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양의 주식이 육고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처음으로 먹은 육고기는 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육고기는 바로 돼지고기 라고 합니다.
최근 만 년 전 아시아 대륙에서 인류최초의 도구, 돌칼이
발굴되었고, 그 옆에는 돼지의 뼛조각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돌칼은 사냥 목적의 돌칼이 아니라,
그것의 형태상, 죽은 돼지를 나누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돌칼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그것에 담긴 철학은 무엇일까요?
-돌칼의 목적과 동기는 다분히 철학적입니다.
"분배"라는 인간만의 특징입니다.
공평하게 그 돼지고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 년 전부터 지금껏 "분배"는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입니다.
모든 이념, 제도, 체제, 이데아도 결국
"분배"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돌칼이라는 "기술" 이 쓰였습니다.
돌을 깨뜨려 뽀죡하게 만든 "기술".
그리고,
그것에는 돌의 관찰과 원리라는 "과학"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과학은 일본의 번역어입니다..
Science 사이언스의 접두어 sci-
그 뜻이 분리하다. 파고들다는 뜻입니다.
(Sci- 의 대표적 단어가 가위 sci-ssors시저 )
그리고 라틴어의 scire 가 그 어원입니다.
그 뜻도 역시 나누다 자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그런 science 번역을 위해,
과 科 자를 사용 하였습니다.
일본어에서 과科짜는
분류. 나누기. 구분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은 한그루. 두 그루 할 때 혹은 농산품을
계산할 때 쓰인 한자입니다.)
실제로, 한자뜻 그대로를 인식하는 중국인들은
"너 말하는 게 과학적이다."
라고 할 때가 있는데, 어떤 현상들을 나누어 설명하면 저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이처럼 돌이라는 것을
-모서리,
-가장자리,
-끄트머리로 나누어 관찰하고 인식하는 것.
이것이 "과학"이며,
그것을 "날"이라는 새로운 기능으로 만드는 것이
"기술"입니다.
하지만, 죽은 돼지고기와 배고픈 우리가 없었음,
-철학도
-과학도
-기술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에는
우리 인간이 다 같이 살기 위해 몸부림친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철학도 과학도 기술도 아닌,
우리 인간의 정체성, 그 자체이지 않을까요?
죽은 돼지고기로 시작되어,
눈부신 과학. 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학기술로 이룬 우리의 문명을 자부 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과연 우리 인간의 정체성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을까요?
가까운 예로,
그 뛰어난 과학 기술로 수명을 이처럼 길게 늘려 놓고,
인간의 정체성 이 없어진다면
우리 인간은 오래 사는 어떤, 무엇이 될까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미래의 우리 인간은 분명히 다른 종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나눔"은 선이나 윤리이전에
우리 인간 그 자체가 아닐까요?
만년전 돌칼이 묵묵히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