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논쟁의 뿌리가 궁금하다면

장미의 이름(상) - 움베르트 에코

by 어제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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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역사 서적을 뒤적거리기는 부담스럽지만 기독교의 오래 묵은 이단 논쟁이나 교리에 대한 해석 차이로 인한 교권의 분열의 역사를 가볍게 이야기로 알아보고 싶다면 이만한 책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장미의 이름에 대해 들은 말은 '앞부분의 지루함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지루한 부분이 중세 기독교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 서술에 다름 아니었다. 주석으로 달린 글을 읽다 보니 이게 단순히 가상의 중세 수도원 이야기가 아니라, 철저하게 고증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픽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의 배경을 알고 책을 읽으면 훨씬 더 수도원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리고 이 배경은 우리는 챗GPT라는 친절한 친구에게 물어보기만 하면 되고 말이다.

'베네딕트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차이'라고 입력만 해도 6세기에 등장한 베네딕트 수도회(소설의 수도원이 베네딕트 수도회임)는 안정된 수도원 공동체 안에서 규칙적인 기도, 전례, 노동, 학문을 중시하고, 13세기에 등장한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청빈·유랑 설교·가난한 자와 함께 사는 삶을 강조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탄압하던 요한 22세가 독일 황제인 루트비히와 충돌하면서 루트비히와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이엔 적의 적이 친구가 되는 동맹이 형성되지만, 이들의 느슨한 결합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요한 22세가 이 싸움의 승자가 되었다는 결말.

사도형제단을 이끌던 돌치노는 14세기 초 북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동료였던 마르게리타는 귀족 여성이었고, 단테의 신곡에서 돌치노는 부정적으로 묘사되었는데 장미의 이름에서는 청빈, 평등을 외치며 권력에 맞선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GPT와 함께 읽어나가니 앞부분이 지루하기는커녕 정말 꿀잼이었다. 소설에서 언급되는 과거 인물이나 사건은 거의 실재한 사실들이었다.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지만, 실존했던 인물들과 그들의 행적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입장이 다르고 저마다 해석이 다른데 수도원의 차이, 성경의 해석 차이, 재산의 소유에 대한 생각 차이, 웃음을 죄악으로 보느냐 해학으로 보느냐의 차이로 인해 대립하고, 절대 자기 생각을 바꾸거나 굽힐 마음이 없다. 움베르트 에코는 등장 수도원장이나 교황 요한22세를 통해 재산을 축척하면서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라는 주장이 얼마나 추해 보이는지 보여주고, 웃음조차 죄악이라 일컫는 자기 세계에 갇혀버린 자를 보여주고, 조심스럽게 민중운동과 청빈한 삶을 지지한다.


논쟁과 분열은 21세기의 한국에도 유사하게 존재하고 있고, 지구 어딘가에는 아직도 종교로 인해 싸우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천 년이 지나도 왜 같은 짓을 하고 있을까. 인간의 반복되는 어리석음을 확인하는 것만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아마 어리석은 당사자들은 자기들이 천 년 전의 인간들이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챗바퀴처럼 되풀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도나투스파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체의 집행자를 두고 논쟁한 건 '인간'의 논쟁일 뿐, 신이 가타부타 한 적이 없는 사소한 문제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일로 인해 타인의 목숨을 빼앗고, 교회를 습격하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누가복음과 고린도전서에는 예수가 빵과 잔을 주며 기념하라고 했으나, 마태 마가복음에는 기념하라는 언급이 없고, 요한복음은 아예 성찬이야기는 없고 발씻김을 기록했다. 각 복음서마다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말해 주는 바는, 신의 말을 받아적는 인간은 얼마든지 다르게 적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인간이 묶어낸 성경을 의심도 없이 받아들인다는 게 합리적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일부 기독교인에게는 신성 모독으로만 보이겠지만, 14세기의 기독교인들은 호화롭게 먹는 것조차 죄악시 여기고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것도 악마가 들렸다고 했는데, 그 기준대로면 21세기의 신부님, 목사님, 신도들은 다 화형감이라는 사실.

