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 부르는 Amor Fati

내 아이의 캄캄한 심연을 기꺼이 긍정하다

by 하노이별

1. 일상의 정적 속에서, 초인과 보살의 첫 숨을 내쉬다

싱크대 위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발치에는 고양이가 조용히 다가와 부드러운 털을 비비며 나지막한 온기를 전해온다.


관념의 맑은 산을 내려와 마침내 두 발을 딛고 선 곳은 다름 아닌 나의 좁은 거실이었다. 흩어진 삶의 문제들은 더 이상 도망치고 싶은 아비규환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고 풀어내야 할 기꺼운 과제가 되어 있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이 진흙탕마저 긍정하려는 가볍고 경쾌한 긴장감만이 감돌았다.


머릿속을 유영하던 철학의 언어들이 이제 이 비릿한 일상의 문제들과 뒤섞여, 삶의 엉킨 매듭들을 실질적으로 녹여내는 뜨거운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할 시간이었다. 비록 나는 낡은 우상의 잿더미 위를 딛고 섰지만, 내 두 다리에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내게 주어진 이 징글징글한 운명을 피하지 않고 기어이 사랑해 내겠다는 초인의 야성과,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기 위해 기꺼이 진흙탕을 뒹굴겠다는 보살의 뜨거운 자비심. 그 위대한 두 거인의 숨결을 내 안으로 깊이 빌려와 거세게 박동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먼지 앉은 낡은 소파 앞, 내 삶의 가장 구체적인 무대 한가운데 서서 내가 마주해야 할 일상의 과제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의 시선이 가닿은 곳은, 굳게 닫혀 서늘한 냉기를 뿜어내는 아이의 방문이었다. 저 단절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억지로 문고리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저 문을 안에서부터 닫아걸게 만든 내 과거의 근원적인 독기부터 걷어내야만 했다. 그것이 초인과 보살의 지혜를 나침반 삼아, 이 진흙탕에서 내가 치러야 할 가장 뼈아픈 첫 번째 실전이었다.



2. 낡은 사슬을 끊는 의식(儀式), 내 안의 '피해자'를 죽이다

초인의 서늘한 시선으로 내 삶을 직시하고, 보살의 따뜻한 자비로 묵은 상처를 끌어안겠다고 다짐한 후 내디딘 첫걸음은, 아이의 연약한 세계에 최초의 균열을 냈던 나의 비겁한 과거를 청산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만 했다. 그동안 나는 굳게 닫힌 아이의 방문 앞에서 남몰래 세상과 운명을 원망했다. 억압적인 친정어머니의 간섭, 끝내 가정을 지켜주지 못했던 전남편, 그리고 그 불행의 한가운데서 홀로 버둥거렸던 '가여운 나'. 하지만 이 지독한 자기 연민과 원한(르상티망)을 베어내지 않고서는 결코 아이를 온전히 긍정할 수 없음을 나는 깨달았다. 아이의 절반은 결국 내가 그토록 원망했던 그의 존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실패를 저주하는 한, 나는 내 아이의 근원마저 저주하는 끔찍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두 영혼의 발자취를 따르겠다고 다짐했다고 해서, 내 안의 두려움이 단숨에 소거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끝이 떨리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 징글징글한 공포 속에서도 기어이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나는 니체가 말한 초인의 맹렬한 용기를 간절히 빌려와야 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의 묵은 상처마저 품어내기 위해,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응답하는 보살의 자비심을 내 안에 조용히 불렀다.


나는 차갑게 굳은 손가락으로 수년 만에 전남편의 번호를 하나씩 눌렀다. 통화 버튼 위에서 잠시 멈칫했던 나는, 길고 뜨거운 숨을 한 번 토해내며 내 안의 비겁했던 과거와 결별할 마지막 채비를 마쳤다.


이윽고 신호음이 연결되고,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새로운 가정에서 자라난 7살 아이의 천진난만한 소음이 흘러들어왔다. 과거의 나였다면 그 평화로운 일상의 소리에 심장이 베이고 자격지심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실 한복판에서 낡은 에고를 부수어낸 지금의 나는, 그 낯선 소란함 앞에서도 더 이상 흔들리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담담하지만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때 친정엄마가 우리 부부 사이에 선을 넘을 때 내가 중간에서 막아주지 못해서, 당신 참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거야. 우리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내 잘못이 커. 늦었지만 정말 미안해."


그것은 단순한 사과나 핑계 섞인 화해의 제스처가 아니었다. 낡고 비겁했던 내 과거를 온전히 직시하고 뼈아프게 도려내는, 가장 숭고한 참회(懺悔)였다. 수년 만에 걸려 온 전화, 그것도 너무나 차분하게 과거를 사과하는 나의 낯선 변화에 그는 몹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내 혹시 나와 아이의 신변에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물음이 다급하게 되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나의 단단한 대답에 그는 "새삼스럽게 뭘 이제와 그런 걸 다..."라며 머쓱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 짧고 뭉툭한 대답 속에서 나는 가만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용기 내어 내민 화해의 말에, 수화기 너머의 그 사람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곪아있던 내 안의 지난날의 상처도 비로소 조용히 아물어가고 있음을.


