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 손원평
엄마와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은 윤재를 편도체가 남들보다 작다는 장애 외에는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바르고 건강한 아이로 키웠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윤재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는 못해도 합리적으로 추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아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는 남편도 없고, 가난이 함께하는 삶 속에서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고 키운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는 하다. 아이를 낳으면 돌봐줄 유모나 도우미가 있고, 어린 시절부터 헌신적인 부모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조차도 자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시행착오를 겪는다. 원치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유년 시절의 상처를 떠넘기거나,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규격화된 세계에 아이를 맞추려고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윤재는 다행스럽게도 자신을 지지해 주는 할머니와, 사랑해 주는 어머니의 양손을 꼭 붙들고 자랐다.
윤재와는 정확히 반대되는 인물로 등장하는 곤. 상류층 가정의 사랑받는 아들이었던 그는 4살 무렵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다. 보육원으로 들어가면서 어린 나이에 받을 수 있는 감정적 상처는 다 받고 자란 곤이.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친부모를 찾게 되지만 그의 불량한 태도와 거친 말투는 아버지와의 거리를 점점 벌릴 뿐이다.
기계인간 같지만 사랑받고 자란 윤재와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을 가졌지만 상처받으며 자란 곤, 이 둘의 우정을 대비해서 보여주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사실 편도체 장애는 윤재처럼 차분하게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공포를 느끼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도 어려운 만큼 그 자신의 행동도 제어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타인과 대화를 하거나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힘들다. 편도체 장애는 감정을 아예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더 소통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 윤재는 천 개의 파랑에 나온 로봇 콜리를 오히려 닮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되, 자기 제어 능력이 뛰어나고, 경험을 통해 감정을 학습해 나가는. 뇌과학 연구에서는 편도체 손상 환자가 경험적 학습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보고가 많다. 윤재가 가진 장애는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는데, 그 정도로 제어를 할 수 있다면 그건 장애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일반인 보다 탁월한 능력인 것 같다. 판단은 올바르고, 감정은 고요하며, 고통에 대한 공포는 없되 용감한. 이렇게 느낀 사람이 나뿐일까?
실제 자폐나 편집증, 편도체 장애가 있는 가정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떻게 느낄까? 위안과 희망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가까운 사람 중에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라면 자기 가족의 상태와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헌신적인 부모도 에너지가 고갈되어 지치는 날이 늘어갈 수 있고, 이미 내가 가진 인격적인 불완전함에다 치료비라든지 현실적인 여러 문제가 화를 북돋으면 고함을 지르고 모진 부모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소설처럼 내가 좀 더 이상적으로 희생했다면, 아이가 윤재처럼 나아질 수 있었지는 않을까 하고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미 내 아이는 그렇게 양호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그게 내가 불완전한 사랑, 혹은 부족한 부모여서면......
장애가 없는 아이를 키우는 나도,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서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자존감이 높은지 안다. 난 내 불안을 아이에게 정말 자주 투사하곤 했으니 내 아이들은 그렇게 자존감이 높고, 긍정적이고, 해맑은 아이로 자라지 못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다시 돌아가도 내가 받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주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내 아이도 저렇게 키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씁쓸한 죄책감과 질투를 느끼고 만다.
이 책은 국내, 해외(일본, 대만 등)에서 200만 부 이상 팔렸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뮤지컬 등으로 제작도 되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정치인 손학규 씨이며, 저자는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에 대해 듬뿍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자는, 그 고통을 대물림하고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을 대물림하는 거라면, 단지 그런 환경에 태어났기 때문에 학대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너무도 가엾고, 가엾지 않은가... 작가의 프로필을 알게 되자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흑인이건, 백인이건, 인디언이건, 아시안이건 상관없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양육자로부터 자랐는지가 그 아이의 정서, 인격, 능력 모든 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이 눈싸움 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게임이다. 먼저 눈을 감는 쪽이 지는 것뿐이다. 그런 종류의 싸움에서 나는 언제나 승자다. 사람들은 눈을 감지 않으려고 기를 쓰지만, 나는 애초에 눈을 감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 159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171
몇 살에 절도를 시작했는지, 언제 여자와 놀아 봤는지, 무슨 일로 소년원에 갔는지 따위를 자랑거리로 삼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유의 조직에서 인정받으려면 그럴듯한 무용담, 혹은 훈장이 필요하다. 곤이가 아이들에게 맞으면서 버틴 것도 그런 통과 의례 때문일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모두 약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강한 것을 동경하며 생기는 나약함의 표현. -238
너무 멀리 있는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얼마와 할멈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람들은? 그들은 눈앞에서 그 일을 목도했다. 멀리 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먼먼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