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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Jun 20. 2022

의식의 등장 (3)

사람의 모순

물론 의식과 같은 사람의 특수한 본성이 우리를 다른 동물들과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지 못한다. 또 의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직 모른다. 여기서는 과연 다른 동물에게도 의식이 있는가를 탐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람 본성의 핵심에 대해 정말로 완전한 지식을 획득하였다고 가정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의 관심사는 사람의 고통이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지녔는지, 그리고 의식은 어떻게 세계를 구성하고 해체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 사람에 관하여 알려진 원초적 사실들은 바로 저 관심사를 탐구할 것을 요청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인지혁명으로 탄생한 의식은 과연 사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람이 언제나 의식적이라면, 그리고 사람이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현실에는 결코 오늘날 마주하는 세계 따윈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각자에게 생겨난 의식을 활용해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에서만 살아갈 뿐 다른 어떤 허구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어떤 이야기도 세계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가정해볼 수 있다. 세계를 구성한 의식은 더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식이 생물학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를 제한 없이 확장하게 된 순간부터 사람들은 세계에 구속되었다. 이는 어쩌면 또 다른 운명을 예견하는 것이다. 내면의 갈등 뿐 아니라 세계와의 갈등도 피할 수 없다는 운명 말이다.


이 같은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먼저 시선을 돌려야 할 곳이 있다. 그것은 최근 일어난 의문에 대한 허구적 세계의 압도적인 우위다. 이제는 지구적으로 확장한 세계에서 현실의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거주할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허구적 세계가 구조적으로 복잡해질수록 사람은 여기서 벗어나거나 다른 세계를 만들 가능성을 상실한다. 


근현대에 생겨난 세계는 아직까지 강고한 지위를 유지 중이며, 그래서 다른 세계로의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세계가 언젠가 무너질지, 아니면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새로운 세계로 탈바꿈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우리가 이 시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세계의 변화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이다. 어느 시대보다 강력한 힘을 보유하게 된, 수많은 대답으로 이루어진 허구적인 근현대 세계가 지닌 설계상의 특징이나 증식의 원리를 면밀히 밝혀냈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세계의 재구성이나 재창조에 관여할 힘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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