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덮은 책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 이문구

by 어제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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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쯤 전에 구입했던 책인데 첫 번째 단편을 읽다가 충청도 사투리를 이해하기 어려워서 포기.

그 뒤로 몇 번 도전해 봤지만 시골 정서의 고구마 스러움에 겨우 한 편을 읽었을 뿐이었다.


회사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는데, 50분정도는 지하철을 타고 가서 책을 읽기가 좋다. 보통 소설은 짧으면 하루, 길면 3일에 한 권을 읽을 수 있길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다 읽고 읽을 책이 없으면 집에 묵혀둔 책을 꺼내서 들고 다녔다.


위화의 소설을 읽고, 그 다음에 이 책을 꺼냈는데 두 번째 장석리 화살나무 편은 술술 넘어간다. 충청도 사투리가 익숙해진 건지 두세 번 정도 반복해서 읽으면 얼추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갔다. 빨갱이 잡는다며 민간인도 조금 수상쩍으면 마구 잡아들이던 시절, 섬과 섬을 넘나들며 겨우 목숨을 건진 '홍'의 이야기.


" 딱 하나 조심헐 게 있어. 그게 뭣인고 허면 세상이 뒤숭숭헐 적마다 누가 물어보기두 전에 나는 중도여, 중간이여, 허구 돌어댕기는 사람덜...... 가령 갑 쪽이 세 불리허다 싶으면 갑 쪽을 찔러박어서 공으루 을 쪽에 가 붙구, 또 을 쪽이 세 불리허다 싶으면 을 쪽을 찔러박어서 그 공으루다가 갑 쪽에 가 붙구 허는 사람덜 말여. 저버텀 살구 볼라니 저허구 가까운 사람버텀 궂혀야 허닝께 결국은 남어나는 사람이 없더먼 그려. 이렇게 살을라구 그랬던지 나는 츰서버텀 그런 사람덜을 알아봤어."


- 장석리 화살나무. 55



작가의 정치색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문장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정치한답시고 나오는 것들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구의원이니 뭐니 한다는 인간들의 대사도 그렇고, 보수당의 행태를 주로 묘사한 것 처럼 보였지만 딱히 어느 당을 옹호하거나 적대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패한 정치인, 우스꽝스럽지만 냉소적인 시선의 묘사.


고는 전의 매제였다. 그러므로 웬만만 해도 덮어주어 마땅하련만 위인이 워낙 칙살스러운 위인인지라 아내가 송곳니로 뜯으면 전은 어금니로 뜯어온 터수였다.


"그러게 소 팔러 댕기던 늠, 개 팔러 댕기던 늠 죄 나오구, 안돼야 헐 늠은 안 돼서 다행인디, 꼭 떨어져야 헐 늠이 안 떨어져서 슨거치구 싸가지가 누런 슨거 됐다구 다덜 안 그랬던가배." - 장이리 개암나무. 90


이 동네 뇌인네덜은 왜 원로가 아니냐, 경노당을 왜 경매댕이라구 허느냐, 시세가 없는 나이 때미. 왜 시세가 없느냐, 나이를 먹었어두 옆댕이루 먹었기 때미. 왜 옆댕이루 먹었느냐, 기관에서 공고문을 내걸구 연고자를 찾다가 찾다 찾다 못 찾구서 법으루다 파는 관굴이 아니면 죄다 사굴이구, 사굴을 바루 굴변인디, 그런 굴변 마냥 없던 일두 있던 일루, 않던 짓두 허던 짓으로, 아닌 법두 맞는 법으루......


동방무례지국적인 기우제를 지내게 충동질을 해서 스 말 스 되 스 홉짜리 시루떡ㅇ기나 읃어먹을 궁리를 헌다 치면, 저 뇌인네덜이야말루 망년든 뇌인네덜, 요샛말루는 치매에 걸린 뇌인네덜이 분명헌디, 거기가 워째서 경노댕이여 경매댕이지.


- 장이리 개암나무. 134



"예. 그런데요, 큰아버지 말슴이 옳은 말씀이세요. 농업은 성역이 아닙니다. 하나의 평범한 개인사업입니다. 또 그런 개인사업가가 남의 무덤을 무단히 파괴하는 것은 풍속사범입니다. 개인적인 원한관계를 가물 탓으로 위장해서 무덤을 파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구요. 기우제라는 것두 그래요. 제 생각엔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진짜 허례허식입니다. 기우제야말루 농심하고는 거리가 먼 거지요."


"너는 그걸 워치게 알았데?"


"농심이 뭔데요? 콩 심은 데에 콩 나고 팥 심은 데에 팥 나는 게 농심이잖아요." -장이리 개암나무.152


충청도 사투리가 어느 정도 귀에서 정겹게 들리기 시작하자, 책은 점점 나를 빨아들였다.

개인적으로는 장이리 개암나무 , 이 편이 제일 재미있었다.



그렇더래두 오늘 하루만 욱하구 더는 욱하지 마. 그이두 핵농사 짓느라구 여간 바쁘잖댜.


욱하는 욱이 별건 줄 아남. 농짜가 뒤집어지면 욱짜여. - 장척리 으름나무 218



"너 내 앞에서 대이구 사업자금 사업자금 해쌓는디, 그것두 내 보기에는 난봉쟁이 거울 들여다보기여. 어려서버터 일만 보면 미서워 미서워 허던 늠이 이 애비가 마디마다 뼛소리가 나도록 일을 해서 그만치 해노니께는, 이제 와서 그 땅을 팔어서 사업자금이나 헙시다...... 못 헌다. 농사는 수고구 사업은 수단인디, 수고가 뭔지두 모르는 것이 수단은 워디서 나와서 사업을 혀? 맨손으루 나간 늠은 나가서 손에 쥐는 것이 있어두, 논 팔구 밭 팔아서 나간 늠은 넘덜 되듯이 되는 것두 못 봤거니와, 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기만 허면 되어? 니가 그따우 정신머리를 뜯어고치지 못허는 한은, 땅이 아침 먹다 팔려 즘슨 먹다 잔금을 받더래두 지나가는 으덩박씨는 줄망정 너 같은 늠헌티는 못 줘, 못 주구말구." - 장곡리 고욤나무 259


마지막 편인 고욤나무 편은 음...

이렇게 자기 주장 강한 분이, 땅 팔릴 가능성이 사라진 것, 자식과의 불화로 목을 멘다는 건 납득이 잘 안갔다. 약간 억지 구성이라는 느낌을 받음.



문장이 주는 생생함, 충청도식 유머에 읽다가 피식한 적이 여러번이었다.

막상 다 읽고 보니 전혀 힘들게 읽을 책이 아니었는데, 완독까지 15년이라니...

제목 탓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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