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이 세상에는 댄처럼 실제로 이루고 나면 싫어하게 될 꿈을 꾸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한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자신의 망상 속으로 타인을 밀어 넣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 113
순수한 자연 안에서는 고독이 다른 성격을 띤다. 고독 안에서 자체적으로 연결이 이뤄진다. 그녀와 세상이 연결되고, 그녀와 그녀 자신이 연결된다. -185
인간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고 일반화하는 생명체이며,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상태에서 살고, 마음속의 구부러진 길을 편다. - 215
삶에는 어떤 패턴이...... 리듬이 있어요. 한 삶에만 갇혀 있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부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거예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 슬픔 없이 행복을 얻을 수는 없어요.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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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세상에 맞서기를 거부한 지 18개월째.
신호를 감지하고도 사춘기가 온 거라고 착각한 게 1여 년 정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를 가지 않는 동안 게으름이 극에 달하는구나 하고 등짝을 후드려 팼었지. 수업은 출석 체크만 간신히 하고 천장이 보이게 화면을 고정하고는 늘어지게 자고, 액체괴물이라고 하는 점성토를 끝도 없이 사 모아서 책상에 대고 철썩철썩 쳐대는 꼬락서니를 보고 눈이 돌지 않는 부모가 있으랴.
11시에 마친 학원에서 벌써 집에 갔다는데 자정이 되도록 오지 않는 딸을 찾던 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에도 (여기 병원 의사는 환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팔뚝에 가느다란 실 같은 자해 흔적을 남긴 것을 발견한 날, 실은 우리가 자고 있는 새벽에 몇 번이고 집 밖을 배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새벽 4시 차가 다니지 않는 집 앞 사거리 도로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 가슴이 후련한 기분을 느꼈다고 말한 날,
그런 날들마다 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아이를 잃을까 봐. 영영 다시는 보지 못할까 봐서.
알지도 못하는 주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다. 네가 너무 잘해줘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 맞다. 나는 잘해줬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한 짓은 큰 애한테 더 많이 했다. 감정에 휩싸여 화를 내고, 미숙한 엄마라는 티는 다 내면서 키운 것은 큰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중학교 시절에도 둘째는 사춘기라는 건 남의 얘기인 듯 해맑고 천진난만했으니까. 그런 아이가 어느 순간, 아니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 시나브로 어둡고 무기력한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번아웃 증후군에라도 걸린 것처럼.
처음에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내가 너한테 공부를 하라고 닦달을 했니, 학원을 뱅뱅 돌렸니, 네가 뭔가를 열심히 한다고 욕심을 부리기를 했니, 도대체 뭐 한 적도 없는 네가 왜 번아웃이 돼? 네가 무기력하다는 게 말이 돼? 지금 와서 보면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성취한 경험이 너무 적어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도 추측일 뿐이지만.) 초창기에는 뭐가 문제인지 도무지 감도 잡을 수 없었고, 그래서 더 힘들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이제 정말 다 내려놨다고 생각할만하면 또 뭔가 일이 터졌다. 하나를 겨우 수습했다 싶으면 새로운 무기력의 행태를 지켜보아야 했다. 놀다가 놀다가 심심해서 주리를 트는데도 먹거나, 게임하거나, 디스코드로 챗을 하는 일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았다. 어느 때에는 이제는 액체괴물도 지겹다면서 인형을 사 모으더니, 갖고 싶은 인형을 중국에 주문을 넣는다며 공동구매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디자인을 하고, 발주를 넣고, 주문을 받고, 기다리고, 소통하고, 수정하고, 배송을 받은 인형들을 각각의 주문자에게 보내는 그 불편한 일을 몇 달에 걸쳐 해냈다. 중국어도 모르는 아이가 번역기를 돌려가며 중국 판매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심지어 적자로.
이런 인형 수집가들의 세계에서는 잘 팔리는 연예인의 인형이 아니고서는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가가 너무 높으면 공동구매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는 갖고 싶은 인형을 주문하면서 개당 단가를 낮추는 게 목적이지 인형을 팔아서 수익을 남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거다. 한 개만 주문할 경우에는 인형 하나당 30~4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했다. 딸은 두 개의 인형을 주문했다.
인형을 받고 한두 달 정도 지나자 그간 모은 모든 인형들을 중고로 팔기 시작했다. 주문 제작했던 인형 한 쌍만 남기고 하나씩 둘씩 인형과 옷들이 팔려 나갔다. 새 제품도 아닌데 어떤 것들은 산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았다. 장사 수완이 좋은 것 같다고 칭찬을 하면서 의욕을 불어넣어 봤지만, 인형을 제작해 보니 장사고 사업이고 다 너무 귀찮더라 한다. 그걸로 돈을 버는 것은 더 귀찮을 게 분명하다고.