심지어 동시대인이라도 호르헤와 윌리엄이 보는 하나님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객관적으로 동일한 신을 믿으려 애를 쓰지만, 실상은 같은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같은 교재로 배워도 이토록 주관적인 차이가 큰 신을 믿고 만다는 것을 작가는 은근히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직 읽는 중






이렇듯 이단은 종교 이념 논쟁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네 이념을 지키는 종교 재판의 조사관이 되라고 부추김으로써 기독교인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당시 나는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망하면서, 종교 재판의 조사관들이 이단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거야말로 악마가 고안한 악순환이 아니고 무엇인가? - 78


그러니까 그는, 시력을 잃은 지 많은 세월이 흘렀을 터인데도 스스로 사악하다고 통탄한 그 형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형상을 그리도 열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미루어, 한때는 그 자신도 거기에 들려있었던 것은 아닐까 궁금했다.

(...) 진리의 증언에 열중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악마가 어떻게 인간에 접근하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호르헤의 말을 듣고 나니 문득,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회랑의 호랑이와 원숭이의 부조를 보고 싶었다. - 118


진정한 배움이란,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할 수 있었던 것,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138


관례상 수도원에는 찰중 수도사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 역시 그날 새벽에 요사와 순례자 숙사 사이로 종을 울리고 다니는 수도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한 수도사가 독실 사이를 다니며 주님을 찬양할지라를 외치고 다니면 그 소리를 들은 수도사들이 일제히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하면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 만일 한번 깨워 놓은 수도사가 다시 수마에 굴복하고 말면, 그는 그 벌로 번을 돌아야 했다. 142


근자에 들어 설교자는 대중의 공포를 유발하고 이로써 신앙심과 믿음에의 열의를 부추기고, 인간의 법과 하느님의 법을 공히 준봉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답시고 공공연히 극언은 물론 끔찍한 위협까지도 망설이지 않고 있다. -162


권력에 저항하는 자들은 대개 돈과 인연이 별로 없는 법이다. 따라서 가난한 자에 대한 선동이 상당한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것 또한 당연지사다. 그래서 모든 도시에서 주교나 시장 같은 권력자들은, 가난에 대해 너무 깊은 문제를 건드리며 설교하는 사제를 자기 적으로 보는 법이다. 173


도나투스파 : 4~5세기 즈음에 기승을 부리던 북아프리카 기독교 교회 분리주의자들. 성찬의 유효성은 그것을 집행하는 인물이 훌륭한지 하찮은지에 따라 달라진다 주장.


하느님을 경외하되, 성물을 통한 외적인 모양새를 통해서도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지상의 허무, 혹은 재물에 대한 욕심을 통해서가 아니고 귀한 것에 대한 순수한 사랑, 신이 불러일으킨 것을 통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194-5 (수도원장)


나는 지금 교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는, 이러한 이단적인 교파들이 무식한 민중의 계층에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성공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들이 무식한 사람들에게, 기왕에 살아온 것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사람들일수록 파타리니파, 카타리파, 엄격주의파를 혼동할 수 있습니다. 원장, 무식한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들의 분별력이나 학식을 그리 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질병과 가난, 무지로 인한 눌언과 더불어 삽니다. 그래서 그들 중 상당수에게는 이단자의 동아리에 끼는 것이 그들의 절망을 외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어내야하는 것은 , 이 땅에 이미 지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저질러진다는 점입니다. - 206


살바토레야 말로 투렌의 절름발이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전설에 따르면 투렌이 절름발이들은 마르티누스 성인의 은총을 몹시 두려워 했다고 하는데 그 까닭은 마르티누스 성인의 은총이 미치면 다리가 온전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는 다리가 수입원인데 다리가 온전해지면 그만 수입원이 온데간데없어지기 때문이란다.

