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이 시는 2009학년도 수능에 출제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구를 뜯어 모아 엮어 보자.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님과의 날카로운 첫 키스는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았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는 맹서를 했지만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했지만
사랑하는 나의 님은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드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돌지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한용운 시인이
승려라는 이유로 부처 또는 깨달음이라고,
독해하기도 하는데
나의 님은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이처럼,
승려에게
부처 또는 깨달음은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존재가 아니다.
승려 자신이 부처를 떠날 수는 있지만
부처가 승려를 차마 떨치고 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깨달음 또한
만나고(깨닫고) 사랑하고 이별하고(깨달음이 깨지고)
다시 만날(깨달음을 얻을) 것을 믿고,
그럴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나의 님
이 시구만 잘라내어서
한용운 시인의 삶을 바탕으로
부처 또는 깨달음이라고 독해하기도 하지만
시의 전체 맥락을 바탕으로 독해하면
부처 또는 깨달음이라고 독해할 수 없다.
사랑하는 나의 님을
시인의 삶과 관계없이
시의 맥락을 근거로 독해하고
독자의 경험과 시를 연결하고
독자의 삶을 성찰하는 것은
독자의 권리다.
시인이, 화자가 사랑하는 님이 누구냐보다
이 시를 읽고 독자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존재가
독자에게는 소중하다.
님은 떨치고 갔지만, 사라졌지만
지금 이곳에 안 계시므로, 부재하므로
나에게 말을 할 수 없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여전히 그대로,
내 마음 속에는
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는 마음으로 님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님의 부재가 아니라
님의 침묵이라고,
님이 침묵하고 계시다고
표현하였다.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져
이별의 슬픔을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붓는 것이며,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는 것이며,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는 것이다.
님은 차마 떨치고 사라졌지만,
화자는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행위를 중심으로 시어를
뜯어 모아 엮어
라고, 시의 중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한용운 #님의 침묵 #부처 #조국 #깨달음 #광복 #슬픔 #희망 #정수박이 #눈물 #2009학년도 #수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