돈이 생기자 방에는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 딸이 집 앞 편의점을 먹여 살리고 있는 단골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불닭볶음면, 포카칩, 치토스, 삼각김밥, 냉장고 구석엔 아빠는 절대 먹지 말라고 붙여둔 음료수들. 턱이 두 겹이 되는 게 보였다. 허벅지가 갑자기 굵어지다 보니 살이 다 터졌다. 운동을 권하고, 같이 산책도 나가고, 잠깐은 조깅에도 재미를 붙이는 듯했지만 뭘 하건 3주를 넘기지 못했다. 운동하는 동안 잠시 멈칫하던 살은 방에서 굴러다니는 과자 봉지 개수에 비례하여 꾸준히 다시 찌기 시작했다. 컴퓨터 배경화면에는 새로운 게임들이 계속해서 깔렸다 지워졌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런 게임들도 모두 돈을 주고 사는 거란다. 엄마는 백 원도 아끼려고 발발 떠는데, 우리 집에는 편의점에서 4700 원하는 컵 떡볶이를 사 먹는 재벌 딸이 산다.
오늘 저녁엔 밥 잘 먹고, 오빠랑 이불 위에서 뒹굴대면서 이제 공부를 좀 해 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기분 좋게 하고 있는 것까지 봤었다. 그리고 게임을 한다며 딸이 컴퓨터 앞으로 갔고, 오빠랑 거기서 뭔가 이야기를 하는 듯했는데 큰 소란이 있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행 준비를 하다가 할 말이 있어서 딸 애 방으로 들어갔을 때, 아이는 없고 베란다 창이 반대쪽이 조금 열려있는 거다. 방충망이 없어서 모기가 들어올 텐데 왜 저길 열어놨어 하며 가까이 갔더니 창 밖에 딸아이 줄무늬 잠옷이 펄럭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창을 열어보니 딸이 울면서 베란다 난간에 서 있다. 에어컨 실외기를 두는 곳이라 떨어질 걱정은 덜했지만, 넘어가기도 쉽지 않았을 건데 여길 왜 나간 건지 알 수가 없다. 들어오라고 달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래도 1년 전의 나라면 비명부터 질렀겠지. 큰 애가 방으로 와서 둘이 잡아주고 방으로 들여서 달래주면서 물어보니 정말이지 이게 베란다를 넘어갈 일이냐고!!!!라고 소리치고 싶은 이유를 말해준다.
'9시부터 공부를 하기로 했으니까 지금 친구들이랑 게임해야지'. (라고 생각은 했지만 입으로는 '최대한 공부는 늦게 할 거야, 게임하러 가야지'라고 말함)라는 동생을 보면서 '수능 친다고 그간 게임 못한 내가 할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너 게임 못하게 하려고 내가 게임할 거야'라는 식으로 표현함) 하며 동생을 컴퓨터에서 내쫓은 오빠.
그게 이유였다. 오빠가 '나 수능 끝난 지 며칠 안 됐잖아. 그간 게임 못했으니 나 좀 하자.'라고 말만 했어도 비켜줬을 텐데, 이불 위에서 이야기할 때는 이제 게임 안 할 거라고 해놓고 내가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따라와서 '맘이 변했어. 이제 할 거니 비켜.'라고 했다는 거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오빠가 자기가 하고 있는 게임을 함부로 꺼버리고, 헤드셋을 툭툭 치고, 인생이 생각보다 훨씬 망했니 어쩌니라고 매몰차게 싹수없는 소리를 했단다.
속상할 만은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딸의 입장에서는 죽고 싶을 정도의 말이었다는 것이지. 이 정도의 다툼으로, 이런 말로 상처 입었다며 베란다 난간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울고 있을 고등학생이 몇이나 될까? 아이를 달래 주고, 미안해하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서로 오해를 확인하고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생각해 보면 기억에서 잊힌 오늘 같은 날들의 연속이 18개월째 이어지는 중인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아이를 사랑하는 일.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음을 깨닫는 시간.
공감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데, 너라는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고, 슬프고, 기쁘다. 고통의 근원이면서 행복의 근원인 것. 하나의 대상에게 양극단의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스스로도 설명할 수가 없어서 혼란스럽다. 18개월간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슬픔이 찰랑거리는 커다란 술독에 빠져서 지내는 기분이다.
고통스럽지만 후회스럽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가 부족한 게 너무 많다.
그래도 내가 특정한 방식으로(너무 화를 냈기 때문에, 너무 미숙했기 때문에, 좋은 엄마가 아니었기 때문에) 살았기 때문에 이것을 겪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들도 결국엔 삶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슬픔이 없는 행복은 없다고 믿고 싶다.
현실에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같은 건 없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려면 직접 생을 살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즉, 세상에는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은 고통만 갖고 온 게 아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힘드니까 의미는 보이지 않고 고통만 보일 수 있지만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사건들이 많다. 지나고 나서 내가 지혜롭게 잘 해냈구나 하고 느끼거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지만 고통의 폭풍 속을 헤쳐가는 동안은 앞이 캄캄할 뿐이다. 종교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보다 든든한 키는 없을 것이고, 신념이 있다면 그것이 그에게는 키가 되어 길을 안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부서지지 않는 키라는 것은 없고, 정말 무결한 키 또한 없기에 마음속에서 양심이 말하는 소리에도 항상 귀를 기울이면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