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말라는 의미
공지를 발견했다.
예술인복지재단 긴급생계자금대출.
무려 500만원까지 대출이 된단다.
그 무렵 퇴직금도 사업자금으로 모아놓았던 돈도
언니로부터 빌렸던 돈도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던 상황이었고
수입은 적은 데다 그것도 일정치가 않아 마음이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야 할 날짜는 어김없이 다가와서
내 목을 죄고 있었고
문자 알림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곤 하던 날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나의 딸을 제대로 보살피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매일 괴로웠던 날들이었다.
(물론 보살핌에 있어 ‘돈’이 전부가 아니지만 ‘돈’은 절대 무시하지 못하는 조건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술인복지재단의 긴급생계대출 공지는
목마른 자에게 달콤하고도 시원한 물 한 잔처럼 느껴졌다.
다만
필요한 서류는 내가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었지만
추천서류라는 것은 내가 할 수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추천서류라는 것은
대출을 받으려는 자에게 이 대출이 진짜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인 2명으로부터 확인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구차한 설명과 설명(보증이 아니라는)이 이어진 끝에
2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그 서류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얼마나 가난한지에 대한 증명을 나 스스로 하게 하는 그 잔인함과
그렇게까지 가난해지도록 멍청하게 방관했던 나에 대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서명을 받을 때 느꼈던 모멸감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아직 배가 덜 고팠던 듯도 싶다.
자식을 키우고 먹이고 사는 일에
모멸감이니 자존심이니 그따위는 모두 사치라는 걸 몰랐으니 말이다.
향후 이어질 고생 퍼레이드를 그때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신이란 참 관대하기도 하다.
한꺼번에 닥친 불가항력적 불행이었다면 발버둥도 치지 않았겠지.
그나마 조금씩 야금야금 경험하게 하여 희망이라는 발버둥으로 살아 있게 하시니 말이다.
심사가 이루어지는 열흘은 길었다.
승인이 났다는 문자가 왔다.
대출승인액 300만 원.
신청했던 자료의 원본을 가지고 하나은행에 접수하란다.
문자를 보자마자 드는 양가적 감정.
300만 원이라도 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감정
이깟 300만원을 받으려고 그렇게 구차했던 나의 처지에 대한 분노
그러나 나는 꾸역꾸역 서류를 챙기고 있었다.
그 삼백만 원은 내게 너무 큰돈이기 때문이었다.
은행 직원은 아주 친절했다.
너무 친절해서 그에 걸맞게 나도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서류가 접수되었고 은행을 나오면서 로또를 한 장 샀다.(물론 꽝이었다)
그로부터 이 주일이 지나고 계좌에 삼백만 원이 입금되었다.
그때의 치욕이 생각나지 않을 황홀한 금융치료였다.
앞으로 갚아나가야 할 빚이 또 생겼지만 그날만큼은 두둑한 기분이 들었다.
말 그대로 긴급생계자금대출, 죽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글을 업로드하고 두어 시간 뒤에 갑자기 생각났다.
이 글에서 빠졌던 이야기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던가 하는
뭔가 꼰대스런 변명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
자신에게 상처 주는 말
하지 말자.
우리는 매 순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게 가끔 박자가 맞지 않을 뿐.
그러니 제발 나부터 행복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