(...) 소형제회의 도반 수도사들은, 가까운 교회의 수사 신부가 공금 횡령과 성직 모독의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자의 집을 습격, 당사자를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인 다음 그 집을 노략질한다. 당시 이들에게는 규범도 계율도 없었다. 256-258


왜 유대인들을 죽인 겁니까?

내가 살바토레에게 물었다.

왜 안된다는 것인가?

살바토레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되물었다.

살바토레의 말에 따르면, 평생을 그는 설교자들에게서 유대인들은 기독교인의 숙적이고, 그들의 재물은 가난한 기독교인들로부터 긁어 들인 것이라는 이야기만을 들어왔다고 했다. 나는 살바토레에게 영주와 주교들 역시 세수와 십일조로 재산을 늘리는데 재산을 늘린다고 해서 유독 유대인만 공격하는 것은 적을 제대로 짚어 내지 못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내 말에 살바토레는, 마땅히 쳐부숴야 할 적은 영주와 주교일 것이나 그 적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좀 약한 적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방의 토호나 영주들은 이 파스투로로부터 제 재산이 유린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나머지 슬며시 이 무리의 지도자에게, 공격하여야 마땅한 부자는 오직 유대인 부자뿐이라는 생각을 주입했던 것이다. 비록 무리가 오합지중이었다고는 하나 그 지도자는 수도원이나 교구 부속 학교에서 공부한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천한 농민이나 목동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번역해주기야 했겠지만 그들 자신은 토호나 영주의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무리에게 유대인이 손쉬운 상대였던 것은, 교황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유대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59


-네가 도덕의 개혁가가 되어 사람들을 산정에다 모으고 청빈한 삶을 실천한다고 가정하자.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이 너를 선지자, 혹은 새로운 사도로 떠받들고 너를 추종할 것이다. 이때 이 사람들이 정말 너를 따르고자, 네 이야기를 듣기 위해 왔겠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저를 위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선조로부터 다른 개혁자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선조들로부터 완전한 사회에 관한 전설을 들었기 때문에 네가 세우려는 사회를 그런 사회롤 믿고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개혁 운동은 다른 개혁 운동을 계승한 것이라는 뜻입니까?

-그렇다. 개혁자를 따르는 무리의 대부분은 범용한 평신도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교리를 구분할 안목이 없다. 하지만 도덕의 개혁 운동이라는 것은 늘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서로 다른 교리에서 시작된다. -268


이단 심문관들은 서로 모순되는 각 이단 종파의 교리를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 한 이단 종파에 덮어씌우는 실수를 곧잘 하는 게다. 어쩌면 이것이 실수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돌치노파가 득세했을 당시, 여기에 소형제파와 발도파의 가르침을 따르던 무리가 섞여 있었던 것으로 확신한다.단순한 평신도들은 개인적으로 이단을 선택하지 못하는 법이다. -269


이단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평신도들이 가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평신도라는 조건이 선행하고 이 조건에서 이단이 생긴다. 버림받은 문둥이는 모든 것을 저희들의 폐허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그들은 버림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사악해진다. 그래서 성 프란체스코께서는 일찍이 이것을 아시고 먼저 그들에게로 가시어 그들과 더불어 살기로 하신 것이다. 버림받은 자가 다른 이들과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변용할 수 있는 것이다. 270-271


보나벤투라는, 현능한 수도자는 반드시 평신도의 행위에 내재된 진리로써 개념적 명료성을 확장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신학상의 결정으로 변형되어 드러나도 정의해 놓고 보면 이 진리는 늘 강자에게 이용당하는 진리가 되고 만다. 청빈은 청빈한 탁발 수도사에게 보다는 루트비히 황제에게 더 유용한 진리가 되어 버린다는 말이다.


각 교파의 주장을 구분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니라. 선악을 구분하는 경계는 그리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라르도 세가렐리는 우리 소형제회 교단에 들기를 바랐지만 우리 형제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298. 우베르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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