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한강
8~9년 전쯤 미술 수업을 하며 알게 된 언니가 있었다. 역사책을 참 많이 읽고, 시대의식도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 무렵, 작은 일이긴 했지만, 어떤 범죄의 진실을 알리고 오히려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재판 중이던 나는, 언니의 그런 정의감이 좋았다. 남들이 힘들어 꺼리는 일도 도맡아 해내는 그녀의 행동력이 부러웠다. 언니와 같은 사람은 내가 겪은 일을 겪게 되면 나보다 더 분개하고 참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언니는 의외로,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물론 화는 나고 그게 옳지 못하다는 것도 알지. 하지만 나나 우리 가족, 내 아들이 이런 일을 겪는다면 싸우지 말고 당장 포기하라고 했을 거야. 만약 데모를 해야 하는 시대에 태어나 학생운동을 하겠다 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을 안 보내는 한이 있어도 말렸을걸." 하고 말했다.
언니는 내 부모님이 '그깟 벌금 몇 십만 원, 우리가 내줄 테니 머리 아픈 소송 같은 거 하지 말아라, 그냥 잘못했다고 빌어라.' 한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무척 실망했다. 그녀의 지식과 평소의 숭고함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껍질일 뿐, 그녀의 내면은 공허한 이기심뿐이라고.
그 이후, 나는 4년이란 시간을 내 무죄를 입증하고, 상대의 유죄 일부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내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그자는 법정에서 거짓말을 태연스럽게 했다. 들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진실을 밝혀줄 증인들이 있었고, 녹취록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사기, 살인, 강도, 성폭행 같은 끔찍한 범죄로 법정에서 다투고 있으니 내가 다툰 일은 티끌과도 같은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괴로움은 주관적인 것이라, 사건의 경중이 있더라도 각자에게는 자기 자신의 아픔이 가장 큰 법이다. 타인의 불행에 냉정해서가 아니라, 내 삶의 괴로움을 낫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시간과 돈을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소비해야 했고, 법정에, 경찰 앞에, 검찰 앞에, 피고로 혹은 원고로 서는 치욕스러움을 모두 감당하고 참으로 보잘것없는 승리의 판결문 한 장을 손에 쥐었다.
그 4년 동안 어린이였던 내 자식들은 지독한 사춘기 우울증을 앓는 청소년이 되거나, 재수생이 되었다.
줄곧 내가 한 일이 옳았다고 믿었지만, 옳아도 현명한 것은 아니었던 걸까.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희생하면서, 진실의 전부도 아닌 작은 조각만을 승리의 징표로 받았나. 그는 지은 죄의 1/10도 처벌받지 않았다. 징역형이 나올 수도 있었던 범죄들은 우리가 막아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거나 결정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고, 모호하다 싶은 부분은 그자가 모조리 부인하며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는 위증과 선거 업무 방해로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 일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엄마는, "너를 위해 그러는 거야. 그만두자. 김 서방 생각 안 하니, 애들은 어떡하고." 라며 나를 타일렀다.
아버지도 비슷하게 말씀하셨다. "설령 네가 정당하고 올바른 일을 했고, 상대방이 무고를 했다 하더라도 사과하면 취하해 준다지 않느냐. 왜 먼길을 돌아가려고 하니. 자존심을 굽히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이게 현명할 수도 있다."
내게 양심과 도덕, 정의에 대해 가르쳐 주셨던 부모님이었기에,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나한테 그러라고 말해요?" 나는 엄마에게 원망을 쏟아냈지만 결국엔 그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는 것을 나도 인정해야만 했다. 아마 그도 그걸 노리고 이 사태를 계획했겠지.