"우리의 상처투성이 과거가 있었음에도, 당신 덕분에 이 눈부신 아이가 내게 올 수 있었음에 진심으로 고맙다."


미련 한 점 없는 이 순도 높은 감사를 전하는 순간, 과거라는 진흙탕에 발이 묶여 있던 우리 두 사람의 시간은 마침내 치유의 방향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과거를 긍정하는 초인의 서늘한 용기와, 묵은 원망마저 녹여내는 보살의 따뜻한 자비가 내 안에서 비로소 첫 화음을 낸 것이다. 내 영혼을 옥죄던 '피해자'라는 낡은 핑계를 끊어내는 데는 그 짧은 통화 한 번이면 족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뒤돌아선 내 앞에는, 이제 핑계 댈 과거의 망령이 모두 걷힌 채 온 생애를 걸고 직면해야 할 진짜 구원의 무대, 굳게 닫힌 내 아이의 방문이 서늘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 방문 너머의 심연을 존중하다: 통제를 버리고 긍정을 택한 초인의 시선

과거의 나는 저 문을 부수고 아이를 기어이 '정상적인 세상'으로 끌어내려 안달했다. 남의 집 자식들이 대학에 가고, 연애를 하고, 직장을 잡아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내 아이만 이 캄캄한 방에 영원히 고립된 채 세상의 낙오자로 전락해 버릴까 봐 두려워 미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치로 낡은 에고를 부수고 난 지금, 내 안에는 불안 대신 깊고 평온한 심연에서 길어 올린 맑은 기운들이 차오르고 있다. 초인의 절대 긍정과 초연함, 보살의 따뜻함과 유연함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장착한 내 눈에 비친 저 닫힌 방문은 더 이상 양육 실패의 증거나 기구한 팔자의 상흔이 아니다. 부모의 이혼과 억압적인 환경에 치여 세상과 단절된 아이는, 지금 저 캄캄한 방 안에서 그저 무기력하게 썩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부서진 자신의 존엄을 다시 세우고, 세상의 폭력과 내면의 르상티망을 상대로 피 튀기는 전쟁을 치르며 자신만의 힘에의 의지를 벼려내고 있는 중이다.


그 고독하고 숭고한 투쟁에 내가 함부로 끼어드는 것은 참견을 넘어선 또 다른 폭력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알에서 깨어나려는 새의 껍질을 밖에서 억지로 부수면 생명을 잃게 되듯, 아이의 고통을 대신 끝내주려 했던 나의 조급함은 결국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얄팍한 오만이었을 뿐이다. 아이 스스로 진흙탕을 뒹굴며 단단해질 기회를,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번번이 빼앗으려 했던 것이다.


내가 이 문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결코 무책임한 방임이나 외면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의 내면에 스스로를 구원할 거대한 힘이 숨 쉬고 있음을 절대적으로 믿고 기다려주는, 가장 뼈아프고도 묵직한 신뢰의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 치열한 전장 앞에서, 나는 마침내 아이와 나 사이에 서늘하고도 건강한 거리를 두기로 결심했다. 아이를 내 삶의 위성처럼 여기며 끊임없이 나의 중력 안으로 끌어당기려 했던 오랜 통제욕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너와 나는 결코 한 몸이 될 수 없음을, 그 시린 진실을 이제는 뼈저리게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는 끈적한 핏줄로 얽힌 모자(母子)이기 이전에, 마침내 각자의 궤도를 돌며 스스로의 운명을 온전히 감당해 내야 할 독립된 주권자(主權者)들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독립된 주권자로 인정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닫힌 방문 앞을 서성이는 대신 내 몫의 진흙탕을 직시하는 것이었다. 나는 상처투성이의 내 과거와 엉망이 된 현재를 원망하는 대신, 이 지독한 폐허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끌어안기로 했다. 망가진 잔해들 위에서 기어이 위대한 삶을 새롭게 창조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니체가 내게 가르쳐준 초인의 진짜 얼굴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감히 그 위대한 영혼의 발자취를 따라, 나의 뼈아픈 실패마저 기꺼이 사랑하겠다는 이 맹렬한 운명애(Amor Fati)를 선언할 때, 내 안의 창조적 생명력은 비로소 폭발하기 시작했다.


내가 폐허 위에서 나 자신을 벼려내고 있듯, 주권자로서 홀로 서려는 아이 역시 저 캄캄한 은둔의 시간 속에서 위대한 창조를 해내고 있음을 나는 절대적으로 긍정한다. 저 척박한 방 안에서도 기어이 낡은 자신을 깨부수고 도약할 맹렬한 의지가 숨 쉬고 있음을 믿기에, 아이의 숭고한 통과의례를 초인에게서 빌려온 서늘한 이성으로 철저히 존중하기로 했다.



