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이 시는 시인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연상의 여인을 생각하며 쓴 것이라고 알려졌다.
1997학년도 수능 언어영역에 출제되었다.
~불러 보리라, ~믿는다, ~생각하는 것뿐이다
화자의 의지(정서)가 표현된 시구이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 사소한 일일 것이나
~일 것이나는 화자의 추측이다.
화자가 자신의 사랑을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그대가 화자의 사랑을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화자가 추측했다고 독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화자는 진실로 진실로 그대를 사랑하므로
화자에게는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사소한 일일 것이나 = 그대에게는 사소한 일이겠지만
이라고 독해할 수 있다.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오랫동안, 아직까지 화자는 그대를 부르지 않았다.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언젠가 그대에게 누군가의 사랑이,
나의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에
그대를 부르겠다고,
나의 사랑을 고백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다시 말해,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다.
이별하지도 않았다.
화자 혼자서 사랑하는,
그대를 불러 보지도 않은,
즉,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않은 상황에서 쓴 시라고 독해할 수 있다.
사랑을 아직, 고백하지 않았지만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의 사랑 = 그 사소함 = 그 기다림이다.
그런데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은
영원히 계속되는 기다림이 아니다.
언제 어디쯤에서 그칠지 알 수 없지만,
그 기다림의 끝은 알 수 없지만
밤이 들면서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한 눈이 그치듯이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알고 있다.
즉, 반드시 끝이 있지만,
끝을 알 수 없는, 끝 모를, 끝없는,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이다.
그래서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내 기다림이 언젠가 그칠 그때,
기다림의 자세, 마음가짐이 어떨지를 상상하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화자의 기다림은 변치 않는 기다림이 아니라
눈이 퍼붓고 그치고, 꽃이 피고 지고, 나뭇잎이 떨어지듯이
변하다가, 언젠가는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치기 때문이다.
화자의 기다림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백하고 기다림을 끝내고 서로 사랑하게 될까,
고백했지만 거절당할까,
거절당하고 또 고백할까,
끝내 고백 못하고 기다림이 끝날까,
누구도 알 수 없다,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이기 때문에.
그대에게 즐거운 편지를 부쳤을까?
사랑도,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고,
다만 그때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할 뿐이므로
아마, 부치지 않았을 것이다.
화자의 정서를 중심으로 시구를 뜯어 모아 엮어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나의 사랑으로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라고, 중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수많은 이들이 갈망하지만, 이 세상에 없는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다가,
언젠가는 그치는 사랑을 이야기했다고
독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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