며칠을 고민하다 그 사람에게 연락해서 '당신이 한 짓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서 창피당하고 상처받은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미안함을 느끼며 사과드린다.'라고 했다. 그 사람은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장이었고, 배임죄를 저지르려다 나를 비롯해 입주민 여러 사람이 그 사실을 입주민 홈페이지에 알리면서 입찰이 모두 엎어지고 회장자리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그는 검사출신의 변호사에게, 듣기로는 돈을 꽤 써서 자기는 그런 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서 자기 명예를 떨어뜨렸다며 적반하장의 고소장을 작성해 달라고 하였다. 사과를 하면 취하해 주겠다는 말에, 같이 소송을 당했던 몇몇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한참 전에 사과를 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러지 말자고 말렸지만,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소송 취하를 받지 못한 사람은 나 혼자 남아 있었다.
내 사과를 듣고, 이 자는 "그걸로는 충분치 않지요. '허위 사실을 올려서 죄송합니다'라고 각 동 엘리베이터에 사과문을 모두 게시하면 사과한 걸로 인정하겠다만은." 라고 했다.
"제가 쓴 글에 허위 사실이 어디 있나요? 당신이 제일 잘 알텐데요. 나는 모두 사실만 썼습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이 말 외에 뭐라고 했었어야 할까?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사과를 할 수는 없었다.
내 말을 듣고 몇 초간 가만히 있던 그는,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취하를 못해주지."라고 했다. 실제로 그 이후 그 사람은 자기 인맥을 동원해서 내가 처벌받도록 전방위적인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4년의 다툼 끝에 나는 겨우 그의 죄의 일부를 밝혔고, 내 무죄를 입증했다.
나는 옳았다.그러나 정의에 대해서는 옳았으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희생해야 될 것들을 간과했다. 그래서 한편으로 나는 틀렸다.
정의롭게 살라고 가르쳐놓고, 어떻게 이제와서 자기 자식에게 비겁해지라고 할 수 있냐고 엄마에게 분개하던 나는, 성큼 자란 내 아이들이 나처럼 부나방같이 뛰어들까 봐, 옳음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더란 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심정으로 엄마가 내게 치욕을 권했는지 모든 일들이 다 끝이 나고, 그 파편들이 우리 가정에 흩뿌려진 걸 보고서야 비로소 이해한 것이다.
물론 그 때의 나는 거기서 더 숙일 수는 없었다. 뇌물 청탁, 입찰비리, 갑질 모두가 사실이었으니, 허위로 올린 글은 하나도 없었다. 또, 내가 법적인 다툼을 이어가지 않았더라도 내 아이들은 사춘기를 겪고, 입시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죄책감의 이유를 찾은 것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로지 하나의 길만이 존재하는 줄만 알았던 것은 착각이었고, 물러설 수 없는 시점에도 선택의 문은 열려 있었다. 길을 다 지나고 온 뒤에야 다른 길들이 보였다.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시청에 남으려 한 어린 동호의 마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깨끗한 양심이었는지 나는 안다. 하지만 막둥이를 찾으러 계엄령이 떨어진 어둑어둑한 저녁에 시청까지 40분을 걸어가서 '제발 우리 아들 좀 만나게 해 주소.' 애걸하던 동호 어머니의 마음도 안다. 명예롭게 죽는 것보다 치욕스럽게 살아남기를 바라는 그 마음도 사랑이라는 것을.
그날의 광주에 창문을 걸어 잠그고 숨죽이던 광주 시민도, 아들을 숨기던 아버지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거짓 자백을 한 죄책감을 감당해야만 했던 사람들도 모두가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이름 없는 꽃이 되어 잠시 피었다가 스러진 그 숭고한 목숨 덕분에 지금의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고, 부마항쟁과 4.19와 5.18을 잊지 않는 목소리들 덕분에 우리 민족의 양심이 굳으려 할 때마다 한 번 더 멈칫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이가, 연인이, 친구가 살아남기를, 제발 죽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감하게 되면, 어떤 형태의 폭력도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상대에게 겨누는 칼의 반대쪽은,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폭력과 증오이기 때문이다. 폭력과 희생 없이 얻을 수 없었던 오늘의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미래는 부디 과거와 같은 증오나 아픔이 없기를 바라기에, 작가는 이토록 적나라하게 폭력의 면면을 드러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