고 온전히 끌어안았다.
"무서웠지. 텅 빈 방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얼마나 떨었니. 넌 비겁했던 게 아니야. 그 캄캄한 시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싸움을 치러낸 거야. 징글징글하게 잘 버텨주어서 고마워. 이제는 내가 어른이 되었고 초인처럼 단단해졌으니, 더 이상 버림받을까 봐 엄마 눈치 보며 안전을 구걸하지 않아도 돼. 이제부터는 이 단단한 앞치마로, 내가 널 완벽하게 지켜줄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는 내 앞치마 자락을 생명줄처럼 꽉 틀어쥐었다. 그리고 한결 넓고 따뜻해진 내 품 안에서, 마침내 45년 동안 꾹꾹 눌러왔던 제 나이에 맞는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깊은 서러움이 온전히 멎을 때까지 아이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평생 내 영혼의 밑바닥에 들러붙어 나를 갉아먹고, 닫힌 방문 너머의 내 아이에게까지 독기를 품게 만들었던 지독한 '르상티망(원한 감정)'이 그 뜨거운 눈물과 함께 서서히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울음을 그친 아이가 비로소 평온하게 미소 지으며 내 안으로 따뜻하게 스며드는 순간. 내 삶을 유령처럼 떠돌던 근원적인 상처가 마침내 기적처럼 아물어가고 있었다.
3. 괴물에서 한 명의 여자로: 서른 살의 어머니를 마주하다
내 안의 다섯 살 아이가 마침내 서러운 울음을 그치고 편안히 내 품에 안기자, 오랫동안 가슴속을 짓누르던 원망과 두려움의 응어리가 씻은 듯이 녹아내렸다. 그제야 나는 여전히 거실 허공을 날카롭게 찢고 있는 전화기 액정으로 다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거실을 울려대는 저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 너머로, 마침내 내 시야를 가리던 오랜 장막이 거짓말처럼 걷혀나갔다. 평생 내 숨통을 조이고 내 삶의 통제권을 쥐고 흔들려했던 '절대 권력의 괴물' 같았던 어머니의 낡은 환영이 바스라진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환영이 걷힌 자리에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험악한 세상에 덩그러니 내동댕이쳐진 채 덜덜 떨고 있는 '가여운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청상과부가 새끼를 굶기지 않으려, 살을 에는 한겨울 새벽 도매시장을 누비며 자기 몸집보다 큰 짐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골목을 헤매야 했던 그 처절한 시간들. 꽁꽁 얼어붙어 쩍쩍 갈라진 손등으로 무거운 방문판매 가방을 멘 채 남의 집 문을 두드리며, 온갖 문전박대와 모멸감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그 비릿한 생존의 궤적. 어머니가 그토록 악착같이 돈에 집착하고 자식의 삶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 들었던 것은 결코 나를 괴롭히기 위한 악의가 아니었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폭력과 가난으로부터 자신과 핏덩이 같은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기를 쓰고 온몸에 둘러야만 했던 슬프고도 두꺼운 갑옷이었음을 비로소 뼈저리게 꿰뚫어 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보다 무려 스무 살이나 어린, 그 겁먹고 파리한 서른 살의 어머니를 쉰 살의 내가 시공간을 넘어 가만히 마주 본다. 내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연민을 품고, 나는 나를 할퀴었던 그 가여운 여자의 굽은 등을 향해 두 팔을 벌려 온전히 끌어안았다.
"얼마나 무서웠어. 이 거친 세상에 홀로 남겨져서, 새끼 입에 밥 넣어주려고 그 모진 수모를 다 견뎌냈구나. 당신의 그 지독했던 억척스러움 덕분에 내가 무사히 살아남아 이렇게 어른이 되었어. 참으로 고단한 운명이었지만, 기어이 버텨내 주어서 고마워. 정말 애썼어."
내 품에 안긴 서른 살의 젊은 어머니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그 독기 어린 얼굴을 허물고 짐승처럼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내 삶을 억압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나보다 훨씬 더 절박한 생존의 공포에 사로잡혀 평생을 허우적거린 상처 입은 맹수에 불과했다. 돈과 자식이라는 얄팍한 동아줄에 매달려, 늙고 쇠락해 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밧줄을 놓지 못해 안달하는 또 한 명의 가여운 중생.
