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네가 너라서

딸에 대하여 - 김혜진 2023.2.

by 어제만난사람







중학교 3학년까지는 딸아이에게 야단을 많이 쳤다.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방, 용돈을 주면 녹아내리듯 금방 써버리고, 밤엔 일찍 자지 않고, 아침이 되어서는 아무리 알람이 울려도 절대 스스로 깨지 못했다. 꾸짖으면 정신 차릴 줄 알았다. 첫 번째 오판이었다.


중3 기말고사였나, 딸이 공부를 나름 한다고 했던 적이 있다.

사실 내가 보기엔 방문을 열 때마다 놀고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고 생각은 못했다.

아무튼 자기는 공부 한다고 했고, 스스로 만족할 만큼 성적이 나왔다고 느낀 모양이다. 국영수 점수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기타 과목의 점수가 잘 나와서 전체 평균은 90점이 된다며 신나 했다.


자기가 시험을 잘 쳤으니 뭘 해줄 거냐며 몇 번씩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난 ‘오빠는 97~8점 맞아도 아무것도 안 해줬었는데.’라고 답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시험에 대해 보상을 해 준다고 약속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다른 집 엄마들은 시험 잘 치면 폰도 사주고 뭐뭐도 해 주는데." 하면서 툴툴거렸다.

도덕군자 병에라도 걸렸었는지 그 때의 나는 노력하지 않고 잘 나온 결과에 대해서 칭찬을 해 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격려랍시고 한 말이

"고등학교 가면 국영수가 수업시수가 많아서 배점이 커지는데, 넌 국영수 점수가 낮으니 조금 더 노력해서 올려보는 게 어떻겠니? 열심히 안 했는데도 이렇게 나왔으니 노력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겠다." 였다.

두 번째 오판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딸은 내 눈에 띄지 않으려고 몰래 공부했었다고 한다.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답은 '그냥' 이었다. 그냥.

공부하면서 정리 노트도 만들었단다. 그런데 내가, '넌 수학이 70점이잖아. 전체 평균 90점이긴 해도 국영수 점수가 낮아서 그렇게 잘한 건 아니지.' 라고 말한 뒤에, 내게 자랑스레 보여주려던 그 노트들을 다 찢어 버렸다고 했다.



고1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날, 학원을 마친 지 한참 지나도 딸이 돌아오지 않았다. 수업은 11시 조금 전에 마쳤다는데, 길만 건너면 되는 학원에서 11시 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을 리가 없다. 폰은 꺼져 있다. 학원에 전화를 하니 벌써 30분 전에 나갔는데요,라고 한다.

옷을 챙겨 입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직 쌀쌀한 4월 말의 저녁인데,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신고 뛰어나갔다. 남편도 뭔가 잘못된 것을 직감했는지, 함께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이러이러하게 생긴 아이를 혹시 보지 못했냐고 물으며 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나는 반대쪽으로 뛰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딸이랑 닮은 아이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의 체육복을 입고 걸어가는 것을 보고 혹시 ㅇㅇ이를 아느냐고 물었다.


"ㅇㅇ이요? 우리 반인데요."


교회도 다니지 않으면서 오, 하나님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애에게 다급하게 혹시 딸을 못 봤느냐 물었더니, 좀 전에 저 위로 올라가더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집으로 오는 방향이 아니었다.

그 애가 알려준 길은 오르막이었지만 한달음에 뛰어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고, 슬리퍼를 신은 발에 오한이 느껴졌으나, 불안한 예감에 휩싸여 미칠 것 같았던 내 몸에선 오히려 식은땀이 흘렀다.

한참을 달려 올라가 마침내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는 딸의 뒷모습을 발견했을 때도 안도감보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왜 너는 자정이 되도록 이러고 있니, 무슨 일이 있는 거니.

딸은 아무 일도 없다고 했다.

그냥 좀 답답해서요.

