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은 은퇴한 철도역장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며 자서전을 쓰는 이야기다.
그는 평생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왔고 대단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겪지 않았기에, 자신이야말로 평범한 삶을 살아온 평범한 인간의 표본이라 여긴다.
19장까지 서술되는 그의 삶은, 수줍음 많은 소목장이의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진학하고, 방황 끝에 철도청에 취업한 뒤 아내를 만나고 성실히 살아온 단일한 흐름의 평이한 인생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러, 전혀 다른 말투와 시선을 가진 또 다른 ‘나’가 등장해서 기존의 삶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새로운 '나'는, 성실함은 허영을 감추기 위한 방패였고,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계산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인간의 감정은 단일한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어떤 대상을 향해 동시에 혐오와 동경을 느끼고, 유혹에 끌리면서도 그것이 파멸로 이어질 것임을 직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이용하고 싶어지는 마음 역시 낯설지 않다. 서로 모순되는 감정들이 한 몸 안에 공존하는 일은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상태에 가깝다.
냉철하고 계산적인 자아, 우울한 자아나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자아, 영웅의 자아, 어두운 욕망의 자아, 그리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는 거지의 자아까지 - 그가 자기 안에서 또 다른 자아들을 마주하며 깨닫는 것은, 개인의 내면조차 단일하고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불교의 화엄경에서 차용된 인드라망의 비유에 따르면, 제석천이 사는 하늘 궁전에는 끝없이 펼쳐진 그물이 걸려 있고, 그 매듭마다 하나씩 달린 구슬들은 서로의 빛을 끝없이 반사한다. 하나의 구슬 안에는 모든 구슬이 비치고, 동시에 모든 구슬 안에도 그 하나가 비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시간선 위에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인식하곤 하지만, 생의 어느 순간에는 과거나 미래의 나라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던 자아가 지배할 수도 있다. 이렇게 충돌하는 자아들이 서로를 비추는 과정을 인지하는 것은 곧 '살아있음'의 증거가 된다. 소설이 말하는 ‘평범함’은 단조로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빛깔들이 어우러고 반사되며 만들어내는 일즉다 다즉일의 우주와 연결되는 것이다.
자기 앞에 솔직해지는 자는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음을 안다.
위인의 자서전처럼 통일된 흐름으로 완성된 삶은 작위적으로 연출된 것이다. 실제로 한 인간의 생은 시기마다 다른 모습의 내가, 불완전함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다. 그때그때 주도적으로 등장하는 자아 또한 독자적인 나만의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에게도 존재하는 억척이나 우울이, 투덜이나 낭만이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 속에는 숱한 너와 내가 반사되어 있으니, 나와 너의 경계가 그렇게 멀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안의 무수한 '나'들이 서로를 투영하는 인드라망의 구슬이 되어줄 때, 그들이 서로의 빛을 머금고 뿜어내는 찰나의 광채는 매 순간 다른 색으로 반짝인다. 다채로운 '나'를 인지하고 긍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모순 또한 너그럽게 비추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더 이상의 두려움은 생기지 않았고, 죽음의 느낌이 야기하던 놀라움은 익숙함과 친근함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으로 옮겨 갔다. -14
나는 모든 것을 비웃을 수 있는 내 모습이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웠다. 그로 인해 내가 부정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한없는 우월감을 느꼈던가!
젊은이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원하고, 가질 수 없으면 화를 낸다. 그 때문에 그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그들을 부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는다. - 72
이 뭔가 오래전에 일어난 일과 아득하면서도 놀랍게도 분명한 연관성을 의식하는 순간들은 어떤 신비하고 위대한 것의 현시처럼 묘하게 나를 흥분시켰다. 그 순간들에서 인생이 이해될 때는 아주 드물지만, 인생은 보이지 않는 연관성들로 점철된 심오하고 필연적인 단일체로 나타났다. -86
지금의 나는 가엾은 아버지가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었고, 사실은 삶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안다. 절약이란 수동적인 미덕이며, 안정된 생활에 대한 희구이자 닥쳐올 미래와 위기와 우연에 대한 두려움이다. 탐욕이란 잔인할 정도로 우울증과 유사하다. -154
이 세 개의 자아는 말하자면 나의 공식적인, 그리고 결혼 생활과 함께한 삶들이었다.
여기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낭만주의자에 관한 것이다. 우울증 환자인 자아의 동료였다고나 할까. 다른 두 자아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억척이는 너무 객관적이며 냉철했고, 평범한 인간은 평범할 뿐이었으며 아무런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낭만주의자인 자아는 결혼 생활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 자아에 대해 아내가 알아선 안 되었다.
또 다섯 번째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나의 자아도 어떤 존재도 아니었다. 조금이나마 자아를 형성했던 것들은 모두 그것을 꺼렸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나의 자아와 대립했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몰락이나 자기 파멸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체를 볼 수 없는 존재였고, 항상 어둡고 은밀하게만 경험될 뿐이었다. 짐승의 악취가 나고 자물쇠가 걸린 더러운 판잣집에서 그랬듯이.
단편으로서만 존재하는 시인, 그가 다른 어떤 자아보다도 그 저급하고 비밀스러운 존재와 상관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시인의 내면에는 보다 높은 뭔가가 있었지만, 그는 나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어쩌면 그 구원받지 못한 것도 내 안에서 영혼이 되어야 했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게 영혼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야기들 안에 시인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203-205
이 글이 근사하고 단순한 스토리이며 한 개의 반죽으로 빚어낸 이야기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뻐했다.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표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표상에 들어맞는 사건들은 선별하거나 심지어는 약간의 수정을 가한다.
이제 나는 가능성이란 게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인생은 여러 상이하고 가능한 삶의 집합이며, 그중에서 단지 하나 또는 몇 개만이 실현되는 반면, 다른 삶들은 단편으로서나 가끔 발현되든지 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213
어쩌면 우리 각자는 세대에서 세대를 통해 불어나는 사람들의 총합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끝없는 자아의 분화가 두려워 우리는 분화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우리를 단순하게 해 줄 어떤 집단 자아를 받아들이는 건지도 모른다.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