그 서글픈 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그녀의 상처투성이 삶 전체를 웅장한 자비심으로 깊이 쓸어안는 순간, 내 뼛속 깊이 박혀있던 오랜 원망은 마침내 눈부신 연민의 파도가 되어 내 거실을 따뜻하게 적셨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어오르는 찌개의 하얀 김처럼, 오랜 세월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숨결들이 소리 없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4. 보살의 또 다른 무기, 서늘한 지혜의 칼(반야검)
어머니의 상처를 가슴 깊이 이해하고 눈물로 연민하게 되었다고 해서, 다시 예전처럼 어머니가 휘두르는 불안과 통제의 굴레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걸어 들어갈 수는 없다. 진정한 자비란 무조건 다독이고 져주는 맹목적인 순종이나, 나 자신을 갉아먹는 어설픈 희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왜 한 손에 날카로운 칼(반야검, 般若劍)을 쥐고 있는지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진짜 자비는 그저 둥글고 부드러운 위로에만 머물지 않는다. 때로는 나와 타인을 모두 불행의 늪으로 끌어당기는 이 지독한 의존과 집착의 낡은 거미줄을 단호하게 베어내는 서늘함. 그것이 바로 반야검이 가진 진짜 힘이다.
핏줄이라는 절대적인 이름으로 서로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고, 사랑과 헌신이라는 명분 아래 서로의 목을 조르는 이 기형적인 유착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내야만 한다. 내가 어머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기꺼이 꼭두각시가 되어 비위를 맞추는 한, 어머니 역시 영원히 자식이라는 좁은 우물에 갇혀 자신의 독립된 삶을 살아갈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린 탯줄을 베어내는 일은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죄책감이 드는 일일 테다. 하지만 이 서늘한 절단을 기꺼이 감내하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어머니와 내가 각자의 궤도를 도는 굳건하고 독립된 주권자로서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거실을 가득 채웠던 뜨거운 연민을 가슴 깊은 곳에 단단히 갈무리한다. 그리고 여전히 허공을 찢을 듯 울려대는 전화기 앞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내 영혼의 중심에 가장 서늘하고 예리한 지혜의 칼 한 자루를 벼려낸다.
5. 낡은 거미줄을 베고 주권자로서 수화기를 들다
발작하듯 울려대던 전화벨이 금방이라도 툭 끊어질 듯 위태로운 마지막 신호음을 뱉어낼 때, 예전 같으면 부재중 전화가 남길 후폭풍이 두려워 허겁지겁 손을 뻗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깊고 편안한 숨을 한 번 내쉬며 마침내 수화기를 집어 든다.
이제 이 전화를 받는 나는, 버림받을까 두려워 지하실 구석에서 굽실거리던 다섯 살의 꼬마가 아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집요한 간섭을 속으로 혐오하며 억지로 비위를 맞추던 비겁한 '착한 딸'도 아니다. 나는 생의 징글징글한 진흙탕을 뒹굴며 기어이 나 자신을 구원해 낸 쉰 살의 어른이다. 깊은 연민으로 초연하고 맑은 긍정으로 단단해진, 내 삶의 온전한 주권자. 그 이름으로 나는 지금 이 수화기를 쥐고 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도마질을 하던 거실의 평온함만큼이나 흔들림 없고 편안해진 목소리로 입을 뗀다.
"응, 엄마. 나야."
예상대로 수화기 너머에서는 전화를 늦게 받았다며 쏘아붙이는 날 선 책망과 함께, 내 삶의 구석구석을 기어이 당신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익숙한 넋두리가 와르르 쏟아졌다. 불쌍한 자신의 처지를 무기 삼아 은근슬쩍 내게 무거운 죄책감을 지우려는 그 오래된 패턴.