딸의 얼굴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딸의 방황이 시작됐다. 코로나 기간이라 학교를 제대로 가지 않은지 1년이 넘었다. 온라인 수업은 당연히 제대로 듣지도 않았고, 학교를 가는 것도 무의미하게 느끼는 듯했다. 딸이 먼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치료를 받으면서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내 말이 아이에게 너무나 깊은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들이 의욕을 꺾어 버렸다는 것,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아 새벽에 온 가족이 잠든 시간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녔다는 것도.


구차하게 변명하자면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었고, 나 모르게 공부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었다고, 그렇게 네가 상처받은 줄 몰랐다고 하고 싶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 딸은 아무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다며, 굿즈를 사 모으거나 덕질을 하거나 인형 장사를 하더니 종국에는 SNS와 게임에만 빠져 있다. 치료를 시작하고 2년가량, 나아지긴커녕 모든 것이 점점 나빠지는 듯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돌아보면 모든 걸 다 잘못한 것 같고,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했나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 딸은 책 속의 딸처럼 동성애자도 아니고, 정의를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사람도 아니지만, 엄마의 가슴을 까맣게 태운다는 점에서는 책 속의 딸, 그린과 동일선상에 있다. 하지만 내 나이가 주인공인 엄마보단 딸의 입장이 공감이 갈 나이라 그런가, 책 속으로 들어가 딸의 입장에서 보니, 내 딸 또한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자리에 있는데 엄마조차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딸이 더 이상 약을 먹지 않는다. 병이 나아서가 아니라 의미가 없어서.


방에는 커다란 모니터와 컴퓨터를 들여놓았다. 어제는 밤에 키보드를 튜닝한다고 화명동까지 가서 맡기고 왔다. 이것이 언제 끝날까. 그 끝은 어떻게 될까.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결말에 도달할 수 있긴 할까. 지금은 기다려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심리상담사도, 정신과 의사도 말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들이 틀렸다. 이건 희망을 가질수록 절망에 가까워지는 꿈을 꾸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이 지금 내 아이의 모습과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간극에 언제까지고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 희망조차도 조심스레 내려두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인정해 주는 것이, 네가 나아져서 내가 바라는 희망찬 아이가 되길 기다리는 것보다 현명할 거라고. 어쩌면 책 속의 엄마도 진의 장례식을 마친 뒤 딸과 그 애를 대할 때는 이런 심정으로 함께 살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너는 내 딸이니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아이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성장통을 겪는 동안, 부모 또한 있는 그대로의 타자를 사랑하는 법을 처음으로 배운다. 남편, 형제, 가족, 친구, 누구에게도 허용할 수 없었던 내 안의 기준과 공간들이 아이를 위해 완전히 재배치되고, 절대 용납되지 않던, 혹은 반드시 이래야만 하는 가치들도 하나, 둘, 허물어졌다. 그냥 네가 너여도 괜찮다고 보려면 네가 아니라, 내 안의 세계가 변해야 했으니까.


사춘기인 자녀만 혼돈 속에 헤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인 나도 다른 의미의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옳은 것이 옳지 않고, 멋진 것이 보잘것없게 되고, 하찮은 것이 귀하게 되는 뒤죽박죽 세계가 열렸다.


성인이 되고 한동안은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규범과 남들처럼 사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자녀가 태어나면 더 앞만 보고, 혹은 곁눈질로 내가 남들보다 얼마나 잘 살고 있나 비교하며 달린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느새 내 손을 빠져나가고 남아 있지 않은데, 그것도 모르고.


아이가 사춘기의 혼돈을 무사히 보내고 훌륭한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부모의 혼돈은 아이의 그것과는 궤도를 달리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도 마지막까지 버려지지 않던 것이 자식에 대한 애착이었을 만큼, 사랑이 깊을수록 그 사랑이 내 안에서 온전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형태를 내게 꼭 맞는 모양으로 바꾸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마음이기에.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은 신의 마음과 같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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