4. 무한한 기다림의 제단, 조건 없는 밥을 짓다

초인의 지혜를 빌려 아이와 서늘한 거리를 둔 그 텅 빈 자리에, 비로소 아이의 고통을 온전히 쓸어안으려는 보살의 다정하고 웅장한 자비심을 가만히 채워 넣는다. 과거의 나는 아이의 길고 무거운 침묵을 견디지 못해 불안에 떨며 날 선 잔소리를 쏟아내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닫힌 방문 앞에서 서둘러 답을 내놓으라 다그치지 않는다. 아이가 홀로 감내하고 있는 그 캄캄한 고통을 나의 아픔으로 깊이 공명하면서도, 억지로 문을 열어 껍질을 깨주려는 어설픈 동정은 거두었다.


대신 나는 상처 입은 어린 짐승이 스스로 상처를 핥고 일어나 기꺼이 밖으로 걸어 나올 때까지,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대지처럼 묵묵히 무한한 기다림의 자리를 내어주기로 했다. 어미의 조급한 통제욕을 내려놓은 내면은 비로소 깊고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해졌다. 그 어떤 불안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 속에서, 나는 매일 아침 어김없이 거실로 나와 경건하게 도마질을 하고 따뜻한 찌개를 끓여낸다.


이것은 대단한 철학의 실천이 아니다. 갱년기의 불쾌한 열기가 훅 치밀어 오를 때면 그것을 낡은 나를 태우고 벼려내는 용광로의 불꽃 삼고, 실직의 막막함이 목을 조여와도 결코 생을 원망하지 않으며, 이 치열한 삶의 무대에서 기어이 나만의 성실한 일상을 꾸려가는 일이다. 그 펄떡이는 경쾌한 칼질 소리와 뚝배기에서 끓어오르는 구수한 냄새가,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얇은 문틈으로 스며들어 홀로 지독한 겨울을 나고 있는 아이의 방 안을 아주 조금씩 데워주기를 바랄 뿐이다.


5. 굳게 닫힌 방문 곁에서, 오늘도 나는 대파를 썬다

아이가 언제든 그 지독한 내면의 전쟁을 끝내고 제 발로 걸어 나오는 날, 이곳에는 아이를 재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밥상이 차려져 있을 것이다. 과거의 상처에 속절없이 흔들리던 내가 초인과 보살의 지혜를 등에 업고 지난날의 폐허를 기꺼이 긍정하게 되었듯, 그리고 마침내 충만하고 다정한 온기를 품은 채 이 일상을 단단하게 꾸려나가고 있듯. 나는 내 아이 역시 그 캄캄한 폐허 위에서 기어이 스스로를 눈부시게 건져 올릴 것임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의 고통을 섣불리 대신 짊어지는 대신, 그가 고통과 맞서 싸우는 내내 조용히 보살의 마음을 흉내 내며 문밖을 지키는 단단한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우리는 지금 얇은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진흙탕 속에서 치열하게 깨어지고 부서지며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중이다. 거실에서는 뼈아픈 과거의 폐허를 딛고 초인의 발자취를 좇으려는 50대의 엄마가, 캄캄한 방 안에서는 세상의 폭력과 맞서며 자신만의 궤도를 벼려내는 고독한 투사가 기묘하고도 찬란한 공생을 이어가고 있다.


이 처절하면서도 눈부신 연대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는다. 거리를 두는 서늘한 절대 긍정과, 묵묵히 밥을 짓는 웅장한 자비심이 결국 저 닫힌 문을 안에서부터 열리게 할 가장 강력한 열쇠임을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단단히 닫힌 저 문고리가 돌아가고 아이가 마침내 밖으로 걸어 나올 때까지, 나는 섣부른 환상에 기대어 이 묵직한 기다림의 시간을 가볍게 건너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의 진흙탕을 묵묵히 밟아 다지며, 서늘한 긍정과 따뜻한 자비심을 단단한 앞치마처럼 두를 뿐이다.


그리고 굳게 닫힌 방문 너머의 고독한 투사에게, 가만히 마음의 편지를 띄운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치르고 있는 그 캄캄하고 숭고한 전쟁을 엄마는 온전히 존중한단다.

엄마가 낡은 과거를 깨고 거실 한복판에 다시 단단하게 섰듯,

너 역시 기어이 너만의 궤도를 찾아내어 그 문을 열고 나올 거라 굳게 믿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언제든 방문을 여는 날,

밖에는 따뜻한 찌개가 끓고 있을 거야.


낡은 도마를 꺼내고 칼 손잡이를 고쳐 쥔다. 오늘도 나는 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 경건하고 성실하게 대파를 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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