예전 같으면 주눅이 들어 허둥지둥 변명을 늘어놓거나, 가슴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삭이며 영혼 없는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어오르는 찌개의 불길을 낮추듯 고요히 호흡을 고르고, 내 영혼의 중심에 벼려두었던 서늘한 반야검을 마침내 빼어 들었다. 나는 낡은 죄책감을 강요하는 어머니의 말 앞에서 더 이상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 그건 내 삶의 방식이고 내가 알아서 감당할 몫이야. 엄마가 걱정하고 간섭할 문제 아니니까, 앞으로는 그런 말 하지 마."
과장된 분노나 짜증도, 그렇다고 두려움도 섞이지 않은 지극히 담담하고 서늘한 거절. 하지만 그것은 단숨에 '툭' 하고 가볍게 잘려 나가는 얄팍한 실타래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펄펄 끓는 불안을 내 혈관으로 고스란히 들이마시고, 딸의 무거운 죄책감을 자양분 삼아 서로의 목을 조르며 비대하게 자라난 50년의 세월을 직시하는 일이었다. 피와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내 영혼의 밑바닥까지 뿌리내려 뼈처럼 굳어버린 거대한 유착.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파먹으며 기형적으로 살을 찌워온 그 숨 막히던 탯줄의 무게. 나는 그 수십 년의 무게를 원망하며 짓눌리는 대신, 내 영혼의 중심에 벼려둔 보살의 반야검으로 묵직하게 그 한가운데를 베어냈다. 무리한 요구 앞에서 기어이 맑게 선을 긋는 순간, 평생 나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던 그 육중한 탯줄이 비로소 깊은 파열음을 내며 내 쪽에서부터 스르르 끊어져 나갔다.
6.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각자의 궤도를 향하여
전화기 너머의 어머니는 딸의 낯선 단호함에 잠시 당황한 듯 숨을 멈추더니, 이내 서운함을 토로하며 다시 낡은 한탄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날이 서 있으며, 끊어진 거미줄을 다시 던져 어떻게든 나를 당신의 통제 아래로 끌어당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스스로 거미줄을 베어낸 나의 내면은 이전과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늙은 어머니의 변함없는 태도를 대하는 나의 관점이 완전히 뒤바뀌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예전에는 내 숨통을 옥죄던 그 지독한 문제들이 더 이상 문제도, 괴로움도 되지 못한 것이다. 어머니의 뾰족한 잔소리와 끝없는 한탄은 이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나를 무심히 스쳐 지나갈 뿐이다.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두고도 나는 마침내 평온하고 초연하다. 웅장한 자비심으로 그녀의 늙은 불안을 조용히 다독이면서도, 무리한 요구 앞에서는 서늘한 반야검으로 단호하고 맑게 선을 긋는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나를 옭아매던 그 징글징글한 탯줄은, 내가 내 쪽의 매듭을 단호히 베어내는 순간 더 이상 나를 가두는 올가미가 되지 못했다. 어머니는 변함없이 내게 낡은 굴레를 씌우려 하지만, 바뀐 것은 오직 내 시선 하나뿐인데도 예전의 그 지독했던 문제들은 이제 내 삶의 평온을 털끝만큼도 흔들지 못하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쏟아지는 낡은 한탄을 조용히 흘려보내며, 나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진짜 인사를 건넨다.
엄마. 서른 살, 그 캄캄한 세상에 홀로 남겨졌던 가여운 나의 엄마.
아빠 없이 나를 굶기지 않으려, 쩍쩍 갈라진 손등으로 얼마나 춥고 무서운 시간을 버텨냈어. 나를 숨 막히게 했던 엄마의 그 지독한 집착이, 사실은 핏덩이 같은 나를 살리기 위해 기를 쓰고 둘러야 했던 슬픈 갑옷이었음을 이제야 온전히 알아.
엄마의 그 고단했던 삶 전체를, 그리고 그 아래서 내가 남몰래 삼켜야 했던 눈물까지도 이제는 쉰 살이 된 내 넉넉한 품으로 남김없이 다 안아줄게. 우리를 아프게 옭아맸던 매듭들도 억지로 끊어내는 대신, 미움 없이 내 손으로 가만히 다 풀어낼 거야.
엄마는 엄마의 궤도에서, 나는 나의 궤도에서 각자의 남은 생을 눈부시게 살아내자. 나를 낳아주고, 기어이 살